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 두 아들의 군병역 비리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인 김용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9일 자진 사퇴했다. 이는 후보자 지명 이후 닷새만이며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가 자진사퇴한 것은 헌정사상 최초다. 윤창중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은 당일 오후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드려 국무총리 후보자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윤 대변인은 전했다. 지난 31일 후보 사퇴 표명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심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속이 후련하다”라고 말했다.
조현상 기자
해명 자신있다더니....
“제 부덕의 소치로 사퇴합니다”
윤 대변인이 사퇴를 공식 대변한 지난 29일 “김 후보자가 박 당선인과 오늘 오후 사전면담을 갖고 사퇴의사를 밝혔다”며 “오후 6시8분께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저와 만나 발표문을 정리해서 지금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임인선과 관련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다. 결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다”고 말했으며 김 후보자의 인수위원장직은 유지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당선인의 결심에 따르기로 했다는 것으로 이해해달라”며 사실상 인수위원장직 유지를 시사했다.
이어 윤 대변인은 김 후보자가 인수위원장직에 대한 사의를 표명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했으며 박 당선인의 반응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마지막으로 윤 대변인은 “이 기회에 언론 기관에 한 가지를 부탁드리고 싶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으로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돼 인사청문회가 원래 입법 취지로 운영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의 사퇴 배경을 놓고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던 1970~80년대 서울과 수도권에서 집중적으로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수십배의 차익과 개발이익을 얻었다는 의혹과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집중 제기되자 “해명에 자신 있다”며 정면에 나서던 김 위원장이 돌연 사퇴를 밝혔기 때문이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은 크게 3가지이다.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과 두 아들에게 부동산 증여 의혹, 후보자 본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그것,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뇌물이나 공금 유용과 관련된 일이 아니어서, 문제 될 것 없으며 청문회에서 철저히 해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 새누리당과 인수위의 연석회의 참석차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서류가 준비되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여 온 바 있다.
한편으로는 인사청문 특위 모임을 갖고 자질과 도덕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선언한 민주통합당과는 달리 국무총리실 인사청문회 준비단 역시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무리 없이 부동산 관련 해명자료와 두 아들의 병역과 관련한 의료 기록을 확보하고 있던 중으로 전해지기도 했었다.
朴, 사퇴 끝까지 만류…
김 위원장 “속이 후련하다”
지난 31일 국무총리 후보자를 사퇴한 뒤 이틀 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기자들이 “위원장님, 앞으로 다짐 한 말씀 해주세요. 어떻게 남은 기간 하실 건지?”라고 묻자 “뭘 어떻게 해”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으며 “국민들이 좀 관심을 많이 갖고 있잖아요”라고 한 기자가 맞받아 치자 “앞으로 뭐 밥 먹고 잠 자고 다 하는 거지”라고 대꾸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오전 11시 30분 쯤 자택을 나선 뒤 지인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했다.
그간 김 위원장은 가족과 친지들에게는 총리직에 아무 미련이 없다는 뜻을 밝혀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당선인이 끝까지 붙잡았다”며 “더 있어봤자 욕만 먹으니 그만두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 위원장은 총리직에 “손톱만큼도 미련이 없고, 속이 시원하다”라는 심경을 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사퇴를 만류했지만 의혹이 불거지자 미련 없이 물러나기로 했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 가족들은 경기도 안성 땅 의혹에 대해 “안성 땅은 잘못 산 땅이고 별 것도 아닌데, 언론이 왜 문제삼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김 위원장은 총리 후보직은 사퇴했지만 인수위원회 위원장직은 계속 유지하며 후임 총리후보자 물색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박 당선인은 인수위 업무보고를 받지도 않고 새로운 총리 후보자 지명과 내각 구성 작업에 들어갔다. 다음 달 25일로 예정된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총리와 장관 인사청문회를 마치려면 박 당선인에게 남은 시간은 사실상 일주일도 채 못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총리 후보자 물색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박 당선인은 이례적으로 “이러면 누가 하겠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었다.
화난 박 당선인
“이러면 누가 하겠냐?”
박 당선인은 지난 30일 최근의 국회 인사청문회 진행 방식에 대해 “사적인 부분까지 공격하며 가족까지 검증하는데 이러면 좋은 인재들이 인사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맡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비판적 견해를 피력했다.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최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둘러싼 도살장청문회와 더불어 김 위원장의 총리 사퇴로 말미암은데 따른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 당선인은 당일 낮 서울 삼청동 인근에서 새누리당 소속 강원 지역 의원 8명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우리 인사청문회가 죄인 심문하듯 후보자를 심하게 몰아붙이는 식으로 가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박 당선인은 참석자들에게 “인사청문회가 일할 능력 검증에 맞춰져야 하는데 조금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오찬에 참석한 일부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며 “인사청문회가 신상 털기 방식으로 진행되면 누가 통과할 수 있겠느냐”라고 거들었고 특히 한 의원은 “예수도 인사청문회에 가면 문제가 될 것” 혹은 “경찰ㆍ검찰에서 범죄인을 뒤져도 이런 식으로는 안 뒤진다” 등의 자극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후보자의 정책 검증은 공개적으로 국민 앞에서 철저히 하되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나 후보자의 인격에 대한 것은 지켜줘야 하지 않느냐”면서 “미국은 그런 게 잘 지켜지고 있어서 인사청문회를 더 효과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박 당선인의 시각과 태도를 둘러싸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단 김 위원장은 청문회를 거치지 않았다. 엄밀하게 따지면 김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지 않았으며 언론의 사전 검증 세례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발을 뺀 것이다.
또한 더불어 지적받는 것은 3권 분립의 한 축인 국회를 바라보는 박 당선인의 관점이다. 아직 취임도 안 한 상황에서, 박 당선인의 ‘깜깜이 인사’가 불러온 악재를 단초로 몇몇 의원들을 불러놓고 국회를 비판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를 일종의 ‘위력 행사’나 ‘아집’ 등의 극단적인 해석을 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날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청문대상자를 올바른 시스템에서 정확하게 추천하지 않고 제도가 잘못됐다고 한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박 당선인은 이에 대한 인식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관계자는 “인사청문회의 방법론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지 검증 자체의 의미를 깎아내려선 결코 안 된다”고 말했다. 방식이나 절차에 지나친 측면이 있다면 이를 건설적으로 손보면 될 뿐, ‘검증이 너무 지나쳐서’라는 식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해명 자신있다더니, 돌연 사퇴
“제 부덕의 소치로 사퇴” 사실은 언론 때문에?
박근혜는 화났고 새누리당은 멘붕상태, 속이 후련한 건 김용준뿐?
빨간불 켜진 박근혜 인수위원회, 언제 총리 뽑나
새누리당, 김용준 낙마에 쇼크상태
김용준 사태 이후 열린 지난 30일 새누리당 최고·중진 연석회의는 내내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인한 충격파는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고 정우택 최고위원은 “자녀 병역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은 서류 검증만으로도 걸러질 수 있는 사안인데 당선인 측에서 사전 검증에 너무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며 “이제 인사 스타일을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5선 의원인 정의화 의원도 “출발이 중요한데 이러다가 대통령 취임 전 내각이 구성 안 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며 내외부적인 위기감을 전했다.
대선 이후 40여 일, 애초 침통한 민주통합당과는 다르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2013년은 맞은 새누리당은 잇따라 터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논란, 특별사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도살장청문회를 거치며 무기력하고 안이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일각에서는 “집권당과 새 정부의 당이 공존하는데서 발생하는 잡음”이라며 “현재 새누리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 박근혜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그동안 우리가 너무 안일했다. 또 삐끗하면 박 당선인, 다음 후보자, 당 모두에게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새누리당의 분위기는 심각하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대선패배론’이 쏙 들어갔다. 애초 대선패배와 더불어 친노와 비노의 주도권 다툼으로 혼란이 찾아올 것이라 여겨졌던 민주당은 새누리당과는 다르게 잇따른 호재로 말미암아 명분을 되찾은 모습이다. 특히 이번 박 당선인의 총리인선 실패로 말미암아 민주당 측의 입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그 동안 박 당선인이 ‘철통 보안’을 강조하며 인선 과정을 비밀에 부치면서 ‘밀봉인사’, ‘깜깜이 인사’란 비판이 나왔을 때 새누리당은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이동흡 후보자의 검증에서도 수박겉핥기 식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박민식 의원은 “총리 인선은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정치행위인 만큼 보안도 중요하지만 검증에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었으며 한 의원도 “김 후보자가 사퇴한 어제(29일) 의원들 몇몇이 저녁을 같이했다”며 “이 자리에선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고 새누리당 내부에도 박 당선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어 “의원들 사이에 ‘우리가 눈만 뜨고 있었지 너무 무기력했다. 지금이라도 당에서 (당선인 측에) 비판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 오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 후보자 사퇴를 계기로 생긴 기류의 변화는 수면 아래 머물렀던 자성론·위기감·비판론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되며 가시화 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다는 점은 현재 닥친 새누리당의 위기의식에 대해 현실감을 더해준 모습이다.
한 쇄신파 의원은 “지금 당내엔 ‘이대론 안 된다’는 위기감과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뒤섞인 상황”이라며 “당 지도부가 그동안 먼발치에서 박 당선인을 바라보며 방관했다는 걸 부인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당 일각에선 ‘공직 후보자 검증 TF(가칭)’를 꾸려 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청와대에선 “(당선인 측) 요청이 있을 시 언제든 호응하겠다”는 입장이고, 박 당선인 측도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일단 한발 물러선 형국이지만 그야말로 형식적인 반응이라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지며 무게를 상실하고 있다.
박 당선인 비서실 핵심 관계자는 “총리의 경우 당선인이 2·3순위 후보자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겠나”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핀 포인트’ 검증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