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병원도 문닫아야지?-진주의료원 사태
돈 없으면 병원도 문닫아야지?-진주의료원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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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사태를 통해 본 공공의료정책의 방향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공공 병원 종합 정보 시스템’ 홈페이지를 보면, “지방의료원은 민간 병원보다 65-88% 수준의 낮은 진료비를 유지함으로써 국민 의료비 증가 억제에 기여 한다”고 적혀 있다. 공공의료기관의 목적이 수익창출이 아님을 명시한 이 문구는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하여 유의미한 기준을 시사한다. 과연 시장논리를 내세워 공공의료기관을 폐업시키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되짚어 본다.


공공의료 적자는 복지를 위한 정부의 복지비용
공공병원에 공익성·수익성 동시 요구는 모순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큰 틀에서 의료체계 봐야”


진주의료원 폐업을 둘러싸고 경상남도와 진주의료원 측의 공방은 전 국민적 관심사로 확대됐다. 진주의료원 사태로 인해 ‘공공의료정책’에 대한 논의가 확산된 탓이다.
경남도의 주장은 진주의료원의 만성적인 적자와 부채 누적으로 더 이상 지원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진주의료원이 강성노조의 볼모가 되어 정상화 방안을 추진할 수 없어 폐원할 수 밖에 없다며 폐원을 위한 수순밟기에 돌입했다.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직원들이 마치 ‘고액 연봉’을 받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며 “진주의료원의 1인당 임금 수준은 오히려 다른 공공 병원보다 낮다”고 반박했다.
공공 병원의 인건비 비율이 민간 병원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 인력의 임금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공공 병원의 의료 수익이 민간 병원보다 적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홍 도지사는 ‘강성노조’ 운운하며 여론을 이끌고 있지만 진주의료원의 사태는 노사갈등의 관점이 아닌 경남도와의 정치적 갈등으로 비쳐지고 있다. 과연 진주의료원을 계기로 시장논리를 앞세운 공공의료기관의 폐업은 도미노처럼 여타 공공의료기관으로 확산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는 진주의료원만의 문제가 아닌 여타 공공의료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은 좌파가 아닌 우파의 발명품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15일 “공공의료는 박정희 대통령 때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출발한 좌파정책”이라고 주장하며 색깔공세를 폈다.
그러나 의료보험은 그의 주장처럼 좌파의 발명품이 아닌 우파에 의해 만들어졌다.
독일제국 ‘철혈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1883년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비스마르크는 의료보험 도입을 시작으로 1889년까지 산재보험을 도입하고 이후 연금보험까지 시행했다.
비스마르크가 이처럼 일련의 복지제도를 도입한 것은 독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당시 유럽 전역을 강타한 노동자들의 공산주의 혁명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의료보험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급속한 산업화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했고 사회적 불만이 고조됐다. 이에 박 대통령은 독일에서 재정학을 공부한 김종인 교수를 불러 조언을 구했다. 이에 김 교수는 의료보험 도입을 건의해 각료와 재계 등의 강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을 도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공공의료를 ‘박정희의 좌파정책’이라고 비난한 것에 맞서 ‘공공의료 확대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환경의 실태는 무엇이고 공공의료는 왜 강화되어야 하는 것일까?

공공의료를 시장주의적 경제논리로?

국내 공공병원은 시·도립병원, 국립병원. 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국군병원 등 약 200개가 있다.
공공병원의 비중은 사회복지가 발달된 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전체 의료기관의 80~90% 수준이고 미국도 34%에 달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5.9%밖에 되지 않는다.
OECD가 2008~2009년을 기준으로 조사해 공개한 각국 보건 통계를 분석한 결과 공공병원 병상수 비중은 평균 75.1%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은 10.4%로 파악돼 OECD평균의 7분의 1에 그쳤다. 한국과 1인당 GDP가 비슷한 체코의 비중은 91%, 스폐인은 74%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국가 중에서도 멕시코의 공공병상 비중은 65%였다. 통계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의 공공병원 숫자는 많지 않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진주의료원 폐업을 옹호하는 측의 주장은 적자로 인해 폐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매년 400억원이 넘는 국비를 공공병원에 투입하고 있지만 진주의료원과 같은 지방의료원 34개중 27개 병원이 적자다.
지난해 군산의료원은 416억원, 부산의료원은 368억원, 서울의료원은 314억원 등으로 진주의료원의 279억원보다 부채규모가 크다. 공공의료기관은 그 역할에 따라 불가피하게 적자 운영을 초래하게 한다.
그렇다면 공공의료를 시장주의적 경제논리로 풀어가야 온당한 것일까?
진주의료원이 지역 주민들에게 감면해준 의료비는 연간 30억 원 규모다. 수익성을 높이려면 공공 병원이 제공하는 필수 의료 서비스를 줄이거나, 공공 병원도 민간 병원 수준으로 진료비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공공 의료 기관의 적자는 의료 복지를 위해 정부가 지출하는 복지 비용”이라며 “만약 돈을 버는 공공 병원이 있다면 이는 공공적으로 진료를 하지 않은 것이기에 병원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진석 서울대 교수는 “공공병원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적자는 불가피하며 공공병원의 ‘건강한 적자’를 지원하는 것이 국가 보건의료체계 측면에서 이익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공공의료기관의 적자는 복지비용으로서 경제논리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공의료기관은 사회안전망 기능해야

일각에서는 한국에 병원이 많아 공공의료원이 줄어들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 한국의 총 병상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1.5배에 달한다. 민간병원이 많은 탓이다. 그렇다면 공공의료원이 줄어들어도 문제는 없지 않을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국장은 “공공의료기관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전체 의료기관의 적정화, 표준화 때문”이라면서 “공공의료기관이 자리잡고 있으면 주변 민간의료기관이 돈 되는 진료를 필요 이상으로 하거나 돈 안되면 진료하지 않는 행위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고양시에서는 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2009년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1인당 본인부담금은 고양시 민간병원들이 308만~400만원이었지만 일산병원은 233만원이었다. 민간병원들이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남발하려 해도 일산병원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공공의료가 꼭 필요한 이유는 전체의료기관의 적정화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의 기능도 중요하다.
서울대 이진석 교수는 “2009년 신종플루가 터졌을 때 정부는 민간, 공공 가릴 것 없이 협조를 요청했지만 실제 한국의 병원 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병원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병원은 환자를 꽉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격리시설, 격리병상이 제대로 있을 리 없고 이미 공공의료원은 세계 최저 수준이었던 탓이다.
또한 산부인과, 소아과 병상 등 민간병원이 기피하는 진료과목과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는 곳이 공공의료원이다. 때문에 민간병원이 담보하지 못하는 역할을 공공의료기관이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복지국가 실현관점으로 공공의료 강화해야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사회복지학회 등이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진주의료원 사태로 본 공공병원의 현황과 발전방안’을 주제로 한 긴급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공공의료를 강화해야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복지국가 실현과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라는 큰 패러다임 안에서 공공보건 의료체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제에 나선 정백근 경상대 의대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공의료는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될 수 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지방의료원의 소유 주체를 보건복지부로 이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이진석 교수는 “복지부가 지방의료원 문제는 지방정부의 소관사안이니 알아서 할 일이고 중앙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런 방식을 고수해서는 진주의료원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공공지방의료원도 같은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보다 재정적 책임성, 관리운영의 전문성을 담보하고 관리 등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해법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은 복지의 관점으로 중앙정부가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된 해법이 모색되는 가운데 진주의료원을 위시한 공공의료정책의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복지국가실현이라는 전 국가적 과제속에 진주의료원사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지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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