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 폐지…돈 버는 법만 가르치는 ‘얼’빠진 대학
국문과 폐지…돈 버는 법만 가르치는 ‘얼’빠진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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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원 예산 잣대 ‘취업률’ 인문학 목 조여

▲ 세종대왕의 눈물 누가 닦으리
배재대 국문학도 ‘낙동강 오리알’

“취업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국문과를 폐지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시민들은 “세종대왕이 하늘에서 경을 치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참에 역사학과도 없애라며, 국어ㆍ역사 등 우리 것을 등한시 하는 얼빠진 대학의 풍토에 공분을 표했다.

지난 8일 배재대학교가 국문과 폐지 논란의 불씨를 댕겼다. 배재대는 8일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어학과’를 ‘한국어문학과’로 통폐합했다. 내년부터 사실상 국문학과가 사라지는 것이다.

배재대학교의 전신은 배재학당이다. 배재학당은 한글 연구의 개척자 주시경과 민족시인 김소월을 배출한 근대 국어사의 핵심교육 기관이다. 단과대 이름까지 ‘주시경대학’, ‘김소월대학’으로 붙여 쓰고 있을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국문과 폐지 사태의 심각성을 통감한 몇몇 배재대 국문과 학생들은 지난 6일부터 “학과 구조조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며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중인 학생은 “학과 통폐합에 관한 내용을 학생들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국문과가 없어지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황당해했다. 심지어 13학번인 올 신입생 김씨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입학했다며 “학과 정체성마저 잃게 생겼다”고 말했다.

배재대 국문학과 졸업생들도 성명을 내고 “국어국문학은 배재학당 설립 초기부터 핵심 과목이었고, 소설가 나도향 등을 배출한 밑거름이 됐다”면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과와 합치는 것은 인문학의 기초인 국문과를 족보에서 지우겠다는 발상이다. 대학이 돈의 논리에 빠져 스스로 교육 사망 선언을 했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배재대 측은 “국문과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학교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문과 졸업을 원하는 재학생을 위해 교육과정을 정상 운영하고 학과를 옮기는 것을 원하면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문학과 폐지 논란이 확산되자 배재대학 관계자는 트위터를 통해 재차 해명했다. “통폐합은 우리말과 글, 문학을 제대로 배운 인재들을 배출해, 세계로 전파하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결코 국문학과를 없애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돈 안 되는 학문은 버려라
설령 우리의 뿌리일지라도…

배재대 국문학과는 1885년 배재학당 설립 당시부터 이어져왔다. 지금도 신춘문예 당선자를 수없이 배출하며 한국문학을 살찌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이 학교의 자부심인 국문과를 폐지하게끔 만들었을까?

그 원흉은 정부의 방침에 있다. 교육부는 ‘취업률’을 앞세워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하고 예산을 지급한다. 쉽게 말해 취업률이 낮은 대학은 ‘부실대학’으로 지정되고 정부의 재정지원이 막힌다. 따라서 자연히 국문과가 ‘부실대학’ 탈피를 위한 희생양이 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대학평가를 내세워 예산을 차별 지급하는 교육부의 방침이 국문학의 목을 조이고 있다.

‘취업률 경쟁’ 논리로 인해 국문과가 대학에서 폐지되거나 통폐합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충남 논산 건양대는 수년전 국문과를 폐지했다. 지난 2006년 광운대학교에서는 국문과 폐지 논란이 일었다. 

2011년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됐던 충북 청주 서원대도 지난해 국문과를 다른 학과와 통폐합했다. 지난 8일 국문과를 통폐합한 배재대도 2011년부터 정부의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지정된 바 있다.

요즘 신설되는 몇몇 대학들은 국문학과를 아예 만들지 않고 있다. 단순히 취업 논리로 순수인문학인 국문과를 저울질 하는 대학에 권위를 부여해 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든다. 가뜩이나 교육이 왜곡되고 있어 우리의 뿌리가 흔들리는 마당에 지성의 강단인 대학이 책임감을 느끼기 보다는 ‘취업인’을 배출해 돈 벌 궁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사회 유력인사들도 속이 쓰리긴 매한가지다.

안도현 시인은 9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취업과 거리가 멀어 ‘굶는과’로 불리던 시절에도 국문과 폐지는 꿈도 꾸지 않았다”며 “교육부의 대학 줄 세우기가 미친 짓을 넘어 대학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서울대 조국 교수도 트위터에 “여러 대학에서 취업률 낮다고 국문과 폐지. 그래, 그 참에 국사학과도 폐지해라. 100년 후, 아니 50년 후 무슨 꼴이 일어날지 모르는가!”라며 한탄했다.

전 세계 인구의 0.25%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이지만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민족이 바로 유대인이다. 2천년 세월 동안 흩어져 살며 이러한 영광의 역사를 이룩한 힘은 무엇인가? 바로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지킨 교육의 힘이다.

반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이유, 원리 등이 알려진 문자 '한글'을 보유했지만 ‘취업 경쟁’에 밀려 대학에서조차 퇴출당하고 있다. 역사는 중·고등학교 1년에 몰아 배우는 ‘수박 겉핥기’식의 과목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 땅에서 우리의 뿌리인 언어와 역사를 공부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 아닐까. 언어와 역사를 잃으면 민족도 결국 사라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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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하 2013-05-10 14:40:21
도대체 이 나라 교육 정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역사는 되풀이된다. 우리가 100년 뒤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지 말라는 법 있나? 내 나라 문화와 언어와 역사와 학문을 소홀히 한 결과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불 보듯 뻔하구나!

zzzz 2013-05-10 19:05:49
대학이 얼빠진거냐???다양한 학과를 수용안해주는 기업하고 국가정책이 얼빠진거지..ㅈㅈ..

kkk 2013-05-12 08:17:50
얼빠진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