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위기

국가보훈처가 33주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식순에 넣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데 이어 5·18 관련 공모전 수상작 교체요청에 나섬에 따라 각계의 반발과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식에 배제
서울보훈청, ‘5·18 수상작’ 교체 요구
“표현의 자유 음성적으로 억압하는 것”
5·18민주화운동은 5·18특별법에 의하여 1997년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그 후 지난 30여 년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제창됐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잃은 무고한 시민들의 5·18정신을 기념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하고 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 5·18기념식에 참석한 후 4년 간 한 번도 기념식을 찾지 않았다. 심지어 기념식에서 ‘대통령 기념사’를 총리가 대독하던 것마저 없앴다.
또한 국가보훈처는 지난 2009년과 2010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공식행사에서 제외하고 식전행사에 배치했고 2011년과 2012년에는 제창이 아닌 연주나 합창단 공연으로 대체했다. 이에 5·18 관련 단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식순에서 배제된 것에 항의해 지난 30주년 기념식에서 국가보훈처와 5월 관련 단체가 기념식을 각각 따로 치르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광주지방합동청사에서 5·18 기념식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포함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년과 같이 하는 것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공식 식순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지난 5일 열린 ‘5·18 대체 기념곡 제정 반대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강운태 광주시장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공식 식순에 포함되어야 하며 5·18기념식 공식노래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보훈처가 추진하려는 새로운 5월의 노래 제정에는 반대한다며 의견을 모았다.
5월 관련단체는 국가보훈처장 자진사퇴운동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을 위한 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한편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고(故) 윤상원 열사와 1979년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곡이 만들어진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을 상징하는 노래로 각종 기념식 등에서 불려졌다.
보훈청, 시민들이 피흘리는 장면 문제 삼아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 움직임에 발맞쳐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이하 5·18 서울사업회)가 주관하는 청소년 공모전 수상작을 서울지방보훈청이 교체를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5·18 서울사업회에 따르면 서울지방 보훈청은 올해 3월 초 이례적으로 서울지방보훈청장상의 상장 수를 9장에서 3장으로 축소하라고 요구했다. 5·18 서울사업회는 ‘5・18기념 제9회 서울청소년대회’ 최종 심사를 마친 후 상장 발급 업무를 위해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 사본을 서울지방보훈청에 보냈다. 이에 서울지방보훈청은 담당 주무팀장을 통해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 2편에 대한 교체를 요구했다.
보훈청이 교체를 요구한 작품은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 1점과 중학생이 쓴 시 1점이다.
보훈청은 군인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는 모습과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을 거론하며 ‘5·18 정신에 어긋난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5·18 서울사업회는 서울지방보훈청이 지난해에도 초등학생의 수상작 ‘29만원 할아버지’를 문제 삼은 것에 이어 올해도 본연의 의무에 역행하는 처사를 다시 범했다고 반발했다.
서울사업회 관계자는 “수상작 교체 요구는 독재정권의 사전 검열에 준하는 소행”이라며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음성적인 억압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5·18 서울사업회가 주관하는 청소년 공모전은 지난해 청소년 공모전 수상작으로 뽑힌 ‘29만원 할아버지’로 화제를 낳았다. 그 시는 서울의 한 초등학생이 쓴 작품으로 ‘29만원밖에 없다면서 큰 집에 사는 이유가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 끔찍한 사실들을 알게 됐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라’는 내용이다. 그 시가 발표되고 당시 네티즌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이 같은 보훈처의 행태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가보훈처 박승춘 처장의 전력을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朴, 5.18기념식 참석 여부 불투명
박 처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전국을 돌면서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비난하는 강연을 수십 차례 했던 인물이다. 육사 27기 출신으로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사건과 관련해 당시 북측과의 교신 내용을 일부 언론에 흘려 기무사 조사를 받던 도중, 군복을 벗었다. 2011년 3월 국가보훈처장에 발탁됐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이례적으로 유임됐다.
박승춘 처장은 12·12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해 구설수에 오른 전력이 많아 일각의 문제제기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 씨의 국립현충원 안장 심의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또한 전두환 대통령이 황제골프를 즐긴 사실로 도마 위에 올랐던 골프장도 보훈처 소관 골프장인 ‘88컨트리클럽’이었다.
박 처장을 유임시켰던 박근혜 대통령의 5·18기념식 참석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광주시는 지난 달 청와대에 대통령의 5·18기념식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지난 달 3일 열렸던 ‘제주4·3사건 위령제'에 불참했던 박 대통령의 5·18기념식 참석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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