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계열사와의 합병 ‘과세 피하기’ 꼼수
매출 90% 이상 내부거래…수천억에 달해
최근 박근혜 정부와 관련해 ‘경제 민주화’를 화두로 삼아 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및 오너일가의 회사기회 유용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이 모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기압력밥솥으로 잘 알려진 쿠쿠전자(회장 구자신)에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의심 되는 정황이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지난해 내부거래의 당사자로 알려진 계열사 쿠쿠홈시스를 흡수 합병하면서 금융당국의 엄정조치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합병을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쿠쿠전자의 합병, 그 진짜 속내는?
쿠쿠전자는 작년 12월 1일자로 국내 밥솥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쿠쿠홈시스를 흡수 합병했다. 당시 쿠쿠홈시스는 ‘경영 효율성 제고’ 및 ‘기업 가치 극대화’를 위해 쿠쿠전자와의 합병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합병과 함께 사명 역시 ‘쿠쿠전자’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양사의 합병은 압력밥솥 등 가전제품의 제조 부문을 담당해온 쿠쿠전자가제품의 판매를 맡아왔던 쿠쿠홈시스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표이사는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의 대표이사인 구본학 사장(창업주 구자신 회장의 장남)이 그대로 맡았다.
일각에서는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의 합병을 두고 사측의 설명처럼 “종합 생활가전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순수한 의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혹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생산과 판매 주체를 통일 시켜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은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이른바 ‘내부거래 물타기’를 위한 의도도 함께 포함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금융당국이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및 불공정 행위에 대해 엄정조치를 취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논리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초 쿠쿠홈시스는 1999년 쿠쿠전자 밥솥 ‘쿠쿠’의 판매법인으로 설립해 2002년부터 지금의 사명을 써오고 있다. 2010년 11월 국내 밥솥 누적 판매량 2000만대를 돌파했고 최근까지 국내 밥솥 시장에서 ‘리홈’과 ‘쿠첸’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70%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등 독보적인 선두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지난 2010년 3700억 원, 지난해 4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쿠쿠전자는 지난 2010년 2428억 원, 지난해 2727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만 쿠쿠전자 총매출액의 90% 이상이 쿠쿠홈시스와의 거래에서 나오기 때문에 두 회사가 합병해도 매출액 규모가 두 회사 매출액의 합산액만큼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들의 비밀 창고 ‘내부거래 배당금’
쿠쿠전자는 1978년 11월 설립 이후 LG전자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밥솥을 20여 년간 납품하다가 1998년 ‘쿠쿠’란 자체 브랜드를 출시했다. 전기압력밥솥을 비롯해 주스믹서기·식기건조기 등 주방용 전기기기 제조업체로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쿠쿠일가는 LG그룹 ‘구씨’집안과 먼 친척뻘이었다. 이 인연으로 쿠쿠전자는 1978년 설립부터 1998년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기 전까지 20년간 LG전자에 밥솥을 납품할 수 있었다.
사실 합병 이전 쿠쿠전자와 쿠쿠홈시스 사이의 내부 거래 비중은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로 쿠쿠홈시스에 납품하다보니 대부분의 실적이 ‘안방’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90% 이상을 계열사에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이를 통해 매년 수천억 원대 고정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내부거래 비중이 논란이 되고 있는 계열사 중에는 매년 평균 매출의 70% 이상을 기대온 ‘엔탑’도 있다. 1985년 10월 설립된 엔탑은 알루미늄판 제조업체로, 당초 쿠쿠산업에서 2007년 10월 쿠쿠기전을 흡수합병한 후 2010년 12월 현 상호로변경했다.
<쿠쿠홈시스의 내부거래 매출 비중>
◆ 2001년 83%(총매출 799억 원-내부거래 652억 원)
◆ 2002년 86%(1180억 원-1009억 원)
◆ 2003년 88%(1328억 원-1167억 원)
◆ 2004년 96%(1309억 원-1261억 원)
◆ 2005년 94%(1616억 원-1519억 원)
◆ 2006년 93%(1929억 원-1796억 원)
◆ 2007년 93%(1965억 원-1821억 원)
◆ 2008년 92%(2020억 원-1868억 원)
◆ 2009년 92%(2095억 원-1934억 원)
<엔탑의 내부거래 매출 비중>
◆ 2001년 41%(144억 원-59억 원)
◆ 2002년 60%(177억 원-106억 원)
◆ 2003년 72%(192억 원-139억 원)
◆ 2004년 80%(181억 원-145억 원)
◆ 2005년 86%(220억 원-190억 원)
◆ 2006년 94%(238억 원-223억 원)
◆ 2007년 74%(279억 원-206억 원)
◆ 2008년 81%(377억 원-304억 원)
◆ 2009년 77%(376억 원-290억 원)
◆ 2010년 76%(416억 원-316억 원)
◆ 2011년 59%(510억 원-300억 원)
쿠쿠전자는 이렇게 계열사들의 힘을 모아 안정된 매출을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2000년대 들어 적자 없이 매년 100억∼200억 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기록했다. 총자산은 2001년 367억 원에서 2011년 1536억 원으로 10년 만에 4배 정도 늘어났고 265억 원이던 총자본도 1226억 원으로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쿠전자의 내부거래가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것은 오너 일가의 지분 때문이다. 2011년 말 기준 쿠쿠전자는창업주 구자신 회장이 지분 24.8%를 소유한 대주주였고 장남 구본학 사장과 차남 구본진씨(쿠쿠 계열사에 임원으로 재직)가 각각 53%(21만2000주), 47%(18만80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엔탑의 지분 또한 절반 이상을 오너일가가 소유 중이다. 최대주주는 42.2%의 지분을 보유한 쿠쿠홈시스, 나머지는 구 사장(25.7%)과 동생 본진(17.9%)씨, 구 회장(7.1%)과 부인 최영순(7.1%)씨 등이 나눠 갖고 있다.
이렇게 많은 지분을 보유한 오너일가는 내부거래로 유지되는 쿠쿠홈시스와 엔탑에서 매년 두둑한 배당금을 받아 주머니를 넘치도록 채우고 있었다. 모 언론매체에 따르면 2011년의 경우 쿠쿠전자는 주주들에게 55억을 배당금으로 지급해 구 회장은 14억 원을 받아갔다. 쿠쿠홈시스는 80억원을 배당했는데, 그 결과 구 회장의 두 아들인 본학씨가 42억원, 본진씨가 38억원을 챙겨갔다. 엔탑은 무려 350억 원을 배당했다. 이에 따라 구 회장은 25억 원, 장남 구 사장은 96억 원,구본진씨는 63억 원을 챙긴 바 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들은 ‘전형적인 오너일가 배불리기’라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업계 또한 쿠쿠전자가 이익금을 사내유보보다 배당금으로 과도하게 책정한 것은 창업자의 두 아들에게 재산상의 이득을 주기 위한 의도로 보는 평가가 많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