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부로 28개월간 끌고 오던 무급휴직자 전원 복귀
해고자들 “우리들은요?” 쌍용차 “앞으로 자리가 난다면"
24명을 죽음으로 이끈 쌍용차 사태, 얼마나 더 기다려야
2009년 6월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이 평택 공장을 점거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은 77일간의 투쟁 끝에 회사로부터 복직 약속을 받아냈다. 이른바 ‘8.6 노사합의’는 무급휴직자를 비롯해 희망퇴직자, 정리해고자 등 2,600여명에 대한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한 쌍용차가 ‘회사 경영이 정상화 되면 무급휴직자를 우선적으로 복직시킨다’는 내용의 합의안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3년 2월 7일 쌍용차는 무급휴직자 454명을 전원 복직시키기로 결정했다.
2월 7일 쌍용자동차는 무급휴직자 454명 전원을 3월 1일자로 복직시키는 인사발령을 7일 발표했다. 무급휴직자 복귀에 따른 조건과 절차에 대해서는 차차 노사합의에 의해서 이뤄질 예정이며 우선 3월 초부터 라인배치에 대비한 교육이 진행된다. 이처럼 쌍용차의 무급휴직자 전원 복귀는 지난 2009년 ‘8.6 노사합의’가 이행되었음을 의미한다. 더불어 조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새롭게 출발하는 단초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 또한 잇따르고 있다.
2009년 2월 6일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차는 비정규직 500여명을 포함하여 전체 직원의 3할이 넘는 2,646명을 우편으로 ‘대량해고’했다. 근로기준법 제24조를 보면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에만 실시할 수 있다. 당시 쌍용차는 유동성 위기로 인한 부도상황과 과도한 부채비율로 인한 부실기업화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근거하여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였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을 점거하며 77일간의 농성에 들어갔다.
무급휴직자 배모(41)씨는 “예전에는 이를 악물고 일하면서 복직만 바라봤는데 너무 지쳐서 그런지 좋기보다는 멍하다”며 “함께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희망퇴직자, 정리해고자)인데 우리만 복직돼 마음이 아프다. 철탑농성까지 하는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28개월간의 무급휴직자가 전원 복귀된 것과 관련하여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159명의 정리해고자들의 복직 계획이 빠져있다”며 지적했다. 실제로 쌍용차는 현재 생산물량을 감안할 때 희망퇴직자를 추가 채용할 여력은 없지만 앞으로 물량이 늘어난다면 희망퇴직자에게도 복직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이에 심 의원은 “정리해고자에 대한 언급이 없이 무급휴직자 전원 복직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정조사를 실시하지 않고선 쌍용차 사태와 관련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 2009년 평택공장 농성 당시 쌍용차가 용역업체와 맺은 계약서 (자료제공 : 금속노조쌍용차지부)
▲ 쌍용차와 매우 흡사한 상하이차의 디자인 (사진출처 :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 동영상 캡쳐)
누가 이들을 ‘죽은 자’로 몰고갔는가
쌍용차의 대량해고 이후 ‘산 자’와 ‘죽은 자’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는 살아남은 자와 해고된 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전자는 ‘산 자’로, 후자는 ‘죽은 자’로 대변된다. 이후 ‘죽은 자’들을 중심으로 농성에 들어갔으며 여기에는 ‘산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농성이 장기화 되면서 ‘산 자’들은 회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생존권’이 충돌한 것이다.
노조 복직을 약속받은 ‘죽은 자’들은 77일 뒤에 해산되었으나 4년 동안 23명의 죽음과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최근 발표된 무급휴직자 전원 복귀전까지는 복직된 사람 또한 없었다. 쌍용차 측은 여전히 회사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서 복직을 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 통계를 따르면 쌍용차의 생산 능력은 2009년 이전 상태로 회복됐으며(연간 11만 3,249대) 1인당 생산 대수는 23.6대로 2009년 7,29대에 비해 3배가량 늘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쌍용차가 대량해고를 통보할 때 근거로 들었던 ‘유동성 위기로 인한 부도상황’과 ‘과도한 부채비율로 인한 부실기업화’는 ‘고의 부도’와 ‘회계 조작’으로 규탄 받고 있다.
당시 쌍용차의 대주주였던 중국 그룹 ‘상하이차’가 손을 떼면서 쌍용차는 경영난에 시달렸다. 갚아야 할 어음이 932억인데 반해 쌍용차가 보유한 현금은 74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쌍용차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더불어 부도 신청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쌍용차가 상하이차에게 받아야 860억과 중국은행?중국공산은행에서 대출 계약을 맺은 2,100억, 여기에 산업은행에서 추가 대출 계약을 맺은 액수까지 합하면 쌍용차는 충분히 어음 932억을 갚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쌍용차의 경영 위기로 물러났다고 여겨진 상하이차는 외교부 문서 공개로 통해 ‘기술 유출’로 인한 검사 수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외에도 2008년 3분기 쌍용차 재무제표를 따르면 부채비율이 168%, 순손실 980억원으로 나타났으나 4분기에 들어서자 부채비율이 561%, 순손실이 7,097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상하이차와 안진회계법인이 쌍용차의 유형자산 평가액 2008년 3분기 1조 3,825억원을 그해 4분기 때 8,677억으로 평가한 것과 관련된다. 유형자산 평가액을 줄이면 부채비율과 순손실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해 4분기 쌍용차 유형자산 평가액을 한국감정원이 추정 평가했을 땐 1조 7,051억원이었다. 부채비율 또한 561%가 아닌 150% 미만이었으며 7,097억원의 순손실도 한국감정원은 2,000억원 미만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회사제무상태를 실시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쌍용차가 제출한 평가액은 한국감정원이 아닌 상하이차와 안진회계법인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쌍용차는 부실기업으로 등극됐다.
앞서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할 때 당시 쌍용차는 1조 2,000억원으로 평가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900억원이라는 헐값에 인수됐다. 인수 조건으로 1조 2,000억원의 투자를 약속했으나 이는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05년 5월 4,000억원과 2006년 8월2009년까지 매년 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던 약속까지 상하이차는 모두 시행하지 않았다. 대신 상하이차는 중국 본사에서 쌍용차 전산을 규제받지 않고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연결해놨으며 50여명의 중요 인력을 중국으로 데리고 갔다. 또한 국고 비용으로 개발된 쌍용차의 디제 하이브리드 기술도 중국으로 빼가 기술 유출 혐의를 받기도 했다.
상하이차의 철수로 쌍용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기업회생방안으로 노동자 2,646명이 구조조정됐다. 그날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이 자살했다. 노조는 퇴직금을 담보로 긴급자금 1,000억원 조성과 절반가량의 임금삭감 및 노동 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 나누기, 노조가 비정규직 고용안전기금으로 12억을 조성하겠다는 양보안을 제안했으나 쌍용차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노조는 77일간의 파업 투쟁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쌍용차는 경찰 및 용역 업체를 투입, 진압에 나섰다. 또한 5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2012년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때 쌍용차가 용역 업체에 지불한 금액은 83억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살벌해서 서글픈 어른들의 ‘의자게임’
자리는 하난데 기다리는 사람은
2009년 구조조정 이후 현재까지 24명의 쌍용차 노동자 및 그 가족들이 자살하거나 병으로 숨졌다. 극심한 생활고가 그 원인이었다.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쌍용차 해고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자살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7월 457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조사 대사자 중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의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240명으로 52.5%를 차지했다. 그중 ‘매우 자주 있다’는 응답자도 41명으로 9%에 달했다.
또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복수응답 가능)’이라는 질문에는 407명(89%)이 ‘경제적인 부분’이라고 답했다. 이어 ‘취업에 대한 희망이 없어 힘들다’가 47.3%, ‘가족들 보기가 힘들다’가 46.4%, ‘같은 동료직원들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점이 힘들다’가 24.5%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쌍용차에 복직을 희망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복직을 희망한다’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81.1%로 높게 나왔으나 ‘복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있다’는 응답은 32.4%, ‘없다’라고 답한 사람은 42%로 집계됐다. 이는 쌍용차 복직을 희망하는 한편 쌍용차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쌍용차는 2011년 11월 인도의 마힌드라사가 인수하면서 조금씩 정상화의 길을 밟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과 관련된다.
1월 9일 공장에 남아 있던 ‘산 자’인 류모(49)씨가 자살을 기도해 뇌사 상태에 빠져 결국 장기를 기증한 채 세상을 등졌다. 류씨의 형(60)은 쌍용차 노동자로 ‘죽은 자’에 속해 있다. 그는 “가족 중 한쪽이 죽으면(퇴직하면) 다른 쪽은 살려준다는 말을 듣긴 했다”며 희망퇴직했다. 류씨의 형은 19살 때부터 쌍용차에서 근무하였으며 후에 류씨를 쌍용차 평택공장에 취직시켰다.
류씨의 형은 ‘죽은 자’가 되었으나 류씨는 조립2팀(체어맨·로디우스)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만 2년동안 잔업없이 일했으며 하루 근무시간도 4~5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월급은 150여만원 안팎에 불과해 결국 6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형제 중 형이 동생을 위해 희망퇴직을 했으나 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쌍용차가 점점 정상화가 되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복직을 비롯하여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이들은 그것을 몸소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쌍용차 무급휴직자 전원 복귀를 결정한 결과에 관련하여 30대 중반의 한 노동자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정리해고 되지 않았다 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다”며 “해고자들이 밖에서 볼 때는 우리가 직장을 잘 다니며 잘 먹고 잘 살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직업 특성상 잔업과 특근이 있어야 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일감이 없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으며 대체로 기본급만 받아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김규한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무급휴직자 복직을 결정하면서 기존 조합원들이 상생을 위해 많은 손해를 감수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류씨의 자살 시도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 공지영은 이를 두고 “의자게임”이라고 얘기했다. 한 개의 의자를 두고 여러 사람이 그 근처를 빙글빙글 돌다가 휘슬소리에 재빨리 앉는 사람이 의자의 주인이 되는 의자게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쌍용차의 이번 결정을 두고 국정조사를 피하기 위한 회사 측의 꼼수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쌍용차 노조는 국정조사를 반대하고 있다. 국정조사에 따른 기업 이미지 훼손, 판매 악영향, 노동조건 변경 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업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동안 애꿎은 노동자들만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