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네가 날 신고했어?” 찾아와
협박 전화에 성폭행, 살인까지
너무나 쉽게 털리는 피해자 신상정보
신고나 처벌에 불만을 품고 저지르는 ‘보복범죄’가 6년 동안 무려 6배 이상 증가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신고자나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법 아래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해자가 출소할까 두려워 벌벌 떨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신변 보호 프로그램’은 절차나 승인 조건이 까다롭고 전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심지어 경찰 관계자는 “위협을 느끼고 신변 보호 요청을 한 사람조차 누군지 파악도 안 되고 관리도 안 된다”고 말한다. 정의롭고 평등해야 할 법이 피해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 알고는 있으나 외면하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법은, 과연 정의롭고 평등하며 안전한가.
보복범죄, 어디까지 가봤니?
서울에 사는 A(45)씨는 2012년 11월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피고인 이모(53)씨가 이웃과 쓰레기 처리문제로 크게 다두는 현장을 목격하여 재판에서 “이씨가 잘못했다”고 증언한 것. 결국 이씨는 벌금 300만원 형을 받았다. 이후 이씨와 그의 남편 최모(53)씨가 법원에 ‘항소 준비를 위한 1차 재판 자료’를 요구해 A씨의 연락처를 확보, 수십회에 걸쳐 “사시미 칼로 죽여버리겠다”며 보복 협박을 했다.
2011년 임모(45)씨는 서울시내 한 식당의 단골손님이었다. 노동 삯을 받아 하루 벌고 하루 먹고 살던 임씨는 술에 취해 손님을 때리고 탁자를 뒤엎는 등 난동을 부렸다. 11월에는 가게에 불을 질렀다. 참다못한 A씨의 신고로 임씨는 방화와 재물손괴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임씨는 1년을 복역한 뒤 2012년 12월 말 출소했다. 그리고 2013년 1월 3일 만취해 A씨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았다. A씨의 가게는 그 자리 그대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임씨는 A씨에게 “왜 신고했느냐. 이번에도 신고하지만 해 봐라”고 난동을 부린 뒤 가게 문을 잠그고 속옷으로 몸을 묶은 채 두 차례 성폭행했다. A씨는 두려움에 남편과 아들은 물론 경찰에도 알릴 수 없었다. 임씨가 출소한 지 삼일만이었다.
하지만 보복범죄는 한 차례에서 끝나지 않았다. 임씨는 A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24일 오후 2시쯤 술에 취한 채 다시 A씨의 가게를 찾았다. 임씨는 A씨에게 “내가 너 때문에 감옥살이를 했다”며 또다시 폭언을 퍼부었다. 또한 7시간 동안 A씨를 폭행한 뒤 세 차례를 걸쳐 성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다. 임씨는 가게를 나온 뒤에도 대포폰으로 A씨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신고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내놨다. A씨는 임씨가 다시 찾아올까 두려워 하루 넘긴 뒤인 25일 새벽, 경찰에 신고했다. 임씨는 이미 강도, 강간 등 전과 13범이었다.
협박과 폭행, 성폭행에 이어 살인까지 저지른 보복범죄도 있다. 2002년 성모(61)씨는 상해치사 사건 재판을 받았다. 성씨는 1997년부터 6년간 미인가 장애인 수용시설을 차려놓고 지체 장애 1급인 최모(38)씨 등을 데리고 살면서 폭행을 일삼았고 이를 최씨가 법정에서 진술한 것. 이에 성씨는 상해치사 등 혐의로 5년 6개월을 복역했다. 출소한 이후 성씨는 최씨의 집 앞에서 1시간가량 기다리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귀가하던 최씨를 따라 들어가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지난 9월 한 마트에서 최씨를 우연히 만나 “가만두지 않겠다”며 한차례 협박한 사실도 있었다. 최씨는 이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결국 석 달만에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자료제공 경찰청
이처럼 가해자는 피해자나 신고자, 증인에게 복수심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복범죄는 2006년 70건에서 2011년 122건으로, 2012년에는 234건으로 무려 3.3배나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2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부산(114건), 경기(69건), 충북(36건)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또 보복범죄의 피의자는 90%가 남성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보복범죄로 인해 상해를 입은 피해자는 총 76명이었다. 문제는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보복범죄의 수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담부서도 없는 신변 보호프로그램
그야말로 ‘그림의 떡’
보복범죄는 자신을 신고한 신고자나 증인, 또는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고 저지르는 2차 범죄다. 경찰은 보복범죄를 살인, 성범죄, 약취유인, 마약, 조직폭력배, 강정폭력, 아동학대 및 이에 준하는 중대 범죄로 보고 있다.
실제로 울산지법 제3형사부는 지난달 27일 폭행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신고자를 다시 찾아가 폭행한 혐의(보복범죄 등)로 기소된 저모(45)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씨가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며 “집행유예 기간임에도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등 재범의 위험성이 높아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신고자와 증인, 그 친족의 신변보호를 필요로하는 피해자는 지구대, 파출소, 수사과 등에 신변안전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사안의 구체성, 긴급성, 상습성, 보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관할 경찰서 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심의위원회를 연 뒤 신변보호 수준과 보호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해서 신변 보호 승인이 떨어지면 일정기간 특정시설에서의 보호 내지 신변보호, 법정 및 경찰서 등에 출석해 귀가 시 동행이나 주거 등에 대한 주기적 순찰과 담당자와 1:1 Hot-Line을 구축할 수 있다.
검찰 또한 보복범죄로부터 신변보호를 요청할 시 보안업체, 112신고와 연결된 위치확인장치를 제공함과 함께 주거이전비 지원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변보호프로그램’은 신청서 작성 절차가 까다롭고 심의워원회도 즉각 열리지 않는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보복범죄는 살해 등 중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담부서뿐 아니라 담당 인력이 없다”며 “위협을 느끼고 신변보호요청을 한 사람조차 누군지 파악도 안 되고 관리도 안 된다”고 말했다. 신변 보호는 지구대에서 맡게 되는데 늘 신고 받고 출동해야 하는 지구대원들이 한 사람에 대해 24시간 신변 보호를 하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체장애 1급인 최모씨의 경우가 이에 속한다. 최모씨는 신변보호프로그램을 신청했으나 결국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는 신변보호프로그램이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사례다.
‘증인보호’ 또한 마찬가지다. 법정에서 “이씨가 잘못했다”며 이웃 간 쓰레기 처리 문제로 열린 재판에서 증언을 했던 A씨의 신상정보를 피의자와 피의자 남편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에 법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살인 사건 등을 제외하곤 피의자가 피해자와 증인의 인적 사항을 입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그들 부부는 ‘항소 준비’라는 핑계로 A씨의 연락처를 다른 곳도 아닌 ‘법원’에서 확보했다.
갈수록 보복범죄는 늘어나고 그 수위도 높아지나 그를 예방할 수 있는 신변보호프로그램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전문가들은 보복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신고자에 대한 철저한 정보보호와 증인 및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범죄를 신고한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국가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범인이 가중 처벌을 무릅쓰고 보복을 노릴 경우에는 이를 막을 장치가 마땅히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범죄 신고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경우는 마약과 조직폭력 범죄 등의 신고에 한정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에 ‘범죄피해자구조법’은 있으나 이는 피해자가 사망했거나 중장애를 입었을 경우 최고 1,00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에 그친다”고 밝힌 뒤 “재범이나 보복범죄에 가중처벌을 주도록하고 있지만 범죄 자체를 막고 피해 신고자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우리나라 신변보호프로그램의 허상을 낱낱이 꼬집었다.
선진국이 보복범죄에 대처하는 자세
보복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그 원인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학교폭력과 음주폭력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이에 대한 경찰 단속이 강화됐다”며 “그러다 보니 신고자·증인 등에 대한 가해자들의 보복범죄도 덩달아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 강원 강릉에서 박모(55)씨가 사소한 차량 접촉사고로 빚어진 폭력사건 조사과정에서 피해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찾아가 살해했다. 경찰 관계자는 덧붙여 “신고자 정보보호와 보복행위시 구속수사를 강화하는 등 강력한 처벌도 동반되어야 한다”며 “강한 처벌만이 신고자와 증언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보복범죄가 늘어난 배경으로는 가정폭력 및 성범죄 등에 대한 형량이 낮고 집행유예 선고 기준이 크게 낮아진 점을 꼽을 수 있다”면서 “검찰이나 법원이 사건 내용을 자세히 살펴 재범 가능성이 큰 사람에 대해서는 영장기각이나 집행 유예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은 보복범죄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독일의 경우 1987년 ‘피해자보호법’을 시행, 이후 2001년 ‘증인보호법’을 제정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와 증인을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증인이나 증인 가족, 지인 등 보복범죄에 노출된 위험이 큰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조취를 마련해놨다. 눈에 띄는 점은 신고자들은 공공기관에서 임시 위장 신분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증인 보호를 위해 공개 재판주의 원칙을 일부 제한하고 인적 상항에 대한 진술 유보도 허용한다. 형사소송 과정에서 증인이 임의로 다른 주소를 기재하도록 했으며 피해자와 증인의 신상이 포함된 서류는 검찰에서 보관하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소송 기록에 포함하지도 않는다. 소송 기록 열람 또한 제한되어 있어 함부로 볼 수 없다.
미국도 2차 피해가 예상되는 범죄에는 소송 기록 열람권을 제한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법무부장관의 승인없이 증인에 대한 정보를 누설한 자에 대해서는 5,000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5년 이하의 형에 처하고 있다. 미국은 1982년 연방정부에서 ‘피해자 및 증인보호법’을 제정, 범죄 피해자와 증인에 대해 피의자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시행 중이다. 대상자로 선정되면 사건 관련자와 그 가족들은 안전을 보장받게 되며 독일의 위장신분과 비슷하게 기존의 사회보장번호(주민등록번호에 해당)를 없애고 새 이름과 새 신분증, 새 집, 새 일자리 및 생활비까지 지급된다. 필요에 따라서 성형수술 비용까지 지원한다.
그야말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신분을 버리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새 신분을 나라가 주는 것이다. 각 주의 경찰국에도 ‘피해자 지원부서’를 설치해서 범죄 피해자 및 증인에 대한 프로젝트를 운영 중에 있다.
이처럼 철저한 외국의 신분보호프로그램은 우리나라처럼 ‘신청’에서 끝이 나는 게 아니다. 그 이후를 더욱 중요시 여기고 있다.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하며 피해자나 신고자가 법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게 해준다. 6년 동안 보복범죄가 3배가 넘게 증가한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특히 범인만 잡으면 된다는 인식은 우리를 더 이상 보호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