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이 가져다 준 비극, ‘돈의 배신’
복권이 가져다 준 비극, ‘돈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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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좇았는데 불행이 떨어졌다”

“아~ 로또 당첨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사고 싶었던 것들도 다 사고, 일도 그만두고 놀러갈 텐데….” 한 번쯤 이런 말을 해봤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푼 두푼 모으자니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자연스레 일확천금을 실현할 수 있는 복권에 눈길이 간다. 너도나도 “아저씨, 로또 5000원치만요”를 외치는 이유다. 복권에 당첨되면 행복해지기 때문일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복권이 가져다 준 비극을 살펴봤다.

 

사랑했던 연인이 법정에 서는가하면
생활고 못 이겨 목숨 버리기도
복권당첨 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지인의 집 근처 7곳에 불을 지르면…미신만 믿고….” 1일 황당무계한 소식이 들려왔다. 며느리가 시댁 마당과 화단 등 7곳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는 이야기였다. 시댁과의 불화 때문이었을까. 아니었다. “로또복권에 당첨되기 위해서.” 며느리가 밝힌 방화 이유다.

조사결과 며느리는 큰 씀씀이로 결혼 2년 만에 1억원의 빚을 진 것으로 전해졌다.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며느리가 택한 방법은 로또복권. 평소 로또복권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꿔왔다고 한다. 그러다 한 방송에서 나온 미신을 듣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돈만 있으면…”

이전에도 복권당첨과 관련된 사건은 많았다. 연인이 결별 후 복권당첨금을 두고 얼굴을 붉히는가하면, 동고동락한 동료가 당첨된 로또복권을 들고 도망쳐 사이가 멀어진 일이 있었다. 먼저 결별한 연인이 법정다툼을 벌이게 된 일화에 대해서다.

1년 전만해도 A씨(남)와 B씨는 사랑하는 사이였다. 둘이 사이좋게 긁은 즉석복권이 1등에 당첨돼 5억원을 품에 넣었을 때는 이별을 생각지 못했다. 복권당첨금도 ‘우리’의 것이었다. 한 사람이 복권당첨금을 온전히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복권당첨금을 A씨 어머니에게 맡겼다.

4개월 뒤 이들은 안녕을 고했다. 헤어지니 ‘우리’가 아닌 ‘남’이 가지고 있는 복권당첨금이 문제가 됐다. B씨는 복권당첨금에 대한 권리를 외쳤다. 이때까지 B씨가 A씨로부터 받은 돈은 1천500만원에 불과했다. A씨는 “줄 수 없다”고 맞섰고 B씨는 경찰서를 찾아 A씨에 대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다음은 동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C씨와 D씨는 건설현장에서 동고동락하는 사이였다. 사건은 C씨가 구입한 로또복권이 2등에 당첨되면서 시작됐다. 경찰에 따르면 인터넷 도박과 경마 등으로 빚을 진 D씨는 C씨가 로또복권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훔치기로 결심했다.

이에 D씨는 새벽 시간대에 C씨의 로또복권을 가지고 서울로 달아났고, 복권당첨금 4천200만원까지 대신 수령해 자신의 빚 3천만원을 갚은 것으로 전해졌다. 숙식을 함께하며 정을 쌓은 동료였건만 돈 앞에서 철천지원수가 돼버린 것이다.

복권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사건도 종종 일어났다. 올해 초에는 한 남성(E씨)이 아파트 23층서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조사결과 E씨는 홀로 지하원룸에서 살면서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복권 1등에 당첨되면 살고 1등이 안되면 죽겠다”는 내용이 담긴 수첩이 E씨의 집에서 발견됐다. 복권 1등에 당첨되지 못한 것을 비관한 자살이었다.

지난해에는 복권 1등에 당첨됐던 한 남성(F씨)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F씨가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됐던 때는 2008년이었다. 복권당첨금으로 23억원을 받은 뒤 F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에 나섰다. 주식, 도박에도 손을 댔다.

그러나 F씨의 뜻대로 세상은 흘러가지 않았다. 주식과 도박에서 실패하고 수차례 사기를 당하면서 복권당첨금을 허공에 날렸다. 수천만원의 빚까지 졌다. 가정불화가 심해지면서 이혼도 했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던 F씨는 결국 목욕탕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복권당첨은 곧 행복?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의 ‘복권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천2명 중 55.2%가 지난 1년 동안 복권을 구입한 경험이 있었다. 평균 구입횟수는 전자복권이 15.2회로 가장 많았고 로또복권(14.7회), 즉석복권(7.1회), 연금복권(7.0회) 순이었다.

1달에 1번 미만 복권을 구입한다는 사람이 응답자의 45.6%로 가장 많았으나 매주 구입한다는 사람도 18.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당 평균 구입금액은 로또복권이 7449원, 연금복권과 즉석복권이 각각 6618원과 5496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적지 않은 돈을 복권구입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복권을 구입하는 이유는 뭘까. 서울중독심리연구소 김형근 소장은 <MBC이코노미>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높게 쳐주는 것이 돈”이라며 “능력만으로는 원하는 위치나 결과를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빠른 시간 내 노력 없이 얻으려는 마인드로 바뀌고 있다. 가장 빠르고 노력 없이 얻는 것 중에 복권만한 게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복권당첨이 절대적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복권당첨으로 일확천금을 얻은 사람들 중 90%가 불행해졌다고 한다. 이는 복권당첨 5년 만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자살한 F씨의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행복을 안겨줄 것이라 기대했던 당첨복권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된 셈이다.

심리학자 카메론 앤더슨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처음에는 행복해하지만 곧 행복은 당첨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온다”고 말했고, 심리학자 알듀안은 “복권을 통해 많은 돈을 얻게 되면 그만큼 많은 돈을 쓴다. 그 후에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써야만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지적했다.

길을 지나가다 돈을 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한턱 쏠게” 하고 말한다. 그 상황에서 ‘저축할거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만큼 횡재했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로또도 마찬가지다. 쉽게 얻은 돈이기에 아까울 리 없다. 우리가 돈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노력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복권당첨이 진정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지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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