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시리즈1 - 천재도 늙으면 어쩔 수 없나? - 칼럼
천재시리즈1 - 천재도 늙으면 어쩔 수 없나? - 칼럼
  • 윤광원
  • 승인 2005.06.2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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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엉성한 신작 '에비에이터'
헐리웃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는 누라 뭐래도 현역 미국 영화감독 중 최고봉이랄 수 있다. 그의 최신작 '에비게이터'는 최근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음악상을 받았으며, 올 아카데미 최고의 기대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26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에비에이터는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천재의 범작으로, 마틴 스콜세지라는 이름만으로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영화다. 마틴 스콜세지는 역사적 사건 및 실존인물 내지 역사적 배경(주로 19∼20세기 초반의 미국사회)을 깔고, 그런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내면심리 탐구에 천착하며, 뛰어난 명작들을 많이 남겼다.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좋은 친구들',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에서 '갱스 오브 뉴욕'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들은 대개 그런 식이다. '에비에이터' 역시 20세기 초·중반 미국 항공산업 및 영화계의 거물이었던 하워드 휴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메이드 인 마틴 스콜세지' 표 영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작인 갱스 오브 뉴욕에 비해 에비에이터의 완성도는 형편없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두 영화에서 똑같이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와 웅장한 스케일, 영상과 음악은 흠잡을 데가 별로 없다. 문제는 드라마 구성의 엉성함이다. 에비에이터는 사건의 흐름과 주인공 휴즈의 심리상태 묘사가 서로 따로 놀면서, 시퀀스마다 따로따로 겉돌고 있다. 휴즈의 일에 대한 저돌적인 열정과 정신병자 같은 청결에 대한 결벽증이라는 양 극단의 측면을, 이 영화는 성공적으로 하나로 통합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객들은 휴즈의 야망과 성공, 음모와 시련 및 그 극복에 이르는 과정에 몰입하다가도,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휴즈의 느닷없는 '또라이' 행각에 당황하고, 드라마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스토리라인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곤란을 겪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유럽의 60∼70년대 예술영화들처럼 의도적인 '거리두기' 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게 아니라, 내러티브를 엉성하게 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각각의 시퀀스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전체를 제대로 짜임새 있게 엮어내지 못한 탓이다. 무엇보다 화장실 장면이 쓸데없이 많아, 상영시간만 늘리고 관객들을 혼란시키고 있다. 갱스 오브 뉴욕에서의 마틴 스콜세지는 결코 이렇지 않았다. 에비에이터의 휴즈라는 인물의 괴팍한 측면이 갱스 오브 뉴욕의 주인공 암스테르담보다 비교할 수 없이 커서, 그것에 매몰된 것인가? 스타일에 얽매여 이야기를 무시한 것은 아닌가? 천재도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시사회가 끝난 후 모두 뜨악한 표정으로, '또 지루한 시간에서 이제야 해방됐다'는 식으로 아무 말 없이 썰렁하게 흩어지는 기자들을 보며, 필자는 그래도 마틴의 잠재력은 아직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2005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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