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됐다 ‘한광옥’
안됐다 ‘한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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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옥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동교동계 출신으로 40여년 동안 민주당에 몸담았던 한광옥(72) 전 상임고문이 지난 12ㆍ19 대선에서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면서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주역으로 부상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지만 내각 발표에서 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팽’ 당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의 지난 행보를 살펴봤다.

 

제18대 대통령 당선 주역…내각 발표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한광옥 “모진 고난보다 내가 두려운 것은 역사와 국민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주역 전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한광옥(72). 동교동계 출신으로 40여년 동안 민주당에 몸담았던 그는 지난 12ㆍ19 대선에서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면서 새누리당에 발을 들였다.

새 정부 내각 발표…한광옥은 없었다.

이후 한 전 위원장은 새 정부에서 역할을 이어 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지난 1월 24일 국민통합과 탕평 인사 차원에서 국무총리ㆍ비서실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박근혜 내각에 중용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내각 발표에서 그의 이름은 오르지 않았다.

새 정부 각료들의 인선 발표가 사실상 마무리 되면서 한 위원장의 거취가 불분명해진 것이다. 물론 지난 2월 14일 한 전 위원장과 김경재 전 부위원장은 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서울 창성동 국민대통합위 사무실에서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등과 만나 현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날 인수위 측은 “국민대통합위는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상설 기구로 남아 있는 만큼 향후 언론 정상화를 위한 제도 개선책 마련 등의 문제도 숙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민대통합위와 언론노조는 이 자리에서 파업으로 인한 해고자ㆍ징계자 구제를 위한 협의 창구를 두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특히 김 전 수석부위원장은 올해 민관이 함께하는 6ㆍ25 정전 60주년 참전 21개국 순회 행사의 전체 상임대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다. 또한 신설되는 국민대통합위에 과거사진상조사 분과를 설치해 이 분야를 직접 챙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한 전 위원장은 내각 입성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비록 ‘박근혜 내각’ 1기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2기에는 가능성이 충분했었다는 것이다. 특히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5일 만에 자진 사퇴하면서 새 총리 후보가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형으로 한 전 위원장이 또 다시 오르내렸다. 새 총리 후보 인선의 최우선 기준은 ‘도덕성’이 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결국 한 전 위원장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향후 거취에 대해 고민하게 된 신세가 됐다. 그는 언제나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스스로도 “서슬 퍼런 시절의 모진 고난은 두렵지 않고 대의를 위해 나를 버려야 하는 순간도 두렵지 않다 두려운 건 역사와 국민이다”라고 할 정도다. 그런 그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안대희 “한광옥 국민대통합 위원장이면 사퇴”

그러나 한 전 위원장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에게 아픔이 남아있다.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 안팎에서 그를 보는 시선은 차갑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한 전 위원장의 영입을 둘러싸고 새누리당 내 갈등이 점차 고조됐었다. 새누리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당시 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선거대책위원회에 영입해 ‘국민대통합’의 모양새를 갖추려 했지만,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면서 내홍이 극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안 위원장은 ‘한 전 고문이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임명된다면 사퇴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여기 회견문에 그렇게 돼 있는 것 아닌가”라며 “저 뿐만 아니라 (정치쇄신 특위위원) 상당수가 그렇다”고 답했다.

안 위원장은 “선대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분으로 새롭게 영입한 인사가 비리 연루자라면 정치쇄신특위를 설치해 정치쇄신을 한다고 말해도 누가 믿겠는가”라며 “아무리 쇄신을 외쳐도 그런 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면 진정성만 의심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이런 대립적 상황이 뻔히 예상됐음에도 한 전 위원장을 영입한 것이다. DJ 측근을 영입함으로써 호남표를 얻어 보겠다는 정치공학적 계산이었지만 결국 박 후보의 소통(疏通)부재가 빚어낸 현실로 보는 시각이 컸다

물론 당시 박근혜 후보는 한 위원장 영입 재고 요구에 “선거가 두 달 남았는데 지금 모든 것을 엎고 새로 시작하자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선거를 포기하자는 얘기와 같다”면서 “다 때가 있는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한 전 위원장의 위치는 여기까지였다. 대선이 끝나고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 되고 새 정부가 꾸려졌지만 한 전 위원장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팽 당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후 한 전 위원장은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으로부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변절자’라고 언급했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이에 대해 한 전 위원장은 “(민주통합당에 있는) 그 사람들이 변절자이고 배신자”라며 “당이 옳은 일을 할 때 나오면 변절자가 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민주당은 친노(친노무현)당이지 과거의 민주당이 아니다”며 “변절자라는 말은 그 분들에게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DJ 비서실장 출신의 ‘자물쇠’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측근그룹인 동교동계 내에서 비주류(非主流)에 속한 한광옥 전 위원장은 194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문과 중퇴 했다. 지난 1981년 민주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제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13·14·15대 의원을 지낸 4선 국회의원 출신 인사다.

그는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김 전 대통령의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해온 인연으로 동교동 캠프에 합류하게 됐다. 이 때문에 한 전 위원장은 DJ 집권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초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등 임명직 요직을 두루 거칠 수 있었다.

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대 대표상임의장으로 활동했다. 노사정 대타협을 성공시킨 후 한 전 위원장은 199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중도하차 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99년 서울 구로을 재선거에서 원내에 복귀한 한 전 고문은 공동여당 간 합당을 위한 물밑 접촉에 나서는 등 당 중진으로서의 행보를 걸어왔다.

1999년 11월 한 전 고문은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이후 2001년에는 새천년 민주당의 최고위원을 지냈다. 2009년부터는 민주당 상임고문 역을 맡아왔다. 그러나 4·11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받지 못하자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패권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며 탈당, 정통민주당을 창당해 서울 관악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자물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입이 무거운 한 전 위원장은 1997년 DJ측 대표로 당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측의 김용환 전 의원과 파트너가 돼 DJP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오직 ‘정도의 정치’를 실현한 사람 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하는 한광옥.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42년 (전북 전주) △서울대 영문과 중퇴 △제11, 13, 14, 15대 국회의원 △민주당 사무총장 △1기 노사정 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대 대표상임의장 △제22대 대통령비서실장 △민주당 상임고문 △정통민주당 대표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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