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대선패배 분석은 언제까지일까? 23일부터 30일까지 민주당에선 12번의 토론회가 열렸다.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민주당은 아직 패인을 정리하지 못했다. 토론회 때마다 왜 졌을까? 왜 패했을까? 라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다. 30일만 보더라도 오전엔 초·재선 의원 10명이 ‘대선 평가와 전망’이란 토론회를 열었고, 오후엔 여성 의원을 중심으로 ‘여성의 눈으로 본 대선 평가와 전망’이란 세미나를 했다.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고 ‘대선 평가와 전망’이라는 회의만 반복된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당선인의 마찰, 새누리당의 연속된 위기 등으로 활로를 찾은 민주당이지만 정작 마침표를 찍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지지부진하고 있는 형국에서 ‘민주당 대선패배 이유 10가지’라는 괴문서가 나돌고 있다.
조현상 기자
민주당, 아직도 대선 패인 분석하면 어떻하나
일단 민주통합당의 대선 패배관련 대부분의 토론회에서 지적되는 패인은 진영 논리에 따른 중도층 공략 실패다.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은 서울대 한상진 명예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포용을 통해 확장을 추구했는데, 민주당은 갈등을 통한 대립을 선택함으로써 오히려 진영 내에서 기득권만 챙기려 했다”며 “누굴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는 중도 세력과 무당파 대중이 민주당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중도층 공략 실패와 함께 토론회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인 계파 청산 요구는 이미 지난해 총선·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수없이 나왔던 지적이었다. 일각에서는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도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또 한편에서는 “남들이 다 문제라고 하는 것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니 해법도 없다”라고 말한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해 4·11 총선 때부터 ‘한명숙-문성근-이해찬-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노무현계의 연속이었다.
특히 일명 나는꼼수다 마케팅, 모바일 투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에 대한 엇갈린 목소리는 계파 정치와 그에 따른 패권주의에 기반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나꼼수의 경우, 김어준 총수 본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검은 넥타이를 풀지 않는다며 누누이 친노임을 밝혔고 “민주당도 잘하는 거 없다”라는 식의 계파색 발언을 지속적으로 내 ‘민주당 거리두기’ 즉 같은 편이지만 같지 않은 입장을 피력해왔다.
토론에 참석했던 영남대 김태일 교수는 “민주당의 집단적 기억력은 2주에 불과하다”며 “2주가 지나면 다시 계파적 이해가 고개를 든다”고 꼬집기도 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토론의 빈도, 패인을 분석하는 말잔치는 풍성하지만 정작 의원들이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말로는 다들 당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하지만, 그런 위기감을 찾긴 힘들다”며 “당이 더 깨져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고 말하는 등 자극적인 발언도 이어졌다.
대선 패배 10가지 이유,
이거 민주당이 작성한 거 맞아?
최근 민주당 보좌진 사이에서는 민주당 대선 패배 10가지 이유라는 문건이 돌아다니고 있다. 출처 불명, 누가 작성했는지 조차 모르는 해당 문건은 다소 유머러스하게 작성되었음에도 정곡을 찌르고 있다. 한 보좌진은 “마치 민주당 쪽을 조롱하기 위해 상대편에서 작성한 것 같은 느낌마저도 든다”라고 말했다.
해당 문건에서 10위는 故 이춘상 전 보좌관과 故김우동 전 홍보팀장의 죽음이다. 당시 박 당선인은 안철수·문재인 단일화 완성에 대한 해법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던 차였다. 그러는 와중에 박 당선인의 측근이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하자 주변에서는 강력하지는 않지만 문재인 단일화에 대한 대응책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대두되었다. 결과적으로 박 당선인 측근의 죽음과 애절한 사연, 그리고 자신의 측근을 아끼는 박 당선인의 행보가 보수층에 어필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두 측근의 죽음에 따른 박 당선인의 행보는 빠짐없이 전파를 탔다.
9위는 여론조사 결과 조작 및 확산자들에 대한 내용이다. 대선 출구조사 당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출구조사에서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가 이기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 일순간 환호가 터져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허위정보로 판명되었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허위정보를 확산시켜 보수층에 비상이 걸리게 했다’라고 기술했다.

8위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는 내용을 폭로해 보수층의 안보불안감을 자극했던 것이다. 대북관 관련 불안감 조성은 전통적으로 보수의 키워드였다. 특히 이번 국정원 여직원 3차 조사에서 밝혀졌듯이 해당 여직원도 여론조작을 통해 안보불안감을 확산시킨 바 있다. 여직원 김모씨는 지난해 12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기자협회 초청토론회에서 “조건 없이 금강산 관광을 즉각 재개하겠다”고 주장하자 “신변안전 보장 강화에 대한 약속이 없으면 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너무도 당연한 거 아닌가? 금강산 한번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목숨 걸고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글을 올렸으며 지난 대선기간 1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우리 정부를 ‘남쪽 정부’로 부른 것에 대해 “어제 (대선) 토론 보면서 정말 국보법 이상의 법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조차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라고 표현하는 지경이라니”라며 ‘남쪽 정부’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 7위는 바로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태였다. 보고서에 따른다면 민주당 측에서도 당원들이 국정원 여직원이 사는 오피스텔에 집단적으로 몰려가 사실상 감금한 사건은 마이너스라고 봤던 것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대선 당시 불법점거 및 감금 등을 이유로 민주당을 강력히 지탄한 바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선거공작 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수서경찰서를 방문해 국정원 여직원을 불법감금한 혐의로 민주당 관계자들에 대해 고발장을 접수했으며 김태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여성본부장과 단원들도 이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여직원의 오피스텔 감금 사건 등 민주통합당과 문 후보측의 여성인권 유린을 비판하며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단숨에 덮어버렸다.
해당 내용에 대해 관계자 몇몇은 “(당원들이)이걸로 판세를 뒤집을 수 있겠다 성급하게 덤벼들었고 반면 새누리당의 그 점을 이용해 차분히 대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아직도 대선패배 분석 중
민주당 패인 괴 보고서, 민주 보좌진 “마치 상대 쪽에서 만든 것 같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대선패배 요인 2위라고?
민주당 지지율 29%, 대선 당시 文 지지율 48.0% 올려다보기만...
반대로하면 새누리당 승리요인 10가지
관계자 “해당 보고서 받아드리기 어려워”
해당 보고서의 7위부터 10위까지는 주로 사건위주로 짜여있는 것에 반해 6위부터는 보수의 인물들이 순위에 올라 있다. 한 관계자는 “윤창중, 종편, 이정희, 김관진 특히 1위가 노장층 부모들이다. 이건 전부 보수의 아이콘 아니냐”며 “민주당 패배 분석이 아니라 새누리당 승리 분석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보고서의 6위는 소위 자유의 투사들이라는 김동길, 윤창중, 변희재 등 보수논객들이 명확한 논리와 소신으로 야권 논객을 압도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인수위 수석 대변인직에 임명되었을 때 극단적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부적격자로 논란이 많았던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눈에 띈다.
윤 대변인은 그동안 칼럼세상이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정치적 창녀’, ‘종북딱지’, ‘고깃덩어리’, ‘젖비린내’ 등 상식이하의 극단적, 자극적 발언을 서슴치 않으며 극렬 보수층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줘 왔다. 윤 대변인은 정운찬 전 총리와 윤여준 전 장관,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을 '창녀'로 매도했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김정은이 보낸 축하 사절단이 대통령 취임식장에 앉아 '종북시대'의 거대한 서막을 전세계에 고지하게 될 것 이라는 등 정상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선동적 상상력으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5위는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비참여의 문제가 지적되었다. 종편들은 대선철을 맞아 하루 종일 선거 관련 방송을 해왔으며 야당 측은 출연을 거부하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인사들이 여론형성을 좌우했다. 이 관련 조창현 한양대 석좌교수는 “종편 정책을 안 나감으로써 항의하느냐 이건 어린아이 같은 짓이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4위는 안철수 사퇴였다. 당시 안철수 후보의 일방 사퇴에 대해 외부에서는 100% 실패라고 봤던 것에 비해 민주당은 안철수 사퇴를 성공이라고 봤다. 극적인 단일화도 없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같은 감동도 없었다. 단일화 효과가 줄었다는 것이 당시 주류 분석이었음에도 민주당은 그 후속책 마련에 대응하지 못했다.
지난 27일 민주당의 정책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안철수 현상과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안 전 후보를 ‘정치적 아웃사이더’로 규정한 것이다. 특히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와 정몽준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당선되지 못한 정치적 비주류’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정치권의 주역이 된 경우는 없다”면서 “안 전 후보가 입당한 뒤 당내 혼란과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대선은 물론 이후 안 전 후보가 미칠 영향에 대해 견제했다.
이밖에도 ‘안철수는 민주당의 위협요소’라 기술하고, 안철수의 ‘원심력이 작용할 여지가 크다’는 분석도 포함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안철수 무소속 전 대선 후보가 귀국해 신당을 만들 경우 민주당이 쪼개지는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원측은 “이런 시각도 있으니...”라며 “당에 공식 보고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민주당 비주류 의원은 “왜 이런 보고서가 대선 평가 기간 중에 나오느냐”라며 “대선 패배 책임자들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책임 면탈을 위해 내놓은 것”이라 지적했다.
한 민주당 당직자도 “논란 요소가 있는 보고서로 안철수가 없었다면 대선 자체가 불가능했던 ‘어제’를 생각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지난 29일 열린 비대위 대선평가위원회는 정치적 견해차가 클 수 있다는 점을 들며 ‘야권연대 문제’ 평가를 미루기로 했지만 민주당 안팎에선 여전히 안철수가 큰 위협 요소로 평가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항간에는 독일 유학중인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과 안 전 후보의 밀월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안 전 후보측 인사들이 지역포럼을 돌며 독자적 정치세력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선 당내 계파 갈등이 안 전 후보의 귀국 및 신당 창당과 맞물려 분당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아 대선 당시에는 패인 4위였지만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총체적 패인의 1위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위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선후보였다. 일각에서는 두 번에 걸쳐 TV토론에 참여한 이정희 후보를 두고 재미있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두 번의 토론은 가장 효과 있는 반공교육이었다”는 것. 당시 이 전 후보는 박 당선인의 정체성을 물고 들어지며 진보진영 측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본인이 대선 출마직전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내 출마가 불편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결과적으로 맞는 말이 되었다.
박 당선인을 몰아붙이며 개인의 이미지 쇄신에는 성공했지만 그 반대급부가 결국 보수층의 분노를 사며 결집을 불러냈다. 문재인 후보로서는 달갑지 않은 현상을 야기시킨 셈이다. 때문에 박 당선인의 국민대통합과 맞선 민주당의 진영통합에서 통진당과의 선거연대는 사실상 실패라는 주장도 있다. 이와 함께 김관진 국방장관이 2위에 올랐다. 김 장관은 그 동안 “종북은 국군의 적”이라며 군의 정훈교육을 강화해왔는데 이것이 군을 거쳐 간 20대 남성들의 보수후보 지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1위는 노장층 부모들 이른바 보수나 기득층으로 대변되는 5060세대였다. 현 시점에서 초유의 화두로 떠오른 세대 간의 갈등의 촉발요인이기도 하다.
한편 민주당은 대선이 끝난 지 50여일이 되어가는 지금껏 ‘대선패배분석’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쳐 지난 21~25일 리얼미터가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새누리당 49.8%, 민주당 29%를 기록했다. 새누리당 49.8%, 어디선가 많이 본 숫자이다.
대선 개표 결과 문재인 후보가 획득한 투표율 48.0%와 오버랩되는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의 현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여전히 대선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당시 얻었던 지지율 48.0%를 올라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