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갇히고 싶은 20대들
학교에 갇히고 싶은 2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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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 장례식같은 대학생들, "관 짤 돈 있음 다행이죠"

 

 

 

대졸? 취업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죠
80%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
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부끄러운 수준’

“졸업하면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학자금 대출로 제 나이에 벌써 빚이 이천만원이에요. 그거 다 갚으면 서른즈음이겠죠? 더 두려운 건, 서른이 넘어도 그 빚을 다 갚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거에요. 부모님은 점점 나이 드시는데 저는 아직도 어린 아이마냥 손가락만 빨며 부모님만 쳐다보고 있어요. 암담하네요.” 김새게 웃으며 말하는 대학생 A씨(여·24)는 2월에 졸업식을 앞두고 있지만 현재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한 20대를 보내고 있다.

 

취직해도 문제?
“취직은 미친짓이다!”

A 씨는 F학점 받아 졸업이 유보된 동기들이 부럽다고 했다. 차라리 자신도 F학점을 받아 졸업을 늦춰볼 걸하고 후회 한다고도 했다. 학기 중 단 한 번도 휴학하지 않고 대학 4년을 다닌, 말 그대로 스트레이트식 졸업이지만 그것이 취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오히려 휴학을 해 늦게 졸업한다 할지라도 스펙을 쌓아두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이다. A 씨는 평일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며 방학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평일 주말 구분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이 휴학에 완강히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밑으로는 곧 대학생이 될 여동생이 있어 가능한 빨리 졸업해야만 했다. 짬짬이 공부하기는커녕 학교 수업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벅찼다.

물론 기업들은 스펙을 보지 않는다고, 진실하고 성실한 인간성만 갖추면 누구에게나 취업의 문이 열린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A 씨는 이를 믿지 않는다. 그건 아마 A 씨 뿐만이 아니라 모든 20대들이 그렇게 생각할 터다.

최근 A 씨와 같이 취업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20대들이 많다. 특히 졸업을 앞 둔 예비 졸업자들의 경우는 더 심하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이트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대학 졸업 예정자 2,348명 중 60.9%가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6명인 꼴이다. 1인당 빚은 300~600만원 미만(16.5%)이 가장 많았으며 300만원 미만(12.7%)등의 순으로 집계되었다. 평균 빚은 그보다 훨씬 높은 1,560만원으로 통계되었다. 이처럼 빚을 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학교 등록금 때문이다. 이는 92%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생활비(44.8%)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처럼 등록금 마련의 목적으로 진 빚을 고스란히 등에 업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보니 예비 졸업자들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하다. 졸업식이 마치 장례식처럼 우울하고 암울할 따름인 셈이다. 그나마 관 짤 수 있는 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빚을 진 상태로 졸업하는 20대들에게 어쩌면 관은 사치일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졸업 예정자들이 졸업 유예 신청을 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대학교 4학년생 623명 중 42.7%가 졸업을 연기할 계획인 것으로 온라인 취업포터 사이트가 통계를 냈다. 특히 전공과목에 따라 상경계열이 52.3%로 가장 높았으며 이·공학 계열(42.4%)이 그 뒤를 이었다.

 

 


‘빛나는’ 졸업장은 개뿔 ‘빚내는’ 졸업장

초조하게 취업 전선에 뛰어든 20대들이 번번이 취업에 낙방하자 눈길을 돌린 곳이 바로 아르바이트다. 학원 시간 강사부터 시작해 레스토랑, 카페, 호프집, 심지어 막노동 공사판까지. 이른바 생계형 아르바이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프리터족(알바족)과 유사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시급이 10,000원 안팎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최저 시급은 4860원이다. 심지어 이조차 지켜지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나라 4년제 사립대의 평균 등록금은 738만원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비싸다. 이를 대학생 10명 중 6명이 충당할 수 없어 빚을 져가며 그야말로 ‘빚내는’ 졸업장을 따내는 것이다. 그 후 빚은 갚아야 하는데 취직이 되지 않으니 자연스레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눈길을 돌리게 되는 풍조가 짙어지고 있다.

사실 청년 실업 문제의 심각성은 꾸준하게 대두되어 오고 있는 화제다. 2012년 전체 실업률은 3.2%인데 반해 청년 실업률은 7.5%에 도달했다. 2.5배나 높은 수치인 것이다. 이는 20대 구직난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80%에 육박할 정도로 높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기하학적으로 높은 대학진학률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불명예스러운 ‘청년실업증가’다. 한 대학생은 “넘쳐나는 고등학력을 누가 ‘고등’학력이라고 인정해주겠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졸업장을 빚내는 졸업장이라고 많이들 비유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다보니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에 대학생들이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이는 졸업을 유예시키는 사례가 꾸준하게 증가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대기업·공기업 쏠림 현상, ‘빚 갚으려면 어쩔 수 없어요’

청년층 취업연령을 낮추는 정책이 세계적인 추세다. 가장 활동량이 많은 청년층을 조속히 사회에 진입시키는 게 올바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대학 5학년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학교에 갇혀 있길 원하는 20대들이 많다.

그동안 우리 정부도 청년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방안을 꾸준히 마련했다. 최근에는 학력·영어점수 등을 적는 ‘스펙란’을 없애고 직무 관련 경험에 초점을 맞춘 ‘역량기반 지원서’를 보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대학 5학년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 없다는 취지로 파악된다. 기존 이력서의 학력·영어점수·주민번호·신체조건·거주지·재산내역·사족사항 등을 적는 란을 없애는 대신 직무관련성이 높은 교내외 활동경험·자격사항·인턴 근무경험 등을 적는 란을 마련했으나 누리꾼들은 “면접을 영어로 보면 어떻게 하지?”, “전혀 기대가 안 되는 이유가 뭘까”와 같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젊은이들이 대기업과 공기업에만 쏠려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들도 있다. 그러나 연봉정보사이트 페이오픈은 학자금 대출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 후 최소 연봉이 3,800만원 이상이 되어야 안정적인 미래 설계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20대 구직자들이 단순히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자신의 적성과 역량과는 무관하게 대기업과 공기업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고 풀이되며, 10명 중 6명이 등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하는 현상과도 크게 연관된다.

또한 페이오픈 박영훈 차장은 “등록금 부담이 덜어질 경우 무조건적인 대기업 선호현상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직장선택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작년 한 해 반값 등록금 열풍이 강하게 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반값등록금이 실현되지 않아 분노한 20대가 들고 일어선 것이다. 만일 반값 등록금이 현실화 될 경우 2,000만원 내외의 연봉 수준이면 학자금 대출 상환이 가능해진다. 중소기업의 대졸 평균 연봉인 2,175만원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결국 빚을 갚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20대들이 대기업과 공기업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20대 구직자들이 연봉에 치중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가 팽배한 사회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이에 관련해 전문가는 “돈이 돈을 부르는 사회 시스템은 가난에 대해서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다”며 “여기에 ‘대학=취업=돈’이라는 인식이 80%에 육박한 대학진학률을 만들어 낸 것이다. 빚을 져서라도 나중에 좋은 곳에 취업을 해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막무가내 식이 우리 사회에 통했다”고 사회 풍조를 꼬집었다.

더불어 취업난이 졸업유예라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 풍조가 결과적으로 신규 입직연령 상승과 부모세대의 경제적 부담까지 가중되게 할 것으로 전문가는 전망하고 있다. “노동 시장의 고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노동생산성 저하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꼭 빚을 져가면서까지 대학교를 졸업할 필요는 없다. 다만 ‘대학조차 나오지 않은 사람이 대기업에 들어갈 수는 없고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 수 없어’라는 인식에서는 졸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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