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이 따뜻해졌다. 사회공헌 선포식을 갖고 나눔 바자회를 열며 이웃사랑을 적극 실천 중이다. 경제민주화 열기에 발맞춰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는 계열사도 정리한다. 상생 의지가 엿보이는 행보다. 그러나 훈풍은 잠시였다. 이호진 전 회장의 그림자가 태광그룹을 떠나지 않는다. 횡령·배임 재판에 유산상속 소송까지. 잊을만하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이호진’ 석자에 태광그룹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시름하고 있다.

사회공헌·일감몰아주기 계열사정리 등 훈풍 불어넣었지만
횡령·배임 재판에 상속소송까지 이어져 “바람 잘 날 없다”
태광그룹이 17일 ‘사회공헌 선포식’을 열었다. 특히 태광그룹은 “사회구성 최소단위인 가정이 붕괴되는 현실에 보탬이 되고자 ‘따뜻한 가족 만들기’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집수리·과외활동 등 경제적 후원을 넘어선 실질적인 나눔을 실현하겠다는 설명이다.
“따뜻한 빛이 되겠다”
이날 태광그룹은 새로운 사회공헌 BI(Brand Identity) ‘따뜻한 빛’과 슬로건 ‘세상을 비추는 따뜻한 빛이 되겠습니다’도 공개했다. 사회공헌 활동이 전사적으로 이뤄질 것임을 예고하며 의지를 표면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2월 사회공헌본부를 신설한 것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사회공헌 활동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회공헌 선포식’ 이후 사흘 만에 아름다운가게·굿윌스토어와 ‘나눔 바자회’를 진행한 것이다. 심재혁 부회장과 계열사 대표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태광그룹은 “선언에서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행사취지를 설명했다.
이 외에도 태광그룹은 대학생들에게 10억원 규모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세종정신 담은 공공언어 연구총서’ 발간사업 협약식을 체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룹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지난해 8월 태광그룹은 계열사에만 뒀던 홍보팀을 그룹에도 만들었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계열사인 흥국생명과 흥국화재의 기업이미지 광고를 방영했다. 폐쇄적 분위기로 유명했던 태광그룹에게는 큰 변화였다.
이처럼 태광그룹이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에 나선 데는 심재혁 부회장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심 부회장은 LG그룹에서 대외업무를 맡아 인정받은 인물로 지난해 2월부터 태광그룹을 이끌고 있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칭호를 얻었던 이호진 전 회장과는 다소 경영스타일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경제민주화 열기에도 발 맞췄다.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내부거래비중이 높은 계열사 3곳(티시스·동림관광개발·티알엠)의 합병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상생을 실현하면서 이 전 회장과 거리를 두는 결정이었다.
계속되는 법정싸움
이러한 노력이 통했을까. 시장에서는 태광그룹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호진 전 회장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횡령·배임 혐의를 받은 이 전 회장의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누나와 이복형이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유산상속 소송을 걸었다. 전 오너의 사건이라는 데서 태광그룹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2011년 이 전 회장은 회계 부정처리와 무자료 거래 등을 통해 회사돈 530여억원을 빼돌리고, 골프연습장을 헐값에 넘겨받는 등 그룹에 950여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모친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도 동일한 혐의였다. 이로 인해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이 전 회장은 징역 4년6개월과 벌금 10억원, 이 전 상무는 징역 4년과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았다.

유산상속 소송까지 제기됐다. 지난해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의 차녀 이재훈씨가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이재훈씨는 “검찰수사와 이후 공판과정에서 추가 상속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전 회장이 막대한 재산을 단독 소유로 귀속시켜 상속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재훈씨가 이 전 회장에게 청구한 내역은 이자를 포함한 채무 78억6000만원과 태광그룹 계열사 주식 일부(태광산업 보통주 10주, 대한화섬 10주, 흥국생명 10주, 태광관광개발 1주, 고려저축은행 1주, 서한물산 1주 등)다. 청구한 주식규모가 적은 이유는 정확한 상속권 침해규모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차명재산 규모가 드러나는 대로 소송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뒤를 이어 이복형도 유산상속 소송에 뛰어들었다. 고 이임용 회장의 삼남이자 이 전 회장의 이복형인 이유진씨는 “차명재산 중 상속분을 돌려달라”며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태광산업 보통주 5주, 대한화섬 5주, 흥국생명 5주, 태광관광개발 1주, 고려저축은행 1주, 서한물산 1주 등이 이유진씨의 청구내역이다. 이유진씨도 이재훈씨와 마찬가지로 “차명재산 규모가 드러나는 대로 소송가액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재훈씨가 이 전 회장을 상대로 낸 유산상속 소송 첫 공판은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부장판사 최승록) 심리로 4월 15일 열렸다. 이유진씨가 낸 소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부장판사 윤종구)에 배당됐으나 첫 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4월을 기점으로 이 전 회장을 상대로 제기된 유산상속 소송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지난해 항소심에서 이 전 회장의 실형이 재확인된 데 이어 유산상속 소송까지 본격화되면서 태광그룹은 격랑에 휩싸인 상태다. 최대주주이자 전 오너인 이 전 회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산상속 재판결과에 따라 지분구조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전 회장의 최대주주 자리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유산상속 소송과 관련해 “4월 15일 첫 공판이 진행된 것은 맞다. 첫 재판이니까 간단하게 확인만 한 것으로 안다”며 “개인 간 소송이기 때문에 회사 차원의 대응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