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제18대선은 노무현의 패배였다. 대선이 끝난 직후 대한민국은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37)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고 지난 11일에는 횡령·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이틀 뒤 ‘바운지볼’이라는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스마트폰 게임이 논란이 되기도 했고 이제야 제 살 길을 찾은 민주통합당은 책임론이란 칼을 들이밀며 친노세력을 몰아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곡소리가 나온다. “우리는 대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몇 번이나 죽이는 것이냐?”고, 2013년 대한민국의 현재는 ‘노무현 죽이기’ 열풍이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눈물 흘리던 노정연씨에게 대한민국이 준 선물, 징역 6개월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2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320호 법정에서 피고인석에 선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37)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고 법원은 그녀에게 징역 6개월이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동식 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정연씨의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된다”며 “징역 6월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정연씨는 앞서 2009년 1월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뉴욕에 있는 허드슨 빌라를 220만달러에 매입하면서 소유주인 경연희씨(43)에게 관계당국에 신고 없이 중도금 13억원(미화 100만달러)을 보낸 혐의를 받아왔다.
검찰에 따르면 경씨는 정연씨로부터 전달받은 돈 13억원 중 8억8200만원을 환치기 방식으로 미국에 송금받고 2억2000만원은 자동차 수입대금 지급을 가장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미국 회사 계좌로 송금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나머지 1억9800만원은 경씨의 지인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변호인으로 나선 정연씨 남편 곽상언 변호사는 “아파트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전달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아파트는 피고인 소유도 아니고 소유할 의사도 없었다” 피고인이 경씨와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 주장했다.
또한 “피고인은 모친인 권양숙 여사의 부탁을 받은 아파트 계약을 대신 체결하고 돈을 전달하는 위치에 있었을 뿐”이라면서 “외국환거래 신고는 커녕 송금이 불법이라는 사실도 잘 모르는 평범한 주부였을 뿐이다”며 참작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범죄행위가 인정되면 합당한 형벌을 감수할 것”이라며 “하지만 세상을 떠난 노 전 대통령의 딸로서 그동안 도덕적 비난을 넘어 형벌보다 잔인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 씨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몹시 고통스럽습니다”라고 최후진술을 마쳤다.
일전 문성근 민주통합당 전 최고위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총선 앞두고 노정연씨가 검찰이 수사를 재개했다”면서 “노무현 서거 후에 내사 종결을 발표한 검찰이 느닷없이 수사를 재개하는것은 인륜 저버린 패륜”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 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23일 오후 1시 50분에 열린다.
“검찰이 가혹하다” 노건평씨에게는 징역 5년형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이 구형되었다. 지난 11일 창원지검은 창원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권순호) 심리로 열린 노씨의 변호사법 위반·업무상 횡령사건 결심공판에서 징역 5년과 함께 추징금 13억5000만원을 구형했다.
노씨는 고향 후배인 이모(47)씨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이었던 2007년 3월 통영시 광도면 장평지구 공유수면 매립면허 취득과정에서 공무원에게 청탁하는 명목으로 매립면허 취득 후 1주당 최소 15만원 이상의 수익이 에상되는 관련 업체의 주식 9000주를 무상으로 받는 방식으로 13억5000여만원의 이득을 취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 K사 대표 이모(55)씨와 공모해 2006년 1월쯤 김해 태광실업 땅을 시세보다 싸게 매입, 공장을 지어 되판 후 차액 가운데 13억8000만원을 사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추가 기소됐다.
노씨 변호인 측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으며 업무상 횡령 혐의는 빌려서 갚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범죄 의도가 없다”며 “무죄가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노씨는 최후진술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서 “한편으로 검찰이 가혹하다는 생각도 하지만 재판부가 선처해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노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5일 열린다.
일각에서는 어째서 노 전 대통령의 가족에 대한 탄압이 하필이면 제18대 대선이 박근혜 대선후보의 승리로 끝난 직후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직전인 1월에 마무리 된 것인지 시점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익명을 밝힌 한 민주당 관계자는 “박근혜가 당선되자 이명박 정부가 마무리 지었어야 할 것을 퇴임 전 속시원하게 정리할 꼴”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딸에게 고작 징역 6개월을 구형하기 위해 대한민국 사법부는 5년이란 세월을 쏟아 부은 것이냐”며 도가 지나친 사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노건평씨에게 5년형이 구형되고 나서 이틀 뒤, 언론들은 일시에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한 스마트폰게임인 ‘바운지볼’ 논란에 대해 쏟아내었다.

노무현 공을 튀기다 떨어지면 “운지”라며 자살비하
공을 튕기며 장애물들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바운스볼’이라는 인기 스마트폰 게임을 패러디한 게임인 ‘바운지볼’은 공 대신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사용해 충격을 주었다. 게임은 가시밭길에 닿으면 공이 밑으로 떨어지면서 게임이 끝나게 되는데 이때 ‘노무현공’은 밑으로 떨어지면서 비명과 함께 “운지”라는 소리를 낸다.
‘운지’, 우파 성향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이다. 1990년대 출시된 건강음료 ‘운지천’의 텔레비전 광고에서 배우 최민식이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며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노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을 떠오르게 한다며 ‘운지’란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
‘바운지볼’은 게임 역시 시작화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웃는 얼굴과 함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효과음이나 게임 도중 ‘노무현공’이 떨어질 때 가끔 “아 기분 좋다”라는 효과음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성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도로 게임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누리꾼 ‘clonete*****’은 ‘바운지볼(미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이 누리꾼은 게임화면 사진과 함께 “곧 나올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부탁드립니다”라고 글을 작성했다. 그것이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를 통해 유포된 것이다.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 게임이 논란이 되자 게임을 제작한 누리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비하할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닙니다”라며 해명했다.
또한 “저는 우파도, 좌파도 아닙니다. ‘바운스볼’이라는 이름에서 ‘운지’가 떠올랐고, 이를 합성으로 구현했을 뿐입니다. 저는 순수하게 재미만을 추구했습니다.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고, 저는 바운지볼의 제작자가 아니라 최초 구상자일 뿐입니다”라며 “내가 한 짓이 다 잘한 짓은 아니지만 여론몰이 돋네요(심하네요)”라고 항변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유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한편으로는 “이명박 괴롭히기 게임도 있었고, 고 박정희 대통령도 욕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응도 있다.
해당 게임은 청소년과 아동들이 주로 즐겼다고 알려지자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현재 애플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마켓에서 이 게임은 삭제되었으며 인터넷용으로 게임 다운로드가 가능하던 온라인 페이지들도 삭제됐다.
2013년 대한민국은 ‘노무현 죽이기’ 열풍
노정연씨 징역 6개월, 노건평씨 징역 5년형 “朴 당선되자 이 대통령 퇴임 전 속시원하게 정리할 꼴”
싸우기 위해 노무현을 살려내는 행태, 노무현의 죽음을 반복시키는 비극만 초래할 뿐
노회찬 “문재인, 노무현 단절 못해 패배한 것”
지난 11일 노회찬 진보정의당(정의당) 공동대표는 SBS라디오에 출연해 최창렬 용인대 교수와 ‘진보정치의 과제’에 대한 대담을 가진 자리에서 향후 야권의 미래와 관련, “새로운 진보정당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며 ‘노무현’을 거론했다.
노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노무현 정부’와의 단절이 되지 않았음을 꼽고 “국민은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에 성공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택한 것”이라며 “반면 야권은 심판 받은 ‘노무현 정부’와의 단절에 성공하지 못했고, 이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데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패널로 참여한 최 교수는 노 대표의 발언과 관련,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같은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가 완전한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며 “반면 국민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 대한 호감은 상당히 있었지만, 민주당의 주류세력으로 생각되는 친노세력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결국 참여정부와의 단절에 실패한 것”이라고 평했다.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한 김지하(사진) 시인은 지난 8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후보에게 고작 노무현 뒤꽁무니를 쫓아다닌 것이라며 비판을 가했다.
CBS 라디오에 출연한 김지하 시인은 문 전 후보에 대해 “시대가 달라졌는데 아직도 왕왕 대고, 내놓는 공약이나 말하는 것 좀 보시오. 그 안에 뭐가 있느냐. 김대중, 노무현뿐이다. 형편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대중씨는 북한에 돈 갖다 바쳐서 폭탄이 돼 돌아왔고 그대로 꽁무니 쫓아간 게 노무현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은 2013년의 대한민국에 생생히 살아있고 수많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민들 사이에서 죽고 살기를 반복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노무현 정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한 까닭에 한편에서는 노무현 흔적 지우기에 열중이었고 한쪽에서는 노무현 화신이 노무현의 생명력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화자 되었던 노무현의 이름은 지난 18대 대선으로 말미암아 또 한 번의 죽음을 맞았다.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가 박근혜 당선인을 향해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 같다는 발언은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와 성찰적 언어가 되었다. 역사를 되돌려 노무현을 살려낸 문 후보는 대선 패배 뒤 연거푸 “세 번째 민주정부를 만들지 못했다”고 역사의 죄인을 자처하며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노무현에 대한 존경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지겠다고 싸우기 위해 노무현을 살려내는 행태는 결과적으로 노무현의 죽음을 반복시키는 비극만 초래할 뿐이다. 그것이 ‘노무현 죽이기’가 끝나지 않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