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진의 책임, 노동자에게 돌린다? 말도 안 돼!
158억, 노동운동 탄압을 목적으로 한 ‘보복성 소송’
박근혜 정부, 오점으로 시작하나? 행보에 관심 집중
‘80년대는 물리적으로 죽이고 현 시대는 돈으로 죽인다’라는 말이 실제로 일어났다. 얼마 전 극심한 노사갈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강서(35)씨의 이야기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에 대해 200여일 가까이 농성하던 중 남은 가족들을 뒤로한 채 떠난 것이다. 이에 노조측은 사측의 복직과 민주노조의 탄압에 대한 농성을 계속 진행 중이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지금도 여전히 갈등은 풀리지 않고 있다. 새 정부를 앞둔 지금, 이들에게 안겨진 숙제는 과연 해결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언제까지 죽어야 하나?”
한진중공업과의 장기화된 마찰로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 최강서씨가 목숨을 끊었다. 노조사무실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가 결국 병원에서 숨진 것. 그가 남긴 유서에는 “가진자들의 횡포에 졌다. 못 가진 게 한이 된다. 손해배상 158억으로 밀어내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등의 내용이 적혀있어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노조는 ‘시신시위’까지 하며 사측에 강력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타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9년 한진중공업은 수주잔량이 없어 전 직원의 30%(750여명)를 인력 구조조정 하겠다며 사실상의 정리해고 계획을 노조에 통보했다. 총 400여명의 희망퇴직을 받았고 희망퇴직을 신청을 하지 않은 350여명에 대해서는 부산지방노동청에 ‘정리해고 계획신고서’를 냈다. 노조가 총파업을 결의하자 사측은 당일부로 회사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으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같은 해 경영이 어렵다는 말과 함께 생산직 400명의 희망퇴직을 노조에 일방적으로 권고했다. 이에 노조는 정리해고가 철회될 때까지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가며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여기에 85호 크레인에서의 고공농성까지 벌어져 세간의 눈과 귀가 집중되기도 했다.
2011년 6월 27일 드디어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채길용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 지회장과 이재용 한진중공업 조선부문 대표이사가 노사협의 이행합의서에 서명을 한 것. 내용은 ‘해고자 중 희망자에 한해 희망퇴직 처우 기준을 적용한다, 형사 고소고발을 취한다, 손해배상청구를 최소화 한다’이다. 하지만 노조원들이 내세운 ‘정리해고 철회’라는 내용은 없었다. 가장 원하는 내용이 빠진 채 협의가 이뤄진 것. 이 일로 ‘노-사간의 갈등’ 와중에 ‘노-노의 갈등’이 함께 생기기도 했었고 사측과의 갈등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노조가 사측에 이토록 심한 반발심은 갖는 것에는 필리핀에 새로 개설된 ‘수빅조선소’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필리핀의 값싼 인건비를 이용하기 위해 무리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는 것. 또한 경영난을 표하기 위해 3년 동안 영도조선소에서는 수주 한 건 하지 않고 오직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수주 물량을 돌렸으며 영도조선소를 축소 내지 폐쇄하는 수순을 밟는 단계로 정리해고를 감행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죽음을 부르기까지 한 갈등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회사정상화, 휴업대책마련, 노조파괴중단, 손배소송철회’ 등 5가지 요구안이 협의되지 않는 점과 노조의 정리해고, 희망버스 투쟁과 관련해 업무방해, 기물파손 등의 혐의로 158억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때문으로 파악됐다. 뿐만 아니라 사측 성향의 노조 출범을 계기로 노조 폐쇄 및 사무실 이전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사측의 입장에 대해 불공정한 처사라고 꼬집기도 했다. 158억의 손해배상청구는 노동운동 탄압을 목적으로 한 ‘보복성 소송’이라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강자의 무기, ‘손해배상·가압류’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을 보면 근로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단체행동은 잔업 거부, 태업, 부분 파업, 전면 파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막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너무 쉽게 제한된다는 것.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게 업무방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과 ‘가압류’다.
우리나라는 이상하리만큼 ‘업무방해죄’가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크게 적용된다. 파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가 자동으로 따라붙는 것이다. 이는 ‘파업권’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현행 형법 제314조(업무방해)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단, “노조법상 파업의 요건을 준수하면 예외적으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 형법에 따르면 업무방해라고 볼 수 있는 ‘파업’은 불법으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고 민형사상 처벌로 이어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의 업무방해죄는 파업에 대해 일단 ‘나쁜 범죄’라는 전제를 깔고 있어 노동자의 권리가 제약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파업권을 지금보다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달리 말해, 하위법(노조법)이 상위법(헌법)보다 우선시 되는 모순이 해결돼야 한다는 말이다. 혹자는 노동법 개정을 통해 전체 법체계를 노동3권이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돼야만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걸음,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하는 것’
해결되지 않는 한진중공업 사태에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어깨가 무겁다. 부산지역 민주 원로 및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전국투쟁대책위원회가 박근혜 정부를 대상으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투쟁대책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화제가 됐다. 그들은 “최강서 열사의 장례를 치르고 한진중공업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줘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또 故 최강서씨의 아내 이선화씨는 “유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려 남편의 죽음이 장기적으로 가지 않도록 한진중공업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달라. 또한 빠른 시일 내에 남편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꼭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끝나지 않는 노사간의 갈등. 박근혜 정부는 과연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