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있는 선거였는데...” 대선 직후 민주통합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다. 당분간 이어지리라 예상되었던 내홍은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현재진형형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민주당이 늪에 빠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 9일이 돼서야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출되었을 만큼 앞으로 갈 길이 먼 민주당 내부에서 한때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민주당과 거리를 뒀던 문재인 전 대선후보의 역할론이 새삼 부각되며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정치활동을 재개한 문 전 후보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안철수·문재인 연합의 신당창당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조현상 기자
민주당은 지금
민주당은 대선 이후 한 달여 동안 선장 없는 배처럼 당을 이끌어 갈 지도부 없이 표류해왔다. 이는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당 지도부가 두 번이나 해체된 타격이 컸다. 작년 6월 9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이해찬 대표 등 최고위원 전원은 대선 당시 ‘이해찬·박지원 퇴진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2선 후퇴를 하겠다면서 당시 문 후보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또한 단일화 과정에서 인적 쇄신을 해야 된다는 목소리들이 커지자 11월 18일에는 아예 총사퇴를 선언, 당신 권한을 위임받은 문 후보는 공동선대위원장단 10명 등 선대위 조직으로 당을 꾸려 나갔다. 그러나 이마저도 안 전 교수의 사퇴 후 책임을 지겠다고 직을 내려놓았다. 대선이 끝난 직후 문 후보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 대행직을 내려놓으면서 당의 구심점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한때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절차로 당시 대표대행을 겸직하고 있던 문 전 후보가 비대위원장을 임명해 비대위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되기는 했지만 문 전 후보는 산행을 택했다.
대선이 끝난 지 어느 덧 한 달, 대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은 정권 인수 작업을 차분히 진행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여전히 선거 패배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새누리당이 매번 외부인사를 초빙해 당을 새롭게 정비하는 것과는 달리 민주당은 당을 수습 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외부 인사 쪽을 고려하는 방법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새누리당 외부 인사는 맡은 일만 하고 다시 되돌아가지만 민주당의 외부 인사는 당에 들어온 뒤 다른 정치를 한다는 고질적인 폐단 때문이다.
지난 9일 비대위원장을 선출한 민주당은 앞으로 2-3달 동안 대선 패배를 평가하고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준비 및 관리하게 된다. 그러나 차기 당권을 뽑는 시점에서 각 계파의 정치적 이해득실의 충돌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갈 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현재로선 민주당이 대선 뿐 아니라 총선도 포함한 2012년 선거 패배의 원인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그 와중에 대선패배 책임을 지고 떠났던 문 전 후보가 자신만의 정치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文, '트위터 정치' 이어가
대선 패배 후 ‘정치적 휴식기’에 들어갔던 문 전 후보는 최근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광주를 방문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등 사실상 정치 활동을 재개한 것 아니냐는 평을 듣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문 전 후보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잇따라 현안이나 근황과 관련한 짧은 글을 올리며 정치적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지난 2일, “안철수로 단일화가 됐으면 이기고도 남았다”는 법륜스님의 발언이 나오자 문 전 후보는 헬렌켈러의 말을 인용, “비관주의자들은 별의 비밀을 발견해낸 적도 없고, 지도에 없는 땅을 향해 항해한 적도 없으며,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적도 없다”는 말을 남겼다.
또 지난 3일에는 “학교비정규직 11만 명을 호봉제로 전환하는 예산 808억원이 전액 삭감됐다. 국회 토론회 때 교육감 직접고용과 호봉제만 돼도 좋겠다고 눈물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얼마나 실망했겠느냐”며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불거진 ‘쪽지 예산 논란’ 관련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지난 4일에는 “의원 연금 예산 통과에 대한 비판 취지에 공감하지만 민주당이 작년 9월 초 연금 폐지를 위해 당론으로 발의한 법 개정안이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 연금폐지는 종국적으로 이 법안의 처리에 달려있으므로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라며 대선기간 ‘기득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여야가 약속했던 ‘의원 연금 폐지’를 겨냥해 비판을 가했다.
이와 함께 ‘문재인을 트위터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캠페인이 트위터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 전 후보의 서포터즈인 ‘문풍지대’는 ‘문 전 후보 트위터의 팔로어를 국내 최대로 늘리자’는 취지를 캠페인을 새로 개설한 트위터를 중심으로 벌이고 있다. 이에 문 전 후보 지지 성향의 트위터리안들이 호응하면서 실제 문 전 후보의 팔로어 수가 하루에 많게는 2,000명씩 늘어 지난 7일 오후에는 38만8,000여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 전 후보의 정치활동이 이어지자 민주당 안팎에서는 “너무 이르다”, “민주당의 자산이다” 등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을 지낸 정장선 전 의원은 4일 오전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과 통화에서 “우리나라 대선에 나왔던 분들 중 패배하고 나서 재기한 분들이 많이 있다”며 문 전 후보의 활동을 평가하면서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치 활동하는 것은 본인이 판단할 문제지만 후보까지 가셨던 분은 당분간은 활동을 조용히 하면서 당이 반성하고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는 조용한 역할이 필요하다”며 문 전 후보의 활동 자제를 우회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박기춘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 통화에서 “문 후보는 소중한 자산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 가지 역할이 기대되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문 후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놓고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며 대선 패배 후 당 수습과정에서 문 전 후보의 역할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문 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무본부장직을 맡았던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 통화에서 “(문 전 후보가)지금 야권 전체에서 어떻게 보면 자산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분”이라며 문 전 후보를 높이 평가하는 등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도 ‘安 등판해야...’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아직도 “이길 수 있었는데...”
민주당의 문재인·안철수 밀고당기기
“文 트위터 대통령 만들자”는 목소리도
문재인·안철수 연합의 신당창당설 대두
이와 함께 문재인·안철수 연합의 신당 창당설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민주당은 대선이 끝난 직후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한 비판과 회유를 쏟아내며 ‘안철수 밀고당기기’를 시도했다.
작년 12월 27일, 강기정 민주통합당 의원은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안철수 신당론’에 대해 “안철수 독자 신당은 결국 민주당이 분열되고 민주당을 지지했던 개혁, 진보, 민주세력의 분열"이라고 반대의사를 밝힌데 이어 김영환 민주통합당 의원도 같은 날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안 전 후보의 영향력은 여전하고 그 영향력은 민주당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설훈 민주통합당 의원도 당일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 ‘안철수 신당론’에 대해 “신당 창당 보다 민주당에 들어와서 민주당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방법이 합리적이고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하는 등 내부적인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통합당의 위기감 표출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강 의원은 “안철수, 문재인 후보의 새 정치 공동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안철수, 문재인 후보의 새 정치 공동선언의 약속대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회유책에 들고 나왔고 김 의원은 안철수 효과에 의지하기 이전에 ‘당 쇄신이 먼저여야 했다’며 반성론을 주장했다.
설 의원은 “새 당을 만들면 또다시 민주당과 합당하는 문제가 나오게 되어 있다”며 “그런 과정을 겪느니 차라리 바로 민주당에 들어오셔서 민주당과 함께 개혁을 해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합리론을 내세웠다.
특히 설 의원은 “민주당이 1500만 표에 육박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며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 민주당 의원들이 탈당해 합류하는 상황에 대해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쉽게 국민들의 뜻을 버리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1500만 표가 민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아서 만들어진 표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민주당도 새누리당 만큼이나 불신을 받고 있는 점을 여전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오히려 정치개혁을 위해 차선인 민주당을 선택한 국민들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발언”이라 못 박았다.
더욱이 1500만 표를 만들기 위해 야권의 총집결한 것을 두고 '오로지 민주당의 공로'로 인식하는 것은 '민주당의 고질적인 착각'이라며 "민주당은 4.11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근본적인 이유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에서는 당내에서 영향력을 잃은 문재인과 안철수가 연대하여 신당을 창당하지 않겠느냐는 ‘文·安 신당 창당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선패배 책임과 비노세력의 반발로 당내 입지가 사라진 문재인 의원이 대선 당시 단일화를 두고 진 빚을 갚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새정치 공동선언도 아직 유효한 대다 문 의원의 향후 정치 방향도 안개속이다.
일전 문 의원은 대선 패배를 선언하며 “민주당 보다 더 큰 국민정당을 위해 이바지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그 심중에 대한 이견도 이러한 ‘文·安 창당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안철수에 대한 온갖 예상과 말들이 난무한 가운데 거론되는 다른 한 사람으로 손학교 전 상임고문이 있다. 손 전 고문은 대선 막바지 안철수와 비밀회동을 가지며 정치적 이상을 서로 확인한 바 있으며 손 전 고문도 선거 직후 미국으로 출국한 안철수의 뒤를 이어 독일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에 둘 사이의 재 만남도 예측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안철수를 둘러싼 민주당의 밀고당기기가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문 전 후보가 최근 정치행보를 보이는 것 관련, 당내 문 전 후보의 입지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일고 있다. 안철수를 끌어오기에는 문 의원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안철수 끌어오기에 ‘문재인 카드’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안철수, 문재인, 손학규는 입을 닫고 정치지형에 벗어나 있다. 안철수, 손학규, 문재인 이 세 사람을 둘러싼 안철수 신당창당설이 이뤄질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