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판 새긴 조선왕실의 관 재궁(梓宮)
칠성판 새긴 조선왕실의 관 재궁(梓宮)
  • 전명희
  • 승인 2005.07.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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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궁의 관 '재궁'공개
마지막 남은 조선왕실의 관(棺)인 재궁(梓宮)이 22일 오후, 영친왕 외아들인 이구(李玖) 씨 빈소가 마련된 서울 창덕궁 안 의풍각에서 언론에 공개됐다. 이 자리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한영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 문화재전문위원인 장경희 한서대 교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이용규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공개된 재궁은 길이 220㎝에 폭은 69㎝(위)와 62㎝(아래)였고, 높이는 58㎝, 두께는 10㎝였다. 목관 안 바닥에 시신을 얹어놓는 판목으로서 북두칠성 별자리를 새긴 칠성판(七星板)은 길이 198㎝, 폭 47㎝(위)와 42㎝(아래)에 두께 3.3㎝였다. 죽음을 표현하는 말 중에 '칠성판을 지고 간다'는 표현이 있듯이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성신(星神)으로 간주되었으며, 이 때문에 조선시대 많은 무덤에는 칠성판을 넣었다. 문화재청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과 협의해 이 재궁을 국립고궁박물관에 영구 보관하기로 했다. 재궁이란 왕실에서 사용하는 관으로 생전에 미리 제작해 두는 전통이 있었다. 조선왕조에서는 장생전(長生殿)이라는 관서가 그 제작을 담당했다. 장생전은 오래 사는 일을 관장하는 관서라는 의미를 지닌 말로 죽음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 실물을 살펴 본 한영우 위원은 "장생전(長生殿)이라는 관청에서 대형.중형.소형 등 고인에 따라 여러 종류의 관을 제작 보관했다"면서 "왕자가 태어나면 장수하라는 의미에서 관을 만들어 보관했으며 매년 생일날 (옻)칠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장경희 교수는 "옷칠이 매우 좋은 상태이며 관을 결구한 방법도 못을 하나도 박지 않고 나비 웅장목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조선시대 유형"이라면서 "이로 보건대 이 관은 멀리는 조선시대, 가까이는 대한제국 시기에 제작됐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이용규 부회장은 "일본에서 (이구씨) 유해를 옮겨온 온 관 또한 함께 보관키로 하고 대신 고인의 관은 향목으로 다시 제작했다"고 말했다. 조선왕실에서는 재궁의 재료인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일대 금강소나무 숲에 벌목금지를 명하는 봉산(封山) 표지를 곳곳에 세우기도 했으며 숙종 6년(1680년)에 건립한 실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봉산이란 요즘 말로 하면 '입산금지'라는 뜻이다. 이날 공개된 재궁은 창덕궁 의풍각에서 보관돼 오고 있다. 다른 하나가 더 있었으나 이는 1989년, 영친왕비인 이방자 장례식에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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