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펼 날이 없다. 지난 15일 “민주당, 역사 빼고 다 바꿀 것”이라며 사즉생의 각오로 임한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공식 업무를 시작과 동시에 회초리 민생 투어에 나섰다. 지난 14일 국립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문 위원장은 광주를 시작, 본격적인 민심달래기에 들어갔다. 투어 내내 문 위원장의 사죄의 수첩은 민심을 담아내느라 빼곡히 차올랐고 동행했던 참석자들은 모두 어둡고 비장한 표정이었다.
속죄의 민생 투어 시작, 회초리를 들어주세요
“60년 정통 야당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만 빼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
지난 14일 영등포당사에 열린 민주통합당 첫 비대위 회의에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밝힌 포부이다. 문 위원장은 이날 “일체의 기득권이나 정치생명에 연연하지 않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임하겠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새 길을 찾기 위해서는 변명하거나 토를 달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이같이 말했다.
이어 문 위원장은 “대선평가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해 민주당의 잘못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찾아내며 정치혁신위원회와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도 바로 시작할 것”이라며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 수준의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비대위는 이날 공식 업무를 시작으로 곧바로 ‘참회 행보’에 나섰다. 비대위원 전원과 현역 의원 40여명, 당직자 등 200여명은 첫 공식 일정으로 국립 현충원을 참배한 뒤 국민을 향해 사죄의 뜻으로 삼배를 올렸다. “잘못했습니다. 거듭나겠습니다”라는 대국민사과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를 찾아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고, 이어 4ㆍ19 민주묘지를 방문해 재차 사죄의 삼배를 올렸다. 당일 일정 마지막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은 문 위원장은 “열화와 같은 성원에 부응하지 못하고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혹독한 회초리를 들어 달라”고 말하면서 ‘회초리 민생 투어’의 첫 신호탄을 알렸다.
국민들 반응은 싸늘
서울, 호남, 부산·경남 지역을 돌며 회초리 민생 투어에 나서던 문 위원장은 지난 1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문 위원장이 “노무현 정신은 사라지고 친노와 비노, 반노만 남아 싸우고 있다”고 탄식한 것, 이에 참석했던 비대위원들의 분위기도 숙연해졌다고 전해진다.
문 위원장은 “다시는 계파 갈등이 없도록 뼈를 깎는 자성의 시간을 갖겠다”고 강조한 뒤 방명록엔 “사즉생의 각오로 거듭나겠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래서 “회초리를 때려줄 사람조차 없었다”며 정청래 의원은 민심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 조차 회초리 민생 투어에 대한 회의적 발언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문 위원장이 일침을 가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문 의원은 ‘회초리 민생투어’에 대한 당내 비판 여론에 대해 “65%의 정권교체에 희망을 걸었다가 실망하고 멘붕한 사람들의 곁에 가서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하면서 반성과 사죄를 안 하면 우리의 진정성을 누가 믿겠냐”며 “어떤 사람들은 그걸 쇼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70년대, 80년대 우리당을 처음부터 만들었던, 이름을 부르기도 외람된 권노갑, 김원기, 임채정, 정동영 이런 분들이 다 나와 무릎 꿇고 절하는 것을 보고 쇼라고 한다면 그분은 어느 당 출신인가”라고 반박했다.
또한 “내 평생 두려운 두 가지는 하나는 치매이고 하나는 편견”이라며 “편견이라는 그늘이 머릿속에 있으면 유연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저놈 탓이야’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실명을 거론하길 꺼린 한 의원은 “부르기도 외람된다던 권노갑, 김원기 같은 분들이 절하면 무얼하나? 정작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이 가만히 있는데”라며 “차라리 애초에 발언한대로 문재인을 희망버스에 태워 전국을 돌렸어야 했던 것”이라며 비판했다. ‘내 탓이요’라고 말할 사람이 빠져 있는 속죄 투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한편 문 위원장은 “우리가 이기면 뭐하나. 만경창파 조각배를 타고 선장 누구 하나를 놓고 싸우다 난파선 돼 빠지면 다 죽는다”며 “민주당이라는 배가 일엽편주처럼 간당간당하는데 뒤집히면 아무 소용이 없다. 벼랑 끝에 섰다고 생각하면 하나가 돼야 하며, 죽기를 각오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문 위원장은 시민들을 만나며 계파에 대한 지적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노, 비노 혹은 주류, 비주류 근본적으로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이라며 “우리 중 노무현 전 대통령 안 팔고 국회의원 된 사람 있나. 모두 다 친노”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가 미워할 것은 친노 비노가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당파주의”라며 문 위원장은 “한 당파가 계속 하려하는 것도, 또 그걸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문 위원장은 “누가 다음 대표가 될지, 우리 파가 어떻게 될지, 이런 생각을 갖고 빨간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사물이 빨갛게 보인다”며 “그러면 당파이기주의가 생기고 아군과 적이라는 군사문화의 잔재인 이분법에 빠진다”고 당부했다.
비대위 공식업무 시작한 문희상 “민주당, 역사 빼고 다 바꿀 것”
문 “회초리투어, ‘쇼’라고 하는 사람은 어느 당 출신인가?”
의총서는 “노무현 안 팔고 의원 된 사람 있나?”
문희상 “난 물컹물컹한 사람 아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터져나온 ‘회초리 민생 투어’ 비관론은 좀처럼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전국으로 다니면서 무릎 꿇고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국 똑같은 소리 아니냐”고 몰아세웠고 김영환 의원도 “잘못하면 퍼포먼스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진정성 없는 이벤트 정치라는 것이다.
이에 문 위원장은 자신은 정치적 꿈이 없다며 “다음 당 대표와 원내대표 나갈 사람도 아니고, 다음 국회의원에 나갈 사람도 아니다”라고 다가올 20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는 회초리 민생 투어의 진정성을 획득하기 위한 특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문 위원장은 “(다만) ‘저사람 엄청나게 혁신하려 노력했구나’라고 기억되길 바란다”며 “마지막 일에 필생의 각오로 이 일을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마찬가지로 진정성 관련, 그는 “회초리 민생투어는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선을 다해 잘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게 없으면 신뢰가 상실되고 그 순간 정치적 기본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회초리 민생 투어의 의의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문 위원장은 “저를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제가 물컹물컹한 사람이 아니다”며 “몽땅 버리고 마지막 일에 필승의 자세로 일을 하겠다”며 강력한 혁신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