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악의적 개칭, 옛 현판 그대로 남아있어
최근 광화문 현판 교체문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광화문보다 더 시급히 복원돼야 할 것은 덕수궁과 대한문의 옛 이름 및 현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준영 역사교훈실천시민운동연합 대표는 2일 모 신문 기고에서 "(광화문 현판 교체는) 우선 고궁과 어울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그러나 이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덕수궁과 대한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준영 대표는 "1906년 6월 '대안문(大安門)'이 '대한문(大漢門)'으로, 1907년 7월 '경운궁(慶運宮)'이 '덕수궁(德壽宮)'으로 명칭이 바뀐 동기와 목적이 우리 쪽 의사에 반할 뿐 아니라, 고종황제를 능멸하고 민족의 자존심까지 깡그리 짓밟았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원구단(현재의 조선호텔자리)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당시 거처인 경운궁과 원구단을 잇는 통천로를 만들고, 경운궁 돌담을 헐어 문을 새로 만들었는데, 그 문이 바로 대안문이다. '국태민안'의 의미를 지닌 명칭이다.
이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4년 4월 의문의 화재로 불탄 경운궁을 복구하면서,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쳤다.
이토오 히로부미가 궁궐을 수리해 준 은혜(?)도 몰라보고 의병에 자금을 지원하고 헤이그밀사 파견을 준비한 고종황제를 괘씸하게 여기고, '큰놈(大漢)'이 사는 궁궐 문이란 듯으로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개악했다는 게 정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또 "덕수궁은 황제에서 물러난 고종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德壽)'라는 뜻으로 개칭했다고 하나, 그를 강제 폐위시키고 아들 순종과 부자의 인연도 끊게 하면서 황태자 이은마저 볼모로 잡아간 마당이니, 말이 '덕수'지 실제로는 경로당 정도로 격하된 것이며, 승하할 때까지 고종을 그곳에 유폐 격리시켰으니, 덕수라는 뜻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 떼어낸 대안문 현판(유물번호 926호)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므로, 이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2005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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