제18대 대통령선거가 이제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접전 속에서 선거가 치러지다보니, 평소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일반인들도 매일 정치뉴스를 검색해서 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지속적 관심 여부나 이유를 불문하고 정치에 대해 일반인들이 이처럼 관심을 갖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라 할 것이다.
또 이번 대선이 흥미로운 점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 범보수진영이 일치단결을 이뤘고...
안철수 전 후보를 포함한 범야권(이정희 통합진보당은 일단 지켜보기로 하자)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대연대를 이뤄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이번 대선 결과는 한국사회의 이념척도를 가장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좋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여야 모두 생각했던 시나리오대로 대선판이 흘러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한 가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구석이 있다. 역대 선거들과 비교해 호남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도 문재인 후보도 호남 구애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호남 홀대론’, ‘호남 소외론’ 등의 표현으로는 설명하기 힘들 만큼 호남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대선후보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박근혜 후보는 대구 출신이고, 문재인 후보는 부산 출신이다. 이번 대선판의 핵심 변수가 된 안철수 전 후보 역시 부산 출신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었고, 노무현 대통령을 밀어줘 정권재창출에 핵심적인 공을 세웠던 호남이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이렇다 할 대선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호남은 예로부터 인재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런데 왜 지금은 호남 정치인 중에 누구 하나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김대중 대통령 이후 호남에는 왜 맹주가 사라진 것일까? 의정활동을 잘 하든 못 하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호남정치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쇄신 때문이다. 언제인가부터 민주당 내에서 호남정치인들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매번 물갈이 대상이 돼 왔다.
전국적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호남은 마땅히 희생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두 번이나 정권을 만들어줬던 호남은 민주당 정권에서 오히려 극심한 역차별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공직자 인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참여정부 인사수석이었던 정찬용 씨는 최근 “문재인 때문에 사무관 인사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호남 출신 공직자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후보 시절 영남에서 유세를 할 때마다 “노무현이 당선되면 그건 민주당 정권이 아니라 영남 정권이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당선 후 첫 인사를 통해 ‘영남 정권’의 실체는 드러났다. 청와대와 내각의 요직을 부산과 PK출신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호남은 대통령을 만들어주고도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홀대받고 소외됐다. 호남사람들의 표는 단순히 ‘보너스표’라는 인식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호남사람들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세종시가 결국은 호남 말살의 결정판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건설된 세종시는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는 효과 외에도 호남의 인구까지 흡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호남은 슬럼화를 겪으며 지금보다도 더욱 낙후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도 호남은 민주당에게서 수도권, 세종시(충청), 영남 등에 이은 지역이 될 것이다. 제4의 세력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호남에 구애를 하던 시절은 먼 옛날 얘기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 이상 호남에서는 대통령 아니, 경쟁력 있는 대통령후보조차 기대할 수 없다. 인재가 등용되지 못한다면, 호남은 점점 더 낙후될 것이 자명하다. 호남은 죽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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