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백기를 들었다. 지난해 사퇴한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4월 4일 이임식을 갖고 사퇴한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세 번째다. 막강파워를 자랑했던 MB맨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사퇴’라는 쓸쓸한 말로를 맞이한 것이다. 이제 금융권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거취에 주목하고 있다. MB맨으로 분류되는 동시에 경영상 책임을 물어 노조로부터 사퇴압박까지 받고 있는 두 사람. 이들의 거취에 대한 관심을 담아봤다.


“깔끔하게 그만 뒀다” 1선 퇴진 김승유 전 회장
새 정부 출범 후 잇달아 사퇴 강만수·이팔성 전 회장
노조의 사퇴촉구까지…당혹스런 어윤대·최원병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4월 14일 사의를 표했다. 임기 1년을 남겨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 전 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1967년 우리은행 신입행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지난 40여년간 우리은행과 우리금융에서 회사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우리나라 처음으로 한 금융기관의 말단행원에서 그룹회장이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만수·이팔성 전 회장
임기 1년 남기고 ‘사퇴’
이 전 회장은 재임기간 3차례 추진한 민영화가 무산된 데 대한 아쉬움을 전하면서 “민영화가 조기에 이뤄지길 기원한다”는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구체적인 사퇴이유를 밝히지 않아 “이 전 회장이 박근혜 정부의 압박에 의해 사퇴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렸다. 이 전 회장이 MB맨으로 분류된 인사이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고려대학교 동문이자 오랜 친분을 나눈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전후로 사퇴압박을 받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 회장은 정부의 민영화 의지와 철학을 같이할 수 있는 분이 맡는 게 좋다”면서 ‘이팔성 회장의 조기사퇴 여부’에 대한 질문에 “본인이 알아서 잘 하실 것”이라고 답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전 회장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사퇴압박은 표면화됐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의 사퇴도 이 전 회장의 사퇴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강 전 회장은 3월 28일 사의를 표하고 4월 4일 이임식을 가졌다. 강 전 회장 또한 임기를 1년 남겨두고 내린 선택이었다. 강 전 회장은 MB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통령실경제특별보좌관을 거쳐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된 대표적인 MB맨. 강 전 회장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자진사퇴 압박을 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이 “끝까지 책임지는 게 공직자의 자세”라며 사퇴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하면서 강 전 회장이 사퇴압박을 뚫고 임기를 무사히 채울지 촉각이 곤두세워졌다. 결국 강 전 회장은 단 10일을 버텼을 뿐이었다. 업적으로 꼽히는 다이렉트예금이 역마진 상품이라는 지적과 민영화 실패에 대한 책임론 등 새 정부가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면서 강 전 회장은 결국 백기 투항했다.
어윤대 회장, 사퇴압박
“임기 3개월 남았는데…”
이들에 앞서 사퇴를 결정한 인사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3월 회장직을 그만두고, 올해 2월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직에서도 물러났다.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직이 대통령 임명직으로서 새 대통령이 당선됐다면 사표를 내는 것이 맞다”는 것이 김 전 회장의 설명이었다. 김 전 회장도 대표적 MB맨으로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다.
김승유 전 회장, 강만수 전 회장, 이팔성 전 회장까지 사퇴하면서 ‘MB정부 금융권 4대천왕’ 마지막 주자인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동문으로 오는 7월까지가 임기다. 어 회장의 임기가 3개월가량 남았고 차기회장 선출에 2~3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임기 채우기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 회장도 임기를 채우는 것이 “당연하다”며 자진사퇴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다만 변수는 노조의 거센 사퇴촉구다. KB노조는 최근 “어윤대 회장이 ISS보고서 사태의 배후조종자면서도 ‘모르는 일’이라고 회피하고 박동창 부사장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었다”며 어 회장의 회장직 사퇴와 연임포기를 촉구했다. ISS보고서 사태는 ISS가 KB금융 이사회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친정부적 성향을 지닌 이사선임을 반대해 논란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박 부사장이 ISS에 잘못된 정보를 흘렸다는 책임을 받고 해임됐다.
KB노조는 “지난달 8000여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경영진에 대한 리더십 평가를 실시한 결과, ‘어 회장이 계속 경영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응답자의 16.9%였다”며 “어 회장의 리더십에 KB국민은행 직원들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KB노조는 어 회장의 퇴진을 비롯해 KB금융지주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 회장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최원병 회장, 전산사고
책임지고 사퇴하라”
금융권 4대천왕은 아니지만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거취도 관심대상이다. 선출을 통해 당당하게 얻은 중앙회장직이지만 최 회장이 이 전 대통령의 동지상고 후배로 MB맨이라는 데서 이목이 쏠렸다. 또한 농협중앙회가 농업협동조합법에 의해 존립하는 등 공공기관으로서 정부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최 회장 거취에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임기간 중 잇달아 터진 사건도 최 회장을 옥죄고 있다. 농협은 2011년 4월 초유의 전산망 마비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해와 올해에도 전산망 마비가 일어나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특히 2011년 4월 전산망 마비사고 후 “비상임직이라 전산업무를 잘 모르고 책임질 것도 없다”는 최 회장의 발언에 비난여론이 상당했다. 주택담보대출 교육세를 부당 수취한 사실도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드러났다.
2011년 선거에서는 사전선거운동 의혹이 불거졌다. 최 회장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 조합에게만 ‘무이자 조합지원 자금’을 편중 지원했다는 보도와 임원 17명(투표권을 가진 대의원은 8명인 것으로 알려짐)을 호화 해외연수에 보냈다는 보도가 더해지면서 사전선거운동 의혹이 짙어진 것이다. 이후 PD수첩 등에서 최 회장으로부터 돈 봉투를 받았다는 현직 조합장의 증언과 문제의 봉투가 공개되면서 사전선거운동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최 회장을 향한 농협노조의 칼날도 또다시 날카로워진 상태다. 농협노조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3월 25일과 28일 일어난 농협중앙회, NH농협금융의 전산마비 사태와 노조활동 탄압의 책임을 지고 최원병 회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협노조는 최 회장에 대해 “2011년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구축했다는 최고 보안시스템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거듭 사퇴압박을 가하는 노조로 인해 ‘최원병 회장 경영능력’에 대한 잡음은 끊임없이 새나올 전망이다. 이는 금융권 인사가 줄 사퇴를 선언하는 이때, MB맨으로 분류되는 인사에게 골치 아픈 부분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게다가 농협을 향한 금융당국의 압박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농협전면에서 금융당국의 압박을 받아내는 이는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다. 김수봉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4월 11일 신 회장에게 전산망 사고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과 관련, “가능성은 다 열려있다고 보면 된다”며 “검사결과 문제가 있다면 누구든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또한 김 부원장보는 “금융지주와 산하 자회사의 전산시스템을 농협중앙회에 위탁운영 중이지만 위탁사가 농협중앙회의 IT업무처리와 보안통제부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앙회를 검사해 문제가 있을 시 농림축산식품부에 책임을 묻도록 강하게 요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검사대상을 농협은행에서 농협중앙회로 확대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내달 있을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동행하는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과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이름이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산은금융지주 등 수장들은 초대받았는데 농협이 제외된 것은 의아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최 회장, 신 회장과 함께 초대받지 못한 인사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금융권 내에서는 “이 전 회장은 사퇴했고, 어 회장은 임기가 곧 끝난다”며 “농협이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빠진 것은 인사교체에 대한 당국의 의지를 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강만수 전 회장과 이팔성 전 회장이 사퇴했다. 어윤대 회장과 최원병 회장 등에 대한 사퇴압박도 만만찮은 상태다. 그만큼 금융권이 정권교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해석이다. 금융권은 전문성이 중시되는 분야다. 정권교체에 따라 금융권 수장 교체설이 대두되는 상황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