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 출산휴가 중 700명 직장잃어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문제로 인식되면서 정부는 전방위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출산장려금에 육아수당 등 그 지원규모는 가히 10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파격적인 듯 했다. 급기야 지난 달 28일에 기획재정부는 임신과 출산을 독려하기 위해 아빠의 달을 만들기로 했다. 아빠의 달은 출산일로부터 90일 이내 30일을 남성 근로자가 출산휴가로 쓸 수 있는 내용이다. 엄마의 권리뿐만 아니라 아빠의 권리마저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실제 여성의 출산휴가는 법적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실상을 담았다.
나라고 임신 숨기고 싶은 줄 알아?”
출산휴가기간 중 고용보험 자격 상실
보호받지 못하는 모성권리 보완책 절실
지난 23일 방송된 KBS 2TV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 에서는 계약직 여직원 박봉희가 임신 사실 때문에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현실을 그렸다. 극중 박봉희는 회사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회사 체육대회 날, 박봉희는 배에 공을 맞을 뻔한 위기에 처하게 되고 사내 연애 중인 구영식이 구해낸다. 이 와중에 구영식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야, 우리 아기 괜찮아?”라고 소리쳐 이들의 비밀연애와 임신사실이 탄로났다. 이에 박봉희는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재계약이 안 될 것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말을 하고 다니냐”며 “나도 남들처럼 축하 받으며 편안하게 지내고 싶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 장면을 접한 네티즌들은 “임신은 죄인가” 라며 “ 내가 겪은 생각이 나서 함께 울었다”등의 공감을 표시했다.
이 드라마 속 지어낸 이야기가 실제임을 드러내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출산을 장려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산모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가 여실히 증명된 것이다.
법적으로 보호된 모성권리…그러나 현실은?
출산휴가 기간 중 해고를 당한 여성이 지난 2009~2012년 약 4년간 700여명에 달했으며 2010∼2012년 사이 140명이 육아휴직 기간 중에 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발표된 감사원의 ‘청년 및 여성·장애인 고용정책 추진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감사원이 고용보험시스템에서 2009년부터 2012년 9월까지 출산휴가 급여대상자 31만4661명을 분석한 결과 735명이 휴가기간 중 고용보험 자격이 상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1783명은 법정 출산휴가기간인 90일 가운데 일부만 사용한 채 복직한 것으로 집계됐다.
근로기준법은 임신·출산을 준비하고, 임신과 출산으로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출산전후 90일의 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 근로자는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정규직 근로자 뿐만 아니라, 단시간 근로자 등 비정규직 근로자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근속기간에 상관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작은 사업장, 비정규직 등은 육아휴직은 커녕 출산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10∼2012년 출산휴가를 보장하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 위반이 확인된 394개 사업장 가운데 371개 사업장이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고용보험전산시스템을 주기적으로 분석, 출산전후 근로자를 해고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업장을 추출해 근로감독을 실시하라고 ‘주의’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또 2010∼2012년 육아휴직기간 중 고용보험이 상실된 근로자 4902명의 상실 사유를 분석한 결과, 136개 사업장에서 근로자 140명이 육아휴직 시작 후 30일 이후부터 종료 전 10일 기간 중에 ‘경영상 필요’라는 사유로 해고됐다고 밝혔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만 6세 이하의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를 양육하고자 하는 근로자에게는 1년 이내의 육아휴직이 허용된다. 기업은 육아휴직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되며 육아휴직기간에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감사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육아휴직을 사유로 부당해고한 것으로 의심되는 136개 사업장에 대해 법규 위반 여부를 조사해 처리하라고 통보했다.
출산휴가·육아휴가 거부시 적극대처해야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하지만 규모가 작거나 영세한 회사에서는 이 권리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관련 법규를 제대로 몰라 넘어가거나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해고의 빌미가 돼 불이익을 겪는다.
30대 초반인 강씨는 결혼 7년 만에 임신이 됐다. 오랜 걱정 끝에 임신이라 기쁜 마음을 감추기도 잠시 직장문제로 고민의 늪에 빠졌다. 출산예정일을 두 달 앞둔 올해 6월 회사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강씨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한 뒤 퇴사하겠다”며 회사 동의를 받고 휴가에 들어갔다. 하지만 강씨는 출산휴가 기간 중 일방적으로 퇴사 처리됐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출산휴가 전 출산예정일, 휴가기간 등을 적은 ‘출산휴가신청서’를 작성해 회사가 휴가를 허락했다는 내용을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출산휴가는 별도 신청 없이도 자동으로 주어지는 법적 권리지만 신청서를 작성하면 회사 측이 갑자기 말을 바꾸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올해 초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20대 여성 고씨. 그녀는 임신 사실을 학교에 알리자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말을 들었다. 비정규직이라 그녀는 아무런 의사도 표명하지 못한 채 직장을 포기했다. 계약직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고, 출산전후휴가를 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혹시 알고 있더라고 관행상 이를 어겨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법·제도로 명확하게 보장하고 있는 권리가 직장에서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이다.
30대 후반인 이씨는 회사가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자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이씨는 다행히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의 상담을 통해 제공된 양식에 따라 육아휴직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씨가 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 회사는 10여 차례의 협의 끝에 최근 이씨의 육아휴직을 인정했다. 이렇듯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 경우 관련단체에 상담을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저출산은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주목되는 상황이다. 법권리가 현실을 바꾸어 낼 수 있게 하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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