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서울 이태원에서 차에 타고 있던 주한 미군이 시민들을 향해 비비탄 총을 난사하고 검거하려던 경찰차를 들이받고 영내로 도주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미군 6명이 전동차 안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연일 발생하는 미군범죄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한다.
미군은 줄었는데 범죄는 늘어났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공개한 ‘최근 10년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범죄 통계’에 의하면 주한미군의 수는 10년 전보다 줄었지만 미군 범죄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2004년에 주한미군은 3만9997명이였으며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미군은 2만85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4년간의 SOFA 범죄 처리현황을 분석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전체 SOFA 대상자들의 범죄는 1781명이며, 이중 77명만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주한미군 수는 10년 전에 비해 30%가 줄었는데 범죄는 최근 5년 동안 20%나 증가한 것이다. 더욱이 그 중 60%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정식 재판을 받은 사건은 6%에 불과하다
이처럼 재판권 행사률이 낮은 이유는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재판권 행사를 하지 않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현행 SOFA규정이 재판권 행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SOFA 규정, 미군 협조 없이는 구속수사 어려워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국내법에 의해 내국인과 똑같이 처벌받게 된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일정한 편의와 배려를 제공받게 되는데, 이것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다.
SOFA 협정 22조에 의하면 ‘피의자의 신병이 미군에 있으면 모든 재판 절차가 종결되고 대한민국 당국이 구금을 요청할 때까지 미군이 구금을 계속 행한다. 피의자가 대한민국 수중에 있는 경우에도 미군이 요청하면 미군의 신병을 인도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SOFA 협정에 발이 묶여 소한조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군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못할 경우, 한국 경찰은 해당 미군의 신병을 확보하는 일이 실질적으로 어렵다.
본지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박정경수 사무국장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 경찰이 미군 현행범을 체포해도 초동수사조차 어렵다. 미 측의 입회 없는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으며, 미측이 신병인도를 요구하면 곧바로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미군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동수사 강화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함을 강조했다.
과연, 우리나라가 주권국가가 맞는지 의문
SOFA에 따르면, 한미 두 나라 법으로 모두 처벌이 가능한 범죄의 경우 공무 중 사고에 대해서는 미군 당국이, 비공무중 사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1차적 재판권을 갖는다.
여기서 1차적 재판권이란 배타적 재판권과는 달라서 1차적 재판권을 갖고 있는 나라가 재판권 행사를 포기할 경우 상대국이 재판권을 행사하게 된다.
SOFA 본 협정에는 양국 모두 상대국이 1차적 재판권 포기를 요청할 경우,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미군당국의 경우 단 한번도 1차적 재판권을 포기한 적이 없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미 측의 재판권 포기 요청이 있으면 90% 넘게 포기해 왔다. 이는 현행 SOFA 합의의사록에 미 측이 재판권 포기를 요청할 경우 우리나라는 '특히 중요한 경우가 아니면 포기해야 한다'고 별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위법이 상위법을 규정하는 어처구니없는 규정이다.
SOFA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1차적 재판권이 있는 범죄라 하더라도 미 측의 포기 요구가 있으면 포기해야 한다. 설사 어렵게 재판권을 행사키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미군은 재판도 거부할 수 있다. 더욱이 수감 중인 미군도 미 측의 요청이 있으면 신병을 인도할 수 있다. 과연 우리나라가 주권국가가 맞는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미군범죄에 대해 우리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재판결과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솜방망이 처벌-실형, 많아야 1년에 한두 명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주한 미군인의 경우 재판 결과 대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고 있으며(전체의 80∼90%), 실형을 받는 경우는 많아야 1년에 한두명 정도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1차적 재판권을 포기한 범죄의 경우 미 측에서 재판권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 경우 미군당국은 대부분 주의, 견책 등의 행정적 징계로 끝내고 형사처벌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999년의 경우 총 292건 중에 주의, 견책이 240건(82%), 징역은 단 한건도 없었다. 형사처벌은 처벌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그를 통해 범죄의 재발을 막고, 손해배상을 강제하려는 목적도 있는데, 경미한 처벌이 범죄를 더욱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되거나 아직 형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우리나라에 신병이 인도된 미군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수감시설에 구금되는데, 미군의 경우 SOFA에 따라 수감시설이 한미 합동위원회에서 합의된 '최소한도의 수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여기서 '최소한도의 수준'이란 최소 72평방피트(약2.02평)의 독방에 미군당국으로부터 직접 공급받은 음식물로 스스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를 위해 냉장고, 스토브 등을 구비하고 작은 식당을 별도로 마련하거나 수용자들이 그들의 거실 내 테이블에서 식사하도록 해야한다.
이는 국내 수감시설이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미군범죄, 시간을 끌면서 버티다가 귀국하면 된다?
미군범죄는 불평등한 SOFA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와 수사기관의 문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한국인의 경우면 당연히 구속 기소되는 사건이 미군의 소행이면 어느덧 경미한 사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주한미군의 임무를 들어 내국인보다 경미한 처벌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불법체포 혐의로 수사 받던 미군 3명이 수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본국으로 돌아간 지 3개월이 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면서 "발생 반년이 되도록 종결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고, 항간의 소문대로 주한 미군의 복무기간 1년인 점을 이용해 '시간을 끌다 귀국하면 된다'는 전략을 우리 검찰이 묵인한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수사당국은 현행 SOFA에 의한 미군들에 대한 편의제공 차원을 넘어 미군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SOFA 개정으로 실효성 있는 해결해야
미군범죄 피해자들이 가장 직접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바로 수사기관의 문제다. 일선 경찰에서는 미군범죄가 발생하면 SOFA상의 한계를 들어 일찌감치 수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경찰들도 SOFA를 어려워한다. 실제로도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법적 요소도 많고 영어도 어렵다. 경찰들이 받는 SOFA 교육은 진급할 때 1시간 뿐이다. 국민 뿐 아니라 경찰도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며 미군범죄 콜센타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군은 1945년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첫 발을 이후 긴 세월동안 많은 범죄가 미군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국가안보를 위한 행위와 범죄 행위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불평등한 한·미 SOFA를 개정하여 실효성 있는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