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회장이 12년 동안 불도저처럼 밀어부친 숙원사업이자 지하 6층, 지상 123층 높이 555m 규모의 초고층빌딩인 ‘제2롯데월드’가 벌써 금이 갔다. 참여정부 내내 막혀있던 이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 중인 지난 2011년 6월 착공에 들어가 현재 중심부 구조물은 33층, 메가기둥은 17층까지 공사가 진행된 상태. 잠실 롯데월드 맞은편 부지에 제법 모습을 드러낸 롯데타워의 위용은 외부 엘리베이터 골격조차 웬만한 빌딩 한 채와 맞먹을만한 규모다. 그러나 이 초고층 빌딩을 지탱하는 핵심 구조물이라 할 수 있는 메가기둥에서 균열이 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랜드마크’가 아니라 ‘흉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며 민심이 흉흉하다.
‘MB 좋고 신격호 좋은’ 정재계 유착의 상징물, 제2롯데월드 타워
신격호 “죽기전에 꼭 보고싶다”더니…균열 감지하고도 공사 강행
롯데건설 “균열은 갔지만 문제없다”, 국민들 “늑장대응이 문제”
건축물은 지배세력의 의지를 반영
초고층 건축물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막대하다. 일자리 창출과 관광수입 등 시장에 미치는 긍정적 경제 효과는 물론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은 이미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증명됐다. 피라미드, 콜로세움, 자금성, 에펠탑, 자유여신상 등 인류 역사의 위대한 건축물들은 그 시대의 증거물로 남아있어서 당대의 시대정신과 사건들을 연상케 한다.
따라서 학계 전문가들은 건축물을 두고 그 시대를 풍미한 지배세력의 의지를 반영하는 예술품 이라고도 평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봄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싶은 지배자들은 권력에 대한 표출을 위해 우후죽순으로 땅을 파고 건물을 축조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정계는 자기 업적의 물리적 증거물로 건축물을 남기기 위해, 재계는 권력의 강력한 후원을 받아 자본가 계급의 표상으로 자리 잡기 위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재계의 유착이 이뤄져왔다.
이를 방증하듯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불가 방침을 고수했던 123층(555m) 서울 잠실 제2 롯데월드의 신축이 이명박 정부에서 허용됐다.
참여정부 당시 공군기술 전문 장교 2명을 불러 초고층 건축 허용이 가능한 쪽으로 모든 기술을 검토한 결과, 국가 안보 문제와 항공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노 전 대통령은 “무척 아쉽지만 중대 국가 안보가 걸리니 초고층 허용은 접자”라고 결론 내린바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당시 “주변 서울공항에 이·착륙하는 비행기 안전 확보를 위해 높이를 203m로 제한해야 한다”며 건설 불가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온 군 당국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입장을 바꿔 “제2 롯데월드 건립 허용을 위해 다각적으로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2008년 청와대에서 재계 총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투자활성화 민관합동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발언이 계기가 된 것.
당시 이상희 국방장관이 “제2 롯데월드가 건설되면 외국 귀빈을 태운 대형 항공기가 서울공항을 이용할 때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1년에 한두 번 오는 귀빈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이용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당시 국방부의 입장 선회는 “정부눈치보기에 급급하다”라는 비난을 받았고, 바통을 받은 정부 또한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용하자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논란이 아니냐는 의혹이 거셌다.
이런 잡음 속에서도 신격호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5월 제2롯데월드 사업계획을 최초 요청한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까지 끌고 온 이 사안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이룩하게 됐다.
메가기둥 11곳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견돼 안전성 문제에 ‘적색등’이 켜졌다.
지난 4일 한 매체는 “롯데건설이 오는 2015년 10월까지 완공하겠다는 목표아래 진행중인 제2롯데월드 건물의 5·8·9층 메가기둥 11곳에서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균열이 발생했다”며 안전성 문제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제2롯데월드의 감리사인 한미글로벌이 지난해 10월 25일 ‘작업지시서’에 “메가기둥 9층 철골 용접 부위의 콘크리트에서 균열이 발생했다”며 “균열 부위가 심각한 수준이므로 설계사·감리단 등과 용접 방안을 협의하기 전 추가 용접은 불가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감리사는 롯데건설 측에 용접에 의한 균열 방지방안 제출 및 협의, 이미 발생된 균열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 실시, 균열 보수방안 제출 등을 요구했다. 또 “향후 용접에 의한 유사 균열 발생이 예상되니 검토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롯데건설은 감리사의 지적을 무시한 채 정밀 안전진단도 없이 메가기둥 층수를 계속 높였다. 이어 12월이 돼서야 구조물 정밀 진단을 위해 다소 소규모 업체인 S사를 선정하고 균열에 대한 진단을 받았다. S사는 의뢰를 받은 지 3일 만에 구조 안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서를 롯데건설에 건냈고 균열로 인한 안전성 위험에 대한 정밀검사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S사는 “롯데건설로부터 소견서를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뿐 균열의 원인을 검증하거나, 균열 보강작업을 하라는 지시는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균열은 갔지만 대처는 없었다
제2롯데월드 타워의 메가기둥 분열 사태를 알면서도 방관, 아니 무시한채 공사를 강행해왔다. 이 소식을 지난 5일 국내 언론사들이 일제히 보도하자 롯데건설측은 “콘크리트 균열(크렉)은 일반적인 현상으로, 안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메가기둥의 균열이 발견된 곳은 콘크리트 기둥에 용접이 이뤄진 철판 끝 부위이며 용접열에 의한 균열로 확인됐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균열이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보강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며 “용접열에 의한 표면 균열 가능성은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포스코강재연구소에 용역검토를 실시했다”고 덧붙였다.
현장 검증작업 등을 거쳐 균열상태를 확인해본 결과, 균열의 깊이가 용접열에 의한 피복두께 이내로 구조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 롯데건설측의 주장이다.
박영인 롯데잠실프로젝트 총괄이사는 “해당 균열은 콘크리트의 문제라기보다 용접 때문에 생긴 게 확실하다”며 “콘크리트란 게 원래 균열이 가는 성질이 있는데, 이 정도의 금을 문제 삼아 공사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음을 중앙일보는 보도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롯데건설이 안전진단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공사를 강행한 것을 두고 안전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반문을 제기했다.
H건설사 관계자는 “이런 경우 균열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질 때까지 메가기둥에 추가 부담이 가는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의견을 내놨다. 이어 “균열의 심각성을 떠나 즉각적인 대처를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 든다”고 덧붙였다.
실상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은 공개되지 않아 외부인들은 균열에 대한 판단을 정확히 할 수 없기 때문에, 검증된 업체로부터 정밀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롯데건설 스스로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목소리다.
또 다른 건설 전문가는 ‘메가기둥 균열’ 사태를 두고 공사 기간에 쫓겨 부실공사를 당연시 해온 국내 건설계의 자화상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는 “외국의 경우 공사 진행 중 안전성과 관련 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중단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사측은 무조건 시간에 맞춰 해내라 식의 업무지시로 압박감을 준다”고 토로했다. 또 비가오나 눈이오나 현장에서 밤을 새며 철야를 강행하는 기술자들이 완벽에 가까운 시공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서울시가 나섰지만 믿을만한가?
제2 롯데월드 균열사태에 서울시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서울시는 메가기둥에 균열이 생겨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시정부 차원의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할 것이라고 6일 밝혔다.
서울시는 이수권 동양미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강석빈 석산구조안전기술사사무소 소장, 김명준 태경마루건축 대표 등으로 구성된 외부전문가 3명을 꾸려 공사현장을 우선 점검한 상태다.
시에 따르면 외부 전문가들은 “구조안전 점검을 실시한 결과 구조적인 문제는 없고, 당장 공사를 중단할 필요도 없다”며 “다만 대한건축학회 등 외부 공인 기관에 정밀진단을 받을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강석빈 소장은 “건물 9층 기둥 코너부분에 균열이 발생했는데 이는 철판 부분을 용접하면서 열이 콘크리트에 전달돼 균열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며 “기둥 밑 등을 보면 건물 붕괴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은 경미한 사항”이라고 설명한 상태다.
이어 서울시는 민간업체보다는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정밀안전진단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로선 대한건축학회에 의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편 정밀안전진단결과와는 상관없이 제2롯데월드로 인한 롯데 측의 ‘타격’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균열이 확인 됐는데도 ‘공사강행’을 한 배짱과 ‘늑장대응’으로 국민들을 속이려 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여지가 없기 때문.
시작단계부터 MB정권을 연결시킨 수많은 특혜 의혹에 휩싸이며 물의를 빚었던 신 회장의 야망이 집결된 제2롯데월드가 성공리에 무사 완공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