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 거부 이후 여야, 막나가는 막말경쟁
개·돼지 등장, ‘금도'넘은 저질 논평 위험수위
정치인의 말이라는 것은 때와 장소를 분명 가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무게있는 얘기든 아니면 한마디 조크든. 지난달 손학규 경기지사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경포대', 즉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는 준비해온 조크를 던졌다가 여당은 물론 강릉지역의 거센 항의를 받은적이 있다. 정치인의 말은 반향이 큰만큼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 최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구상을 둘러싼 논평을 내면서 '서당개'라든가 '집돼지' 같은 무책임한 막말이 오가는 등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먼저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3년째 집권하면서도 국민 가려운 곳 하나 못 찾는 사람들에게 기대한다는 게 얼마나 무리인지 새삼 절망한다”고 개탄했다. 이 부대변인 또 “도깨비가 무식하면 부적을 붙여도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니…”라며 노무현 정권이 민생을 외면하고 연정만 강요한다는 비판이다. 반면 우리당 이규의 부대변인은 “유신공주 박 대표는 사탕발림 정치에만 시종일관 몰두해 왔다”고 박 대표의 연정 거부를 비난한 뒤, “한나라당과 사탕공주 박 대표는 국민의 심판이 준엄할 것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대변인은 또 "집돼지도 팔년이면 말귀를 알아듣는데, 당명바꾼 한나라당은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모른채 극심한 과로성 민생구호 외치기로 일관하는 치매에 빠진 것 같다"고 맞받아 치는 등 원내 1당과 2당의 공당 대변인실이 막말·저질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연정제안에 한나라당이 즉각 거부로 맞서자 두 정당간의 ‘막말논평’에 개와 돼지가 등장하는 이전투구 수준을 보이고 있다. 양당 지도부의 인식도 상대측을 수준 이하로 비하하는 대변인실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의 거듭된 ‘퇴짜’에 애가 탄 우리당 지도부는 막말경쟁’을 오히려 부추기는 인상이다. 지난3일 우리당 논평은 ‘집돼지도 팔년이면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제목에 ‘고장난 폭주 기관차 한나라당과 사탕공주’라는 부제에서 보더라도 집권정당의 문구로는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여당의 이런 거친 성명은 2일 한나라당의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라는 논평에 발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당, 집돼지도 팔년이면 말귀를 알아듣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발언을 계기로 '구애자'의 처지에 섰던 우리당은 박 대표의 ‘대연정 거부’ 기자회견 이후 “아무리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학동”(유시민 상임중앙위원), “당내 건전한 정치인의 목소리조차 유신공주의 치마폭으로 싸매 버리려는 무책임한 것”(전병헌 대변인), “한나라당은 여전히 지역주의 집착당의 모습을 버리지 못했다”(장영달 상임중앙위원) 등 독설을 쏟아냈다. 지난 1일 우리당 지도부가 쏟아낸 말이다. 회의가 진행되던 중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대통령이 나눠주는 권력은 받지 않겠다"며 '연정거부'를 공식 선언한데 대한 반응이다.
우리당은 이날 논평에서 “끊임없이 정치와 민생을 분리시켜 국민을 미혹시키고 대안 제시는 없는 민생 구호만 공허하게 외쳐대는 한나라당과 유신공주 박 대표는 참으로 속 보이는 정치, 사탕발림 정치, 꼼수정치에만 시종일관 몰두해왔다”며 “아예 경제와 민생은 골프치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외면해 버리고, 정치개혁은 폭탄주 마시다 취해서 던져 버리고는 술이 깨면 목이 마르니까 시원한 생수같은 민생만 찾는 한나라당이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연정 제안에 대하여 무슨 말인지 알리가 없는 것”이라고 연정제안 거부에 대한 격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논평은 또 “망국적 지역감정에 의해 만들어진 고착화된 지역구도로 생계를 유지해 온 한나라당이 지나친 음주와 극심한 과로성 민생구호 외치기로 치매에 걸린 것”이라고 거친 표현을 이어갔다.
우리당은 “도깨비가 치매에 걸린 지역주의 사범이면 영험하다는 방망이조차도 효염이 없다”고 비난의 강도를 높인 후 “말로만 떠드는 민생, 그럴듯하게 외치면 되는 줄 알고 국민을 현혹시키는 감언이설(甘言利說)과 지역주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는 몽니를 부리는 고장난 폭주 기관차 한나라당과 사탕공주 박 대표는 국민의 심판이 준엄할 것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박 대표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마무리했다. 지난3일 우리당 논평은 ‘집돼지도 팔년이면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제목에 ‘고장난 폭주 기관차 한나라당과 사탕공주’라는 부제에서 보더라도 집권정당의 문구로는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나라,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한나라당은 2일 논평에서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집권을 3년째하고 있으면서도 국민 가려운 곳 하나 못 찾고 시정잡배들 수준의 입버릇하나 못 고치는 천박성이 몸에 벤 사람들에게 그 이상을 기대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리인지 세삼 절망한다”고 여권의 수권능력을 비난했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여당의 연정강요는 거의 폭력에 가깝다”며 “경제 회생과 민생 정치에 여념이 없는 야당에 대해 대통령 권한 이양 제의를 안 받는다고 여당 의원들을 총 동원해 폭언을 쏟아 붓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 부대변인은 “노무현 정권은 줄곧 경제회생, 민생안정은 아예 외면해 버리고 시종일관 도박 정치에만 몰두해 왔다”며 “국민들은 재보선에서 23 대 0의 치욕도 안기고 국민 10중 7명은 잘못한다는 여론조사도 나왔으나 노 대통령도 여당도 국민의 뜻을 전혀 못 읽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깨비가 무식하면 부적도 안 통한다던데 그 격”이라고 비난했다.
이 부대변인은 또 “여론조사에 후보직 걸고, 재신임에 대통령직 걸고, 불법선거자금에 정치생명 걸고, 불법선거운동에 탄핵 걸고, 선거구제에 대통령 권한을 건 도박정치 좋아하는 노 대통령도 도박정치 때문에 큰 일 당할까 걱정”이라며 “그토록 흉내내고 싶어하는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국민투표 자주 붙이다가 국민투표 때문에 사임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여당은 불씨 지피고…한나라는 쐐기박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대연정 거부 선언에도 불구하고 연정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날 박 대표의 거부 선언에 강도 높은 독설을 쏟아냈던 우리당 지도부는 2일에도 야당을 향해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국회의 책무”라며 연정 논의 동참을 촉구하는 등 ‘연정 불씨 살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문희상 의장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연정 제안은 정당 간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국민이라는 푸른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블루오션(blue ocean) 정치”라며 한나라당의 호응을 촉구했다.
정세균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정치선진화와 사회발전을 위해 (여권이)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데 한나라당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한 것은 기득권을 안 내놓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 역정을 살아온 분"이라며 "국민의 오랜 바람과 여망을 해결하는 게 국회의 책무이기 때문에 야당의 호응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 염동연 의원은 대연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호남지역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병헌 대변인도 "민생을 방패 삼아 지역주의란 껍질 속에 안주하려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매우 비겁하다"며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가 계속 연정 제안을 외면한다면 국민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양심적 정치권으로부터 왕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단호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과는 별도로 연정 제안에 대한 반발 기류도 여전해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탈당까지 언급하며 강력히 반발한 신중식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에 출연, "야 3당이 거부했는데 끊임없이 당에서 연정문제를 거론하는 건 잘못됐다"며 "연정을 철회하고 선거구제 개편이나 권력구조 개편을 통한 개헌 논의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당의장을 지낸 신기남 국회 정보위원장도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 위원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칼럼에서 "우리당은 연정을 하지 않아도 국정을 주도할 수 있는 충분한 의석을 가지고 있다"며 "라이벌 정당끼리의 연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해소방안으로 제시한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도 "지역주의 완화에 도움은 될 수 있지만 해결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연일 “여당의 연정제의는 폭력”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이라며 연정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박근혜 대표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단호히 거부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나눠주는 권력은 결코 국민이 부여한 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받을 의사가 조금도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와,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헌법 제66조를 읽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는“선거법 하나를 개정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력까지 내놓겠다는 것은 헌법 파괴적인 생각”이라며“정권을 교체할 권리는 오직 국민에게만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대통령이 중요한 국사는 제쳐놓고 장문의 편지까지 쓰면서 5번씩이나 연정을 말했기 때문에 (이를)검토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연정이 아니라 민생”이라며“국민이 선택해줄 때까지 야당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연정하면 전체 국회 의석의 91%를 갖게 된다”며 “이것이 1당 독재와 다를 게 뭐냐”고 지적했다. 또 “노 대통령이‘여소야대’를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국민의 뜻”이라며 “여소야대를 탓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능과 무책임을 자백하는 것에 불과하며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발상”이라고도 했다.
김무성 사무총장도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정치게임의 공론화로 야당을 자극해 정쟁을 부추기지 말고 민생에 전념하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김대업의 정치공작 사건으로 탄생한 노 정권은 정치게임을 통해 집권하고 유지한 정권이라는 불명예로 기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무성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국민들이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정치술수라며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2003년 재신임’ 정치 게임을 한 노 대통령에 대한 학습효과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대통령 지지율이 최악의 상태에서 제안을 했다 ▲국정운영이 총체적 난국인 상태이다 ▲일종의 정치 승부수를 띄운 후 공론화를 유도하고 있다 ▲헌법학자들이 등장한다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노 대통령 특유의 정치수법인 편지가 등장한다 ▲여론이 우세하다고 판단되면 이슈는 확산되고 본래의 취지는 없어진다 ▲꼭 그 다음에 전국단위의 큰 선거가 있다는 8가지 점을 "2003년 재신임과 대연정의 공통점 또는 유사점"이라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여권은 앞으로 연정 공론화를 위해 끊임없이 정쟁을 부추겨 정국 혼란을 유도한 뒤 정국 안정의 방법으로 연정의 당위성을 인정받으려 시도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민생은 안 챙기고 정치게임에만 집착하면 국민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그토록 흉내내고 싶어하는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국민투표 좋아하다 결국 그 때문에 사임했다"며 "선거구제에 대통령 권한을 건 노 대통령도 도박정치 때문에 큰일을 당할까 걱정"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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