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수위 인선과 새 정부의 골격을 발표할 때마다 ‘박정희 스타일’이 강하게 배어 나온다. 당선인에게 ‘아버지 박정희’의 영향은 클 것이다. 11세에 대통령의 영애가 된 뒤 16년 동안 이 기간의 3분의 2를 큰 영애로, 3분의 1을 ‘퍼스트레이디’로 살았다. 가장 많은 것을 경험하고 습득할 수 있는 20대에는 절대권력의 2인자였다. 권력의 속성과 정치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경험하고 목도했을 것이다. 대선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자 ‘아버지 따라 하기’를 선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당선이 되면 아버지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근혜가 인수위를 통해 ‘박정희 부활’의 시동을 걸었다고 평했다.
청와대 정부개편 “누가 뭐래도 아버지를 따르려합니다”
개편된 청와대 조직은 ‘아버지 시절’과 닮은꼴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바꾸고 실세들의 몫이었던 기획관을 없애는 대신 비서실장 산하에 9개 수석을 배치했다. 비서실장에게는 인사위원장이라는 막강한 권한까지 부여했다. 비서실장을 통해 ‘직접통치’를 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1968년 박정희가 행정각부에 대응할 수 있는 ‘작은 내각’을 수석이라는 이름으로 비서실장 아래에 둔 것과 일치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자신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당시의 청와대와 지금의 정부가 판박이다. 수석들을 통해 장관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1인 집권체제를 유지했던 그 시절과 흡사하고 새 비서실장은 대단한 파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호처도 ‘그 시절’로 되돌아 간 모양새다. 대통령실장 지휘를 받았던 경호처가 경호실로 바뀌며 경호실장의 직급도 차관급이 아닌 장관급으로 상승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경호실을 강화는 겉치레에 해당하는 과도한 의전이나 경호를 줄여 실용성을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과도 역행하는 처사”라고 힐난했다.
또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청장이 차관급이라는 점은 감안하면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호실장이 장관이라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부처를 만든 것도, 해양수산부를 부활시키고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것 또한 박정희를 닮았다. 청와대 조직에 새롭게 등장한 국가안보실 역시 박정희가 대북정책을 조율하기 위해 만든 안보특별보좌관제의 벤치마킹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경제부총리 제도를 부활시켰다. 경제부흥과 성장을 강조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난다.

경제부총리제를 다시 도입하면서 일할 사람까지 그 때 그 시절의 얼굴로 채우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 남덕우, 이승윤, 김만제 등 ‘서강학파’가 경제부총리를 맡았던 것처럼 김종인 전 선대위 국민행복위원장,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 홍기택 인수위 경제1분과 위원 등 ‘서강학파 2,3세대’가 당선인의 경제분야를 책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강학파’의 재등장은 개발시대 논리가 경제 전면에 포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60년대 미국 등에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고 박정희의 개발독재와 압축성장 정책에 동참한 서강대 교수들을 일컫는 ‘서강학파’는 김영삼 정부까지 맥을 이어가다가 외환위기 발발로 일선에서 퇴장하게 된다. 이번에 당선인으로 인해 ‘복권’이 이뤄진 셈이다.
경제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끌고 가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산업화 시대의 ‘유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소생시키려는 건가. 선거운동 내내 외쳤던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국민들을 등진 맹목적 ‘경제 부흥’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2인자를 두지 않고 분할적 직권통치를 했던 박정희 스타일 그대로다. 자신의 주장을 말하지 않고 보좌 기능에만 충실한 사람을 중용했던 아버지 스타일이 딸에게서 그대로 관찰된다. ‘밀봉 인사’ ‘철통 인사’도 그 때 학습한 것일 게다. 이런 조건에 잘 맞아 떨어지기는 사람 중 하나가 사퇴한 김용준 후보자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초청 <SBS 시사토론>에 출연, “현 정부의 최대 실책은 인사문제”라며 “현 정부에 대한 불신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회전문 인사 등 인사문제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불행히도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소통이 안됐다는 것”이라며 ‘불통 문제’도 거론했다.
그랬던 박 당선인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 전후 ‘철통 보안’ 원칙을 내세우며 인선 작업은 물론이고 인수위 활동에까지 ‘비밀주의’ 원칙을 유지했다. 노골적으로 ‘점령군’행세를 한 5년 전 인수위를 반면교사로 ‘낮은 자세’와 ‘조용한 인수위’를 강조했지만, 정작 국민과의 소통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밀봉 인수위’, ‘깜깜이 인수위’라는 오명도 얻었다. 윤창중 대변인이 인수위원장 인선 내용이 담긴 서류봉투를 기자들 앞에서 뜯어 보이는 ‘쇼’를 하면서 ‘밀봉’이라는 주홍글씨가 처음 새겨졌다. 윤 대변인이 인수위 첫 워크숍에 대해 “영양가 없다”고 말한 것은 ‘깜깜이 인수위’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확정되지 않은 업무보고 내용은 아예 브리핑도 않겠다고 해서 ‘불통 인수위’라는 원성이 커졌고, 업무보고 브리핑을 다시 하겠다고 했으나 제목만 읽어주는 식이었다. 정부의 업무보고를 언론에 전했던 과거 인수위와 확실한 차별화였지만, 국민과도 멀어지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역시 ‘밀봉 인선’이었던 김용준 후보의 실패가 ‘예고된 참사’라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불통 스타일’을 수정하지 않은 이상, 이런 참사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끝없는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무한한 부모사랑
서울에 ‘박정희 기념관’이 또 생길 모양이다. 박정희 신당동 집 일대를 기념공간으로 조정하려던 움직임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난 지방선거 때 서울을 강타한 ‘민주당 돌풍’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최창식 후보가 당선된 덕분이다. 중구청은 ‘박정희 가옥’ 인접 건물을 매입해 철거한 뒤 공영주차장 부지와 합쳐 수천 평의 면적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지하에 박정희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정희가 단 하룻밤 묵었던 곳에 10억 원을 들여 기념관을 세우겠다는 지자체도 있다. 1962년 박정희가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 단 하루 묵었던 옛 울릉군수 관사를 재정비해 박정희 기념관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울릉군의 재정자립도는 13%로 전국 꼴찌 수준이다.
박정희가 잠시 기거했던 하숙집까지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경북 문경시는 박정희가 문경 서부심상소학교(현 문경초교) 교사로 재직 당시 하숙했던 ‘청운각’을 확장하고 개조했다. 사당을 세우고 박정희 부부의 영정과 분향소도 마련했다. 투입된 예산은 17억 원. 문경시의 재정자립도는 18%로 형편이 매우 어려운 지자체다.
아버지 뿐 만이 아니다. 당선인의 모친인 육영수 기념사업도 지자체가 나서 추진하고 있다. 대선에서 당선인이 승리한 직후인 지난 12월 25일 충북 옥천군은 2017년까지 140억원을 들여 옥천읍 교동리 육영수 생가 주변에 ‘퍼스트레이디 역사문화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옥천군은 재정자립도가 20%에 불과한 지자체다.
이와 관련 박근혜 당선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왔던 모든 일들에 대해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4대강과 쌍용차 사태에 침묵…말로 정치하는 박근혜
소외감은 집권당뿐 아니라 국민들도 느끼고 있다. 말로는 ‘100% 국민대통합’을 외치면서도 대선에서 박 당선인에게 반대표를 던졌던 절반 가까운 국민들의 마음을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 산하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임명된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대선 직후 “(문재인 전 후보를 찍은) 48%도 중요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을 찍은) 51.6%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실제 박 당선인이 사실상 첫 인사로 지명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 ‘48% 껴안기’와 ‘대탕평 인사’에 반하는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후보자의 출신(대구)과 그동안의 보수성향 판결을 근거로 야권은 물론 여권 일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상돈 교수는 “국민의 3분의 2가 반대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박 당선인이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4대강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검증하겠다고 반박하고 나선 반면, 박 당선인은 “의혹이 있으면 밝히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해 나가야 한다”(윤창중 인수위 대변인)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수위 경제2분과는 당장 4대강 사업에 대한 현장 방문 등의 조사활동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일단 손을 대지 않고 방임하겠다는 것이다. 대선 기간 약속한 쌍용차 국정조사에 대해 새누리당이 입장을 180도 바꾼 것에 대해서도 박 당선인은 침묵하고 있다.
박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는 48%의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본인의 약속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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