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위헌 판정을 받은 혼인빙자간음죄가 1953년 9월 18일 제정돼 59년을 이어오다 없어졌다.
정부는 11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의 국무회의를 통해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한다는 형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형법 조항에서 혼인빙자간음죄 조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제정 2년 후인 55년, 당대의 ‘카사노바’로 불리던 박인수씨가 댄스홀에서 만난 70여 명의 미혼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재판을 받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때 박씨는 “나와 관계를 맺은 여성 가운데 처녀는 단 한 명이었다”고 폭로했다. 그해 5월 당시 1심 법원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치열한 법적공방 끝에 결국은 대법원의 판결로 유죄로 확정됐지만 파문은 오래갔다.
70~80년대엔 출세 후에 옛 애인을 버린 의사, 검사 등이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되는 사건이 유행이었다. 86년 말, 의사 김모씨가 자신의 아들까지 낳은 옛 애인을 버리고 몰래 장가를 갔다가 혼인빙자간음죄로 구속된 사례 등이 화제가 됐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사기 사건과도 관련이 밀접했다. 명문대생, 의사, 검사를 사칭해 미혼여성을 농락하고 돈까지 챙긴 후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세태가 바뀌면서 혼인빙자간음죄로 인한 재판 건수는 크게 줄었다. 2002년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합헌 판정을 내렸던 헌법재판소가 7년 후 위헌 결정을 한 것도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26일 헌재는 혼인빙자간음죄에 위헌 판정을 내렸다.
헌재는 “남성이 결혼을 약속했다고 여성이 성관계까지 맺은 것은 여성이 잘못 착오한 것인데, 국가가 형벌로써 보호한다는 것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이라며 “이는 남녀평등 논리에 어긋나고 국가 스스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11일 형법 개정 공포안에는 혼인빙자간음죄 외에 성범죄 대상을 '부녀(婦女)'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내용도 담겼다. 남성이 남성에게, 여성이 남성에게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 조항 때문에 낮은 처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규정한 것이다.
대신 최근 성범죄 양상이 크게 달라진 점을 반영시켜 강제로 유사성행위를 한 범죄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하는 '유사강간죄'가 신설됐다.
성범죄 처벌 특례법에선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 조항도 없앴다. 친고죄 때문에 성범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피해가 연속 발생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소지자에 대한 처벌 규정도 강화됐다. ‘아동·청소년이나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갖고 있었다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