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너 일가, 어디까지 밀어주나?
일감 몰아주고 고액 배당금 받고
국세청이 불법 증여와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이 있는 대재산가 51명을 대상으로 4일 일제히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동서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는 박근혜 정부 들어 불법 증여 의혹이 있는 대재산가에 대한 첫 번째 특별 세무조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최대주주의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 의혹이 제기돼 관련 업계의 입방아에 오르더니 결국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커피믹스로 유명한 동서식품이 주 계열사인 동서그룹은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70% 가량을 선점하고 있는 1위 기업이다. 최근 남양유업이나 롯데 등 새로운 경쟁자들이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동서식품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었다. 후발 주자들과는 차별화된 원두 냉동건조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근래 들어 사업 외적인 부분에서 좋지 못한 의혹이 자꾸 제기돼 곤혹을 치르고 있다. 동서그룹의 오너 일가 밀어주기가 도를 지나쳤다는 것이 그것이다. 동서그룹은 토지거래가 쉽지 않은 오너家 소유의 토지를 매입해 주는 것은 물론, 지난 몇 년간 대주주들에게 고액의 배당금을 지급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또한 오너가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오너家 먹여 살리기에 열중했다는 것이다.
도 넘는 ‘오너가 몰아주기’
동서그룹의 지주사격인 ㈜동서와 계열사인 동서물산은 경기도 용인시에 물류창고를 지었다. ㈜동서는 자체 사용 목적이며, 동서물산의 경우 관계사인 동서식품 등에 임대해 임대수익을 얻을 요령이다. 국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측이 건설 중인 물류창고의 총 부지면적은 1만8000여㎡(5445평)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이 매입한 부지는 오너家에서 소유 중이던 토지였다는 점이다. 지난 1957년부터 1984년까지 단계적으로 매입한 김재명 동서그룹 명예회장은,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이 부지를 아들인 김상헌 동서 회장과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에게 모두 증여했다. 그리고 땅을 증여받은 지 7년여 만에 자신들이 경영하는 회사에 되팔았다. 토지 매입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가치가 매우 낮은 땅이었으나 공시시가를 훨씬 웃도는 비싼 가격에 매입했다는 점이다.
동서물산에서 매입한 용인시 토지는 7억4000만원으로 책정됐는데 이보다 1.7배 높은 12억4000만원에 이 부지를 매입했다. ㈜동서 역시 공시가가 6억 원이던 토지를 두 배가 웃도는 15억8000만원에 매입했다. 실제로 동서그룹이 신고한 부지 총 매각대금은 최소 2배 이상인 28억2375만8500원으로 알려져 수십억 원의 차액을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거래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김재명 명예회장 일가가 보유하던 토지 인근이 7년여 전부터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묶여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묶인 땅을 그룹 계열사들이 사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동서그룹 측은 해당 부지의 교통편을 생각해 매입한 것으로 토지 매입이 객관적인 절차를 따랐다는 입장이다.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 90%에 달해
또한 동서식품의 모기업인 ㈜동서의 대주주들이 높은 지분율을 이용해 고액의 배당금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동서식품은 최근 10년간 50%씩 지분을 가진 미국의 크래푸트푸드와 동서에 9800억 원을 배당했다. 동서의 지분을 70% 보유한 회장일가에 대한 배당금만 이 기간 3000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건설회사 성제개발은 몇 년 새 계열사 매출비중이 50%대에서 90%까지 치솟고 배당률이 높아져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2012년 매출의 44%인 60억 원을, 2011년에는 매출의 94%인 178억 원을 그룹 내 계열사 일감을 통해 얻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
성제개발은 지난 1986년 건축공사업, 임대업, 비주거용 건물건설업, 석유류 판매업 등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유동개발이 전신으로 이후 1990년 상호를 성제개발로 변경했다. 현재 ㈜동서가 이 회사의 지분 43.09%를 보유한 최대주주며, ㈜동서 김종희 상무를 비롯한 친·인척 3명이 나머지 56.9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제개발은 지난해 총 매출 138억 원의 43%가 넘는 60억 원 가량을 그룹 내 계열사를 통해 이익을 올렸고, 2011년에는 내부거래 비중이 총 매출의 9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제개발은 그룹 내 계열사들의 지원을 통해 얻은 이익을 대주주 등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2011년 회계연도에는 순이익 22억 원의 66%인 15억 원을 배당했으며, 2012년 회계연도에 대해선 순이익의 88%인 7억5000만원을 배당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지급한 배당금이 매년 1000억 원 안팎에 이른다. 특히 2008년에는 중간배당금까지 합해 그해 순이익보다 많은 1748억 원을 배당 했었다. 결국 동서식품에서 막대한 현금 배당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오너 일가에게 중복 배당돼 누적된 금액이 적게는 3000억 원, 많게는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세무조사는 이 배당금 중에서 탈세된 여부가 있는지에 대한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동서 측은 정기적인 세무조사일 뿐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동서그룹 관계자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통보를 서면으로 받았고, 특별 세무조사라는 항목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며 “지주회사인 ㈜동서를 대상으로 한 4년만의 정기 세무조사”라고 일축했다.
이어 “㈜동서나 성제개발 등 계열사와 관련한 논란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논란과 이번 세무조사를 연결 지어 해석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고 해명했다.
국세청 ‘대기업의 불법 증여’에 제동 걸고 나서
국세청은 일감 몰아주기, 위장 계열사 설립 등을 통해 자녀들에게 불법적으로 부(富)를 대물림한 의혹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는 불공정 거래를 통한 대재산가들의 불법 증여에 대해 엄정조치 하겠다는 것으로 새 정부 경제 민주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국세청의 테마 조사라고 풀이된다.
국세청은 성제개발이 계열사 일감을 받아 매출을 늘리면서 이익을 올리고, 이익의 상당 부분을 대주주인 오너 일가에 배당을 통해 돌려주는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조사를 하고 있다. 또한 동서식품 제품을 수출하는 ㈜동서의 해외 거래에 대해서도 중점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자녀 회사에 사업권을 낮은 가격에 넘기거나 편법적인 수단을 활용해 자녀에게 불법적으로 증여하는 행위가 최근 많이 발견되고 있다”며 “올해엔 연 매출액 500억 원 이상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해 오너의 불법 증여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일감 몰아주기를 하던 대기업과 계열사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첫 번째로 조사 중인 업체가 매출규모가 작은 식품회사인 만큼 앞으로 어디로 불똥이 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