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별장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현직 법무차관의 사퇴로 번졌고 사건에 연루된 고위층 인사들이 더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파장은 증폭됐다. 수사진행 수일이 지난 후 압수수색을 벌였고 별다른 성과없이 수사는 답보상태인 가운데 핵심 지휘부가 교체됐다. ‘문책성인가 아니면 수사의지의 박약인가’라며 의혹의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성접대 사건의 진행사항을 점검했다.

사건의 실체 규명에 난항…해프닝 가능성 제기
‘성접대 사건’ 수사 결과물 없이 지휘부 교체
“경찰이 수사 의지를 상실했다”는 관측 나와
성접대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강원도 원주 별장 건설업자 성로비 사건이 수사 한 달이 지났다. 이 사건은 정부부처 고위관료 등 다수의 사회 유력인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공직사회를 긴장시켰으며 국민적 관심이 높아 대통령까지 나서 엄중한 수사를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착수 한 달이 지난 지금 경찰 수사는 답보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성접대 의혹 수사의 핵심 실무 책임자들이 교체되면서 경찰의 수사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성접대 의혹 수사는 고위공직자 비리 등 첩보를 수집·분석하는 범죄정보과와 특수수사과가 주축이 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수사국장, 수사기획관 등 수사라인 최고 책임자들에 이어 실무 수사의 핵심인 두 부서의 책임자까지 교체됐다. 과연 수사팀이 앞으로 남은 수사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시각이 경찰 안팎에서 제기됐다.
경찰청은 18일 총경 해당 사건의 수사 실무 책임자인 이명교 특수수사과장과 반기수 범죄정보과장을 각각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과 경기 성남수정경찰서장으로 각각 전보 발령했다. 경찰청 과장급은 평균 1년가량 보직 근무를 이어 간다는 점에서 지난해 7월 특수수사과장이 된 이 과장이 9개월 만에 전보 조치된 것은 이례적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여파가 컸던 사건을 한창 수사 중인 가운데 핵심 실무 책임자가 교체돼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기 힘들어 보인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실질적으로 수사를 지휘해 온 이세민 수사기획관이 경찰대 학생지도부장으로 옮겼다. 또한 이달 5일에는 수사국 1인자인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이 울산경찰청장으로 발령 났다. 경찰이 수사 의지를 상실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성접대의혹 사건 결과없이 답보상태
실명까지 공개돼 사퇴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물론,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씨 등에 대한 소환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소환이 이루어질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경찰이 확보한 ‘성접대 동영상’이라는 것을 두고 관련자들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경찰 역시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신분을 특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경찰은 권씨로부터 제출받은 2분30초 분량의 짧은 성관계 동영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화질개선·성문분석을 의뢰했지만 국과수는 “얼굴선이 유사해 김 전 차관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 결과를 통보한 바 있다.
목소리로 인물을 특정하는 성문분석 결과도 동영상 음질이 현저히 떨어져 무의미했다.
국과수에 보낸 동영상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을 컴퓨터에서 재생한 뒤 다시 휴대전화로 모니터를 재촬영한 것이라, 경찰은 원본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이 동영상을 실제 보관했더라도 영구폐기해 버렸을 가능성이 높아 원본 확보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동영상은 수사의 곁가지에 불과하고 본질은 윤씨의 일반적인 불법행위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빈집털이’ 압수수색 이후 개점휴업
윤씨의 ‘성접대 리스트’에 거론되는 인물은 김 전 차관 외에도 경기도의 한 대형병원 원장 P씨, 정부부처 국장급 고위공무원, 전 감사원 국장급 인사, 국정원 고위간부, 전직 국회의원, 전직 언론인 등 10여명 선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경찰이 성접대와 관련한 물증 확보에 실패하면서 결국 윤씨와 일부 사업관계자의 ‘일반적 불법행위’만 처벌되고 이들 유력인사 대부분은 교묘히 법망을 피해갈 것이라는 시각도 나왔다.
그러나 경찰청 관계자는 “동영상이 수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되지 않는다”며 “우리는 윤씨의 청탁이나 이권관계가 관심이기 때문에 수사는 계획에 따라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성접대 로비 파문이 터진 지 이미 수주일이 지난 뒤 경찰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성접대 장소로 거론되는 윤씨 소유의 강원도 원주 별장 등을 압수수색했다. 마음만 먹었으면 충분히 모든 관련 증거를 없애고도 남을 시점이라 경찰수사의 뒷장대응에 대한 비난이 폭주했다. 경찰 수사는 ‘빈집털이’나 마찬가지인 압수수색 이후 뚜렷한 움직임 없이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찰이 수사의 ABC도 모르고 있다”며 경찰의 무능력을 질타했다.
애초 법조계에서는 성접대 로비라는 것의 실체가 밝혀진다고 해도 그 자체로는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처벌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에 따라 성접대 의혹사건은 성과없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와 함께 경찰 지휘부의 교체에 따라 수사의지도 의심받고 있다.
이는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개입 의혹의 실무를 총괄하던 권은희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전보 발령했다가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전례가 있어 논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