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위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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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상당기간 냉각국면 예고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며 순항을 기대했지만, 지난 12일 북한의 제3차 핵실험으로 냉각국면이 오히려 더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좌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이와 관련 북한의 핵실험에도 새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수정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북한이 추가로 핵 실험을 한다고 그걸로 협상력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서해 북방한계선 등에서 추가도발 가능성 높아
남북 냉각기 길어질 듯…금강산관광 재개 등 시기상조
“비핵화는 사실상 실패, 비확산에 힘 모으자” 현실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박 당선인은 “북한의 핵실험은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택한 것”이라며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수정은 없다고 강조했다.

“북핵 불용, 대화의 창은 열어두겠다“

박 당선인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억지에 기초한 것이지, 유화정책이 아니다”면서 “이미 핵실험 등 북한의 여러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큰 틀의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4차·5차 핵 실험을 해도 협상력이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고, 방위역량 강화를 위해 안보 분야 공약을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당선인이 다른 부처보다 외교장관과 국방장관 인선을 먼저 발표한 배경에도 이런 안보 위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에서의 남북관계를 딛고 신뢰를 바탕으로 북측과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기대했고, 북측의 3차 핵실험 예고에 ‘북핵 불용’을 거듭 밝히면서도 “대화의 창은 열어둘 것”이라며 북측에 추가도발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 당선인은 특히 지난 7일 여야 지도부와 긴급 3자회의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할 수 없으며, 만일 북한이 우리와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 등 도발을 강행할 경우 6자회담 당사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신뢰 프로세스, 이대로 무너지나

그러나 북한은 박근혜 정부와 남북관계의 첫 단추를 끼우기도 전에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로 포문을 열었다. 신뢰가 조금씩 쌓이고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국제사회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로 남북관계 정상화와 발전을 꾀하겠다는 박 당선인의 이 같은 구상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남북관계의 냉각기는 상당부분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일각에서 예상했던 5·24조치 부분 해제와 중단된 금강산관광 재개도 시기상조가 될 공산이 높아졌다. 국제사회 역시 다시 북한에 강력한 ‘채찍’을 들 수밖에 없고 북한이 이에 다시 반발할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극대화를 이룰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함께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핵무기 운반체로 활용되는 장거리 로켓의 발사 성공에 이은 것으로 기존의 안보환경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위협하는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의 신뢰 조성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기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보다 훨씬 강력한 제제 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핵실험에 대한 추가제재에 북한의 대남 도발 가능성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달 25일 우리 측에 대해 “유엔제재에 직접 가담하는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제재는 곧 전쟁이며 선전포고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지전적 형태, 즉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나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등에서의 대남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부각시키고 평화체제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포석이다.

북한은 이미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이후 “조선반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비핵화가 아닌 군축협상을 주장했다.

이 같은 여러 정황 등으로 핵실험 정국이 다소 진정되더라도 적어도 상반기 내에는 남북관계에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 민통선일대에서 군 장병들이 경계를 강화했다.

6자회담에 폐기론·신중론 등 의견 다양

박근혜 정부가 전향적 대북조치를 취하기 어려워지고 북측도 대화 자체를 거부할 소지가 커져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상당기간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여기에 그동안 남북관계의 비핵화협상 테이블이었던 ‘6자회담’도 이제는 무용론에서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플루토늄에 이어 우라늄탄 개발, 핵탄두 경량·소형화 등 핵보유국의 길에 들어선 상황에서 비핵화 협상을 전제로 한 6자회담의 실효성은 없다는 것이다.

6자회담은 2008년 말 폐연료봉 시료 채취와 검증을 둘러싼 이견으로 중단된 뒤 4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번 3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6자회담 시스템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테이블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지난 1월 2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의 가중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으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했다”며 일방적으로 6자회담의 종식을 선언했다. 이것은 북한이 공공연히 북핵 포기와 경제지원 및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비핵화 회담이 아니라,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으로 평등한 관계 속에서 군축·평화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의 틀은 유지하되 양자회담이 활성화돼야 하며 양자회담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6자회담은 공허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북의 핵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6자회담 같이 핵문제와 대북 정책을 따로 보는 접근법보다는 융합해서 보는 방법이 필요하다며 평화협정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결단과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의 유효성을 강조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북한은 여전히 6자회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로서는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원칙적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북한의 핵실험과 가능성이 열려 있는 추가 도발 등에 대해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제재 등 명확한 처벌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면 전환을 대비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장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는 피치 못하겠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고 나면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국면전환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비핵화전략이 실패했다고 보고 비확산 정책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론도 대두된다.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비확산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비핵화에만 매달리면서 북한의 실질적 핵무장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비확산에 무게를 두게 되면 북한의 핵보유를 결과적으로 인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은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군사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강경책도 나온다. 하지만 미군의 전술핵 배치나 핵개발 등을 통해 핵으로 맞서자는 주장은 일본 등의 핵 경쟁을 부추겨 동북아 정세를 소용돌이치게 한다는 반론이 일반적이다.

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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