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당초 합의한 1월 임시국회 개회일은 24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을 처리하기 위해 본회의를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이 깨졌다. 쟁점 현안에 대한 여야 간 이견으로 개회 시점이 연기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놓고 여야 간 줄다리기가 팽팽히 맞서면서 1월 국회는 물 건너간 형국이고 김용준 총리 후보자에 대한 온갖 비리의혹이 들끓고 있다.
법사위서 잠자는 법안만 315개, 여야는 마주 설 줄을 모르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당선인인 등을 지고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때문에 총체적 난항이라는 말이 심상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반면 절치부심하던 민주통합당은 회생의 길이 열렸다. 새누리당이 번번이 자기 함정에 빠짐에 따라 대선패배를 딛고 싸울 명분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길이 열렸다.
새누리당 당황의 연속, 곳곳에 함정에 빠져
애초 24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1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여야는 한 치의 양보 없이 각기 다른 목표와 입장차를 보여 왔다. 새누리당은 2월 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 를 위한 지원사격을, 민주통합당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낙마와 쌍용차 사태의 국정조사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일단 새누리당은 1월 임시국회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새로운 국회’로 발돋움하는 동시에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지원한다는 방침은 물 건너간 형국이다. 일찍이 1월 임시국회를 통해 상임위를 가동, 시급한 민생 법안ㆍ현안 논의에 나서는 한편 새 정부의 성공적 출범을 법ㆍ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동시에 ‘박근혜 정부’ 초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위기 요인들을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했던 새누리당은 인수위가 제출한 정부조직 개편안의 입법화는 물론 새누리당 의원총회를 통한 내부 의견 수렴, 야당과의 협상 등조차 민주통합당의 발목잡기에 지지부진한 잠정상태에 빠졌다.
새누리당 내부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은 단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논란과 이어진 인사청문회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헌재 사상 유례없는 의혹덩어리로 모든 쟁점을 마비시키고 정치권의 이목을 한곳에 집중시켰다.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 조차 이 후보자의 비리의혹에 혀를 내두르던 탓에 적극적인 지원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민생 정부를 표방한 새 정부의 민생 법안 처리 주력은 물론 부동산 취득세 감면 연장 등 침체된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법안,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된 고액현금거래 자료를 일반 세무조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FIU 법안 등 민생 법안 처리는 불발이 되었다.
특히나 4대강 사업 논란을 1월 국회에서 해소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의 정면돌파에 또한번 당황하며 내부혼란에 빠졌다. 택시법 거부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새누리당의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박 당선인이 이에 대해 일체 거론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현 정부의 편들기도 꺼림칙하고 그렇다고 박 당선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모든 쟁점이 이명박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는 탓에 그저 숨어버린 박 당선인의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 새누리당의 상황이라며 한 관계자는 말하기도 한다.
민주통합당으로서도 급작스러운 국면전환을 맞았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돌입한 이후 ‘회초리 민생 투어’ 등 회생의 절차를 밟아온 민주당은 내부의 혼란만큼 지지층의 분열을 확인하며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직시해야 했다. 때문에 여당과의 마찰을 야기할 경우 지난 대선에서 확인했듯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한 지지층의 결속을 곤고히 할 뿐이며 등 돌린 지지층으로부터의 반발만 가중될 것이라는 부담감이 내부에 팽배했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문 위원장과 인수위의 만남을 시작으로 1월 임시국회에서 여당에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런 와중에 국면전환의 길이 열렸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의혹 및 자질논란과 4대강 논란, 택시법 논란 등이 줄줄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길이 열렸다
민주당은 발빠르게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해 자진사퇴와 지명철회 요구를 시작 지난 21일과 22일 이틀간에 걸친 인사청문회에서 도살장 청문회라고 표현될 정도로 이 후보자에 대한 강도 높은 검증과정을 거쳤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과가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 후보자에 대한 결정적인 결함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여야 모두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돌아선 분위기가 현장 곳곳에서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에 대해 박 당선인은 일체 거론을 하지 않음으로서 새누리당으로서는 수세에 몰려 인사청문회 내내 소극적인 발언을 쏟아내었다. 민주당의 공세를 지원하자니 문제가 되고 그렇다고 의혹 덩어리인 이 후보자를 방관하자니 여론의 질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4대강 논란 이후 이명박 정부의 정면돌파, 정부의 택시법 거부로 인해 민주당 내부에서는 활로를 찾았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에 민주당은 정부조직 개편안 관련, “국회처리 과정에서 공청회 등을 통해 야당 입장을 반영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상황이 호전되자 민주당은 대선 이후 처음으로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문제이다. 그간의 민주당에게 청신호로 작용한 사안들이 현 정부와 박 당선인 그리고 새누리당 측에서 제공한 것이라면 쌍용자동차 국정감사 논란은 민주당 스스로 명분쌓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지 여론 회복의 기반을 다진 민주당은 ‘쌍용자동차 국정감사’를 통해 새누리당과의 정면 싸움에 나섰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애초 24일 본회의를 시작으로 1월 임시국회를 가동키로 합의했으나 쌍용차 국조 등 쟁점 현안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일단 개회 시점을 미룬 것이 그 성과이다.
이것으로 야당의 견제가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반대를 위한 반대식의 일방적인 발목잡기가 아니라는 정당성은 일단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결정적인 원인은 박 당선인이 제공했다. 지난 대선 기간 자신이 공약한 사항에 대해 ‘유보’의 뜻을 내비친 이한구 원내대표의 뜻을 따를 것이라 발언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월 임시국회 무산은 박근혜 정부의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새로 시작하는 대통령에게 일단 소신껏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발판을 주자는 밀월기간 관행은 무산되었지만 일단 원인제공을 여당에서 했기 때문에 민주당은 마음껏 싸울 수 있는 명분을 갖추게 된 셈이다.
물건너간 1월 국회···법사위서 잠자는 법안만 315개
이로써 1월 임시국회 개회가 사실상 물건너 가게 되었다. 양당은 일단 1월 임시국회 가동 자체를 위한 물밑접촉을 계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접점 마련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쟁점 현안에 대한 입장차가 워낙 크며 일단 명분이 민주당 쪽에 실려 있기 때문에 양보하는 측은 새누리당이 되어야 하는 모양새인데 내부적인 혼란에 직면한 새누리당이 이마저도 허용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1월 임시국회 개회 지연으로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를 비롯해 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새정부 출범 준비 일정과 민생법안 처리는 늦춰질 전망이다.
현재까지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법안은 총 315개에, 법사위 고유법률안은 209건으로 이중 상정되지 않은 법안이 132건이며 소위에 계류된 법안만 77건이다. 다른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률안은 106건이고 이중에서 미상정법률안은 94건에 이른다. 법사위는 국회 본회의 처리의 마지막 관문으로 본 회의를 거쳐야 진행될 수 있다.
문제는 계류 중인 법사위 소관 법안 가운데는 박근혜 당선인이 강조한 법질서, 사회안전분야 관련된 공약사항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토킹행위의 처벌과 피해자호보를 위한 법안과 아동학대 범죄행위에 대한 가중처벌법안, 주폭자와 보복범죄 위험이 높은 범죄자에 대한 가중처벌, 고위공직자의 불법수익에 대한 환수조치 등이다.
더욱이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자비리수사처를 대통령 직속으로 하는 법안과 같은 당 정희수 의원이 발의한 주요 경제범죄에 대한 형량과 벌금을 대폭 강화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등은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임대주택사업 활성화를 위해 임대사업자의 택지비 부담을 완화한 ‘임대주택법’과 임대용 주택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주택임대관리회사를 도입하는 ‘주택법’ 개정안의 경우는 지난해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다른 상임위에서 넘어왔다가 법사위서 잠자는 법안 중에서는 비정규직 차별적 처우금지를 위해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발의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있으며 농어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법안, 농어촌 마을 주거환경 개선 및 리모델링 촉진을 위한 특별법,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한부모 가정 지원법 등 민생 법안들과 장외 파생거래 업무를 집중적으로 처리하는 ‘장외거래중앙청산소’(CCP) 도입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정무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넘어갔으나 여전히 보류중이다.
국회가 상임위도 가동되지 않고 있어 상임위에 회부된 법안들도 산적해 있다. 취득세율을 △9억원 이하 주택 2%→1% △9억원 초과~12억원 이하 주택 4%→2% △12억원 초과 주택 4%→3% 등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과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발의한 취득세 감면연장법안 등 인수위에서 넘어온 정부조직개편안은 본 회의를 통과해야만 행안위에서 처리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1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힌 법안만 34개, 그러나 민주당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물러서야 하는 것은 새누리당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민주당은 승기를 잡았다.
새누리당 “현 정부 편들기도 뭐하고 박 당선인 편들기도 뭐해”
새누리당, 민주당에게 양보해야한다는 목소리 커져
민주당은 “이게 다 새누리당 탓” 새누리당은 “이게 다 MB 탓”
엇갈린 의원총희 새누리당은 심각하고 민주당은 비장
민주당 맹공 시작 “모두 새누리당 책임”
새누리당 “아 박근혜 마저...”
얼마전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와 같은 사안 관련 “시간이 많지 않다”고 발언했다. 일각에서는 황 대표의 이러한 발언에 동의하며 “새누리당은 임시국회의 조속한 개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민주당과 티격태격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민주당에 등원할 명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론이 새누리당 양보론에 기울어지자 덩달아 여당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더욱이 지난 4일 평택 쌍용차 공장을 방문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같은 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쌍용차 국정조사에 대해 “저는 유보적이다. 더 따져봐야 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해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노회찬 공동대표는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는 박근혜 당선인 후보 시절 새누리당의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것”이라면서 “임시국회가 열리지 않는 모든 책임은 새누리당에게 전적으로 있으며 쌍용차 국정조사 거부는 노사문제를 올바르게 풀 의지가 새누리당에 전혀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다름없다”고 맹비난에 나섰고
심상정 의원 역시 “새누리당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대선이 끝나자마자 여야 지도부가 다 약속한 국정조사 실시 반대를 전면에 들고 나섰다”고 지적했다.
박원석 의원은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는 “여야가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사안”이라며 “임시국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 쌍용차 국정조사를 지금이라도 수용할 것”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설훈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은 지난 23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쌍용차 국정조사는 박근혜 당선자가 공약했던 사안”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여당 원내대표 입장에서 관철하도록 하는 것이 도리”라고 지적했으며 이어 “박근혜 당선자가 이한구 원내대표의 뜻대로 하겠다는 것은 정면으로 대국민공약을 거부하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면서 “만약 박근혜 당선자와 이한구 대표의 뜻이 다르다면 그 입장을 당선자가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당선인인 등을 지고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상황 때문에 야당쪽에서는 총체적 난항이라는 말이 심상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는 반면 절치부심하던 민주통합당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번번이 자기 함정에 빠짐에 따라 대선패배를 딛고 싸울 명분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동흡 헙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은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온갖 잡음은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조현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