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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북쪽이니 제아무리 삼복(三伏)의 계절이라 해도 서울보다는 더위가 덜하리라는 기대는 연해주 주도(州都)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을 나서는 순간 허무하게 무너졌다.
기자를 포함해 이춘근 문화재청 정책홍보관리관과 한국전통문화학교 정광용ㆍ김경택 두 교수의 4명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마중나와 있던 한통문화학교 정석배 교수와 극동국립기술대학 유리 겐나지예비치 니키친 교수와 합류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튿날 7인승 승합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인구 86만이라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재래시장에 들르고, 또 이곳에서 서북쪽 약 140㎞ 떨어진 우수리스크를 거쳐가는 동안 다시 두어 곳 가게에서 이런저런 장거리를 장만하느라, 목적지인 체르냐치노까지 도착하는 데는 4시간 가량 소요됐다.
인구 16만에 지나지 않으나, 연해주에서는 대도시라는 우수리스크를 제외하고는 사람조차 만나기 힘들었으며, 광활하게 펼쳐진 허허벌판만 무한정 나타났다. 간혹 만난 구릉에는 떡갈나무나 버드나무가 드문드문, 혹은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온통 성인 키만한 갈대숲 차지였다.
우수리스크를 지나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꽤 넓은 강이 나타났다. 주변으로 매우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는 이 강을 가로지른 시멘트 교량에는 '라즈돌리나야 강'이라는 러시아어 팻말이 보였다.
이 강 줄기를 지도에서 더듬어 보면,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발원해 러시아 국경으로 들어와 동쪽으로 달리다가 우수리스크를 지나면서 남쪽으로 꺾여 블라디보스토크 만으로 빠져 동해로 흘러간다. 중국에서는 '솔빈강'(率賓江)이라 부른다.
'솔빈'. 고구려를 대치한 발해 왕국이 전국에 설치한 15개 부(部) 중 하나가 솔빈부(率濱部)인데, 이와 관련되는 강 이름이다. 기록에 의하면 솔빈부는 화주(華州) 익주(益州) 건주(建州)의 3개 주를 거느렸다. 솔빈부는 중심 구역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으나 우수리스크 일대었다는 설이 우세하다.
정석배 교수는 우리 목적지인 발굴 현장이 바로 상류로 더 거슬러 올라간 이 솔빈강변에, 중국 국경에서 서쪽으로 약 40㎞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했다.
솔빈강 다리를 건넌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를 태운 승합차는 갑자기 비포장길로 들어섰다. 주변 벌판으로는 감자나 콩을 심은 밭이 보인다. 아주 드물게 농부도 나타났다. 이 일대 광활한 지역 전체를 체르냐치노라고 한다고 했다.
정 교수에 의하면 체르냐치노 일대에 고려인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고려인 후손들이 그곳의 민족주의 열풍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옛 터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고려인의 연해주 재정착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발굴현장 주변만 해도 얼마 전 중앙아시아에서 온 한 고려인이 판 우물에서 백자가 출토되기도 했다고 한다. 1937년 이전 고려인의 흔적이리라. 70년 전에 고려인들이 쫓겨난 곳에서 우리 대학생들이 발굴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비포장 도로를 20-30분 정도 달리니 시넬리코보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집이라곤 10여 채 정도였으나, 마을회관 같은 곳이 도로변에 있어 생필품을 팔고 있었다.
가게 앞에 육중한 군용 트럭 1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최종 목적지이기도 한 발굴현장까지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으나 아예 도로가 없다시피 했으므로 저 군용 트럭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