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왕자는 독수리, 지상의 왕자는 호랑이
대규모적인 개인전 개최, 인재양성 매진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각 동물은 저마다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는 물고기가 재물을, 일본은 고양이가 복을 부른다 하여 각 가정마다 물고기 그림이나 복을 부르는 고양이 장식품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호랑이 인 듯 싶다. 대부분 산맥으로 이루어진 우리 한반도는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한다 하여 '호랑이의 나라'로 일컬어지고 있다. 우정과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인류의 축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호돌이'가 한국을 대표했던 것처럼 말이다.
잘 발달되고 균형 잡힌 신체 구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목표물을 향할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의 호랑이는 산군자, 산령, 산신령, 산중영웅으로도 불리는 백수의 왕이었다. 그래서 천상의 왕자가 독수리라면 지상의 왕자는 당연 호랑이를 일컬었다.
호랑이는 재앙을 몰고 오는 맹수로 이해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치는 영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은혜에 보은하는 동물로 대접받기도 하고, 골탕을 먹이는 어리석은 동물로 전락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조상은 이런 호랑이를 좋으면서 싫고, 무서우면서 우러러보았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로 시작되는 옛날 이야기 속에는 의래 재미있는 호랑이 이야기가 있다. 힘세고 날래지만 한없이 어리석어 사람에게는 물론 토끼나 여우, 까치 등에게 골탕먹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 있는 반면 호랑이가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사람이나 짐승으로 변신도 하면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의를 지키고 약자와 효자, 의인을 도우며 부정함을 멀리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등장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다.
범이라고도 하는 호랑이는 한국 12지 중의 하나로 우리민족의 생활곳곳에 반영돼있다.
역사적 상징성, 와당, 도자기 등의 민예품에서 보이는 풋풋한 예술성과 재기 넘치는 익살, 민화와 산신도에 나타난 질박함과 종교적 기원 등이 그것이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호랑이에 대한 관심과 기원적 의미로 호랑이 그림을 소장하고자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호랑이를 주재를 한 전문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호랑이를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있지만 호랑이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상 다른 그림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호랑이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평생을 호랑이 그림에 매진해온 뭔가 특별한 화백이 있다.
태몽도 호랑이 꿈
평생을 호랑이와 함께
평생을 호랑이와 함께 해온 김진호(74) 화백은 호랑이와의 인연이 깊다.
충남 서산의 가야산 줄기에 자리 잡은 운산면 출생인 김 화백은 모친이 해산을 앞두고 있을 때 부친이 집 문 앞에 호랑이가 와있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물러나면서 복중의 김 화백이 태어났고 태몽도 호랑이 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호랑이와 인연있다 해서 떨칠 진에 호랑이 호 자로 지었다고 김 화백은 말한다. 뿐만 아니라 호를 죽암(竹巖)으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즉 호랑이가 바위를 타고 다니는 형국을 표현한 것. 김 화백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시작했다.
이때 그린 그림이 최근까지 운산 초등학교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를 그리게 된 것은 자신이 태몽에서부터 알 수 없는 호랑이와의 인연이기도 하지만 한반도를 표현하는 적합한 동물중의 하나이며 우리민족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함께 이어온 상징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우한 이웃을 위한 기증작 만도 수천 점
하늘의 복을 주고 액운을 막아준다는 호랑이 그림의 대가, 김진호 화백의 호랑이 그림은 온화하면서도 강렬한 눈빛 그리고 용맹한 기상을 내뿜고 있다. 한 번쯤 김 화백의 호랑이를 접해본 사람은 좀처럼 눈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마치 호랑이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 같은 그리고 세상을 한번에 삼킬 것 같은 강한 호음이 귓가에 맴도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김 화백의 작품은 그 어떤 화백의 작품에 비해 고가이기도 하지만 화백 중 최고의 화백으로 인정받고 있어 호랑이 그림 하면 단연 김진호 화백을 말한다.
김 화백은 그동안 호랑이 그림을 주문작으로 일관해왔다. 적게는 보름 크게는 한달 이상 작업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호랑이 그림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상을 내세우기보다는 오히려 낮추어 겸손한 마음과 행동으로 화백으로 삶을 여미어 가는 김 진호 화백은 호랑이를 비롯 산수화, 동물화(독수리), 민속도, 풍속도, 초상화에도 탁월하다.
카렌다에 등장하는 민속도나 풍속도 그리고 사계절을 담은 작품 중 김 화백의 작품도 많이 있다. 초상화 작품 중에는 이기붕의 대형 초상화가 있다. 그러나 김 화백은 호랑이 그림에서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으로 그의 작품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다. 중국, 일본, LA등에서 박물관이나 공공기관에는 전시돼있지만 국내에서는 군부대나 공공기관에서 만나 볼 뿐이다.
그것은 외국전시회는 가졌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개인전은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소장된 작품은 대부분 애국심으로 승화된 기증 작으로 아마도 수천 점에 이른다고 한다. 김 화백은 일신의 부귀보다는 남을 베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보다도 불우한 이웃과 소년소녀가장돕기에 쓰여 질 수 있도록 자신의 작품을 선뜻 내놓은 아량 또한 지니고 있어 보살도를 행하는 선자로 주변사람들은 말한다.
대규모적인 개인전을 개최하고 싶다.
화가로서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고, 수족을 쓰지 못 할 때까지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며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김진호 화백에게는 한 가지 서원을 세우고 있다.
그것은 대규모적인 개인전이다. 그동안 전시회 출품작은 준비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개인전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각종 초청전에도 출품하면서 인재양성에 매진하고 싶다고 한다.
김 화백은 인재양성에 있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자신의 기술을 감추기보다는 아낌없이 개방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김 화백은 그동안 이름 있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지 김 화백의 작업실에는 언제나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작가들이 방문하고 있다. 그만큼 김 화백의 작품성은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현대의 문화수준은 동양사회에 집중 조명되고 있다. 특히 동양화나 한국화가 그러하다. 그러나 교육방향은 그러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동양화보다도 서양화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화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동양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미풍양속을 지키며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김진호 화백은 말한다.
한편 김진호 화백은 '어떤 분야의 장인들로 그러하겠지만 평생을 그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심완택)의 내조 덕'이라고 말한다. 일일일식을 하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옆에서 손과 발이 되어주고 때로는 선생님으로, 평론가로 아낌없는 후원과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김 화백은 말한다.
민경범 기자 spaper@Sisafocus.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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