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승부수… 약발 먹힐까?
노무현 대통령이‘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을 제안함으로써,연정 구상은 결국‘적과의 동침’으로 임기 후반기의‘정치적 승부수’로 풀이된다. 특히 권력이양의 경로를 선명하게 밝힘으로써,“정권을 내놓겠다”는 말이 단순히 수사적인 차원이 아님을 과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구상이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 28일 200자 원고지 55장 분량의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자신이 권력을 이양하고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내각제 형태의 대연정론을 제시했다. "실질적인 정권교체 제안, 속임수는 없다"라는 강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서신의 형식은 열린우리당의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지만 그 내용은 한나라당에게 제안한 글이다.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서신’요지다.
저의 제안은 여러 가지 이지만 결론은 하나이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인 결함을 바로잡아서 정치를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생산적인 정치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제 정상적인 생각으로 정상적인 정치를 할 때가 됐다 .연정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여소야대 구조 때문이다. 여소야대는 정상적인 정치구조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여소야대 구조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례가 없다.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정이 성공하면 독재와 타도, 불신과 대결로 점철되어온 우리 정치에 신뢰와 협력, 대화와 타협이라는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연정을 한다면 열린우리당과 소수야당의 전부나 일부가 참여해 정권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조합이 더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야당이 모두 손을 잡아 원내 과반수를 확보해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구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당과 손잡아 대연정을 만드는 것이다.
17대 총선 결과 동거정부 이야기는 꺼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됐고, 4·30 재·보선으로 여소야대가 되고 난 후에도 민주노동당의 노선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4,30 재·보선 이후 한 때 한나라당은 다른 야당에게 반대를 위해 당연히 대오를 함께 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했고 실제 그렇게 되는 듯한 분위기가 엿보였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동거정부를 제안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정당이 연합해 국회과반수를 만들 때는 정권을 잡아 책임 있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어야지 오로지 정권에 반대하고 흔들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참여하는 대연정 이라면 한나라당이 응할리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연정 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야당도 함께 참여하는 대연정이 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 연정은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이라야 성립이 가능할 것이다.
이 제안은 두 차례의 권력이양을 포함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이다. 권력을 이양하는 대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다.
어떤 선거제도이든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합의만 이뤄지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구성하고 그 연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하고 선거법은 여야가 힘을 합해 만들면 된다.
지역구도 해결없이 우리 정치의 여러가지 고질은 해소되기 어렵고, 정치발전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와 나라의 장래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로 반드시 치워야 한다.
이 일을 하자면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지역주의 극복은 저의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정권을 내 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있는 일이다. 한나라당도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 결단해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나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기대어 한국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을 수는 없다.
수권정당이 되기를 원하는 정당이라면 지역당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큰 결단이 있어야 한다. 결코 무슨 이익을 취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권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어떤 속임수도 없다. 한나라당이 정권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비정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지금도 기회있을 때마다 나라가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얼른 국정을 인수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정당은 정권을 잡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기회가 오면 당연히 정권을 맡아야 한다. 많은 나라에서 선거로만 정권을 잡는 것은 아니다. 선거로 국회의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연정을 구성해 정권을 잡는다.
연정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기피할 이유가 없다. 양당이 걸어온 역사와 노선이 서로 달라 연정을 하기가 부자연스럽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목표와 가치를 위해 그만한 차이는 뛰어 넘어야 한다. 실제로 양당의 구성을 보면 그 내부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어 실제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오히려 연정을 맺고 합동의총에서 정책토론을 하게 되면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당을 넘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고 지금보다 소신과 노선에 따른 자유로운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도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설득하고 점차 국민들의 이해가 넓어지면 결국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통로로 다양한 방법으로 대화를 제의할 수 있을 것이다.
민생이 어려운데 웬 정치구조 이야기냐는 비난이 있다. 이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다. 정치가 잘 돼야 경제도 잘 될 수 있다. 정치가 잘 되려면 정치제도도 잘 돼야한다. 그 정치제도를 고치고 바로잡자는 것이다. 저는 경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정치 이야기를 좀 하더라도 민생과 경제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정권후반기에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정비하고자 한다. 정치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개선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다. 초헌법적 또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헌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 헌법은 단순한 대통령제 헌법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합의가 되면 헌법에 위배됨이 없이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국민이 만들어 준 권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정치적 비판도 있다. 그렇지 않다. 우리 정치와 미국 정치는 아주 다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뿐 정당이 정권을 잡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생각해 당정협의도 하고 여야가 일사불란하게 행동통일을 한다. 마치 정권이 내각제처럼 운영되고 있다. 과거처럼 대통령이 당을 완전히 장악, 지배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당을 지배할 수가 없게 된 현실에서는 당정간에 주도권 다툼이 있게 된다. 그동안 이 모순을 관리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당정분리를 엄격히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위임하고 총리로 하여금 원활한 당정협의를 통하여 당정일체를 이뤄가도록 했다.
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력을 이양, 당을 정권의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는 국정운영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각기 다른 선거로 선출되는 국회와 대통령간 권력의 이원화와 그에 따른 정통성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적절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유연한 정권운용의 필요성은 여소야대 국회 하에서 야당이 연합해 대통령이 지명하는 총리를 반대하고 스스로 총리 지명권을 행사하려고 할 때 극명하게 나타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우리정치제도와 변화하는 정치현실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거쳐 나온 결론이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 지역구도 극복은 언젠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다.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명령이다.3당 합당으로 헝클어진 정치질서를 복원해야 한다. 여소야대 문제도 응급조치나 미봉책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열린우리당 부터 결단을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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