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이천수, 그리고 절대고독 - 칼럼
이은주, 이천수, 그리고 절대고독 - 칼럼
  • 윤광원
  • 승인 2005.06.2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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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이천수, 그리고 절대고독 최근 인기여배우 이은주씨의 자살사건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자살원인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 추측만 난무한다. 심지어는 그녀의 어머니가 200억 원대의 도박 빚을 진 것이 자살의 원인이라는 황당한 루머도 있다. 이런 추측들 중 배우라는 직업의 특징을 고려한 심리학적 분석들(영화평론가 심영섭,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듯하다. 배우는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현실의 자기 자신과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 사이에서, 항상 이중적이고 분열증적인 삶을 살게 마련인 직업이라는 것이다. 현대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연기이론은 스타스롭스키 연기론인데, 이 이론은 배우가 캐릭터와 최대한 닮고 동일시할 것을 요구한다. 즉 연기자는 그 자신이 아니라, 캐릭터로 변해버리는 것이 권장된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오 수정', '하늘정원' '태극기 휘날리며', '주홍글씨' 등에서 이은주는 한결같이 젊은 나이에 불행한 죽음을 맞는 역할을 맡았다. 평범한 일반인도 죽음을 자주 생각하다보면 죽는 기운을 부르게 마련인데, 하물며 프로페셔널 배우가 오죽하랴. 살아있는 인간 이은주 대신, 젊은 나이에 죽는 여성으로 변한 것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일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맨날 기도했는데 무모한 바램이었지. 일년 전이면 원래 나처럼 살 수 있는데 말이야' 그녀가 남긴 글 속에는 짙은 절대고독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씨는 '그녀를 보내며'라는 글에서 "죽음까지 고민할 정도로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연예인의 화려한 명성과 조명 뒤에, 그녀에게 따르는 고독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그들의 삶은 대중이 바라는 이미지와 상업적 시스템이 요구하는 컨셉에 지배돼, 자신의 내면과 철저히 유리된 채 살아간다"고 분석했다. 문씨는 이어 그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런 고독과 분열증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내면의 나는 외면하고 남들에게 비추어지는 나에게만 집착할 때, 우리 속의 자신은 분열되고 실종된다. 외로움이란 사람들로부터 내가 멀어졌다고 느낄 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외로움이란, 분열된 내가 한없이 멀어져 서로 만날 수 없을 때 느낀다. 진짜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은 자신을 주저앉히고 만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천수. 최초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한국 선수였지만, 현지적응에 실패, 최악의 부진에 빠져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천수는 요즘 국내복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이은주의 심경을 이해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천수 역시 분야는 다르지만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스타로서, 이은주 못지 않은 절대고독을 느꼈을 게다. 한 축구매니아는 이천수가 적응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을 팀 동료들과의 불화 때문으로 봤다. 겸손하지 않고 지나치게 튀는 그를 동료들이 '왕따' 시키고, 패스를 안 한다는 것이다. 해외진출 성공여부의 상당부분이 실력 외에 이런 인간적인 측면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이 분석은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이천수의 고독은 스타로서의 주관적 고독에다, 팀 내에서의 객관적 고독이 더해진 셈이다. 박석무 다산연구소장은 25일 '절대고독'이라는 글에서 "고독을 극기력(克己力)으로 극복하느냐, 이기지 못하고 절망에 빠지거나 좌절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절대 고독의 극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견디고 이겨내는 극기력을 발휘, 자신을 이기고 진리를 터득하는 아름다운 환경으로 고독을 활용했다는 것. "7년 동안 유배지에서 문을 닫아걸고 움츠리고 지내다보니, 노비들조차 나와는 함께 서서 이야기도 하려하지 않더이다. 낮 동안 보이는 것이라고는 구름의 그림자나 하늘의 빛깔뿐이고, 밤새도록 들리는 것이라고는 벌레 울음소리와 바람에 불리어 나는 대나무 소리뿐입니다. 이런 정적의 생활을 오래도록 견디어내고 보니, 정신이 모아져 옛 성인의 글에 전심치지(專心致志)할 수 있었습니다" 다산선생이 가장 절친한 학우 윤영희(尹永僖)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절대고독은 자신을 좌절시키고 나아가 죽음으로 몰고 갈 만큼 치명적인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학문과 예술, 성공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고독이란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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