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학부모도 ‘을’이다?
어린이집 학부모도 ‘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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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의 甲甲한 현실과 또 다른 ‘乙’들의 이야기

지난달 부산 어린이집에서 18개월 여아의 등에 피멍이든 사건이 벌어진 후 어린이집에 질타가 쏟아졌다. 어린이집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익히 알려진 어린이집 국고보조금 횡령에서 부터 내부문제를 고발한 보육교사와 학부모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태까지 횡횡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의 만용을 담았다.

 
▲ 어린이날을 맞은 5일 오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육영재단 주최로 열린 2013대한민국어린이축제 푸른꿈 탐험대 발대식.(사진은 기사와 무관)
 
블랙리스트 만들어 보육교사 취업길 막아
문제제기 학부모 블랙컨슈머라며 등록거부
어린이집 법안 낙선운동협박에 국회의원 굴복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5살 남자아이를 둔 직장인 엄 모(35)씨는 스승의 날을 보낸 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득이나 돈 쓸 일이 많은 5월인데 스승의 날을 겪으며 보육교사에게 보내는 선물로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엄모씨는 지난 15일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서 부산 어린이집 폭행사건이 떠올라 보육교사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심정이 들었다. 또래 엄마들도 비슷한 생각임을 확인하고 보육교사에게 고가의 선물을 했다.
어린이집 교사에게 고가의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엄모씨는 어린이집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말 못하는 아이가 하소연을 할 수도 없어 결국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기관에서 값비싼 금품이 오가는 경우 처벌할 수 있다는 현행 법규에 어린이집이 빠져 있는 점도 잘못된 관행을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특별활동비 보육료의 절반
 
엄씨의 증언에 따르면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하는 직장맘의 경우 어린이집에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특별활동비가 과다책정된 것을 알았지만 따질 수도 없다고 했다. 특별활동이란 어린이집 원장이나 보육교사가 아닌 외부강사가 보육프로그램 이외의 활동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어린이집 이용에 따른 월평균 부담 가운데 특별활동비로 인한 부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비싸면 참여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는 질문에 특별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아동들이 없다며 참여하지 않는 아이는 방치될 수 있다는 답변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들의 부담이 영유아 보육료 지원 확대 정책에 따라 줄었지만 특별활동비가 보육료의 절반에 육박해 보육정책 체감 만족도는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보건복지부가 9일 공개한 ‘2012 보육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유아 가운데 66.5%가 평균 3.2개씩 특별활동을 하고 있었다. 종류는 영어(74.4%), 체육(67.2%), 음악(48.2%), 미술(40.9%) 순이었다. 문제는 어린이집 이용에 따른 월평균 부담 가운데 특별활동비로 인한 부담이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엄 씨가 저자세로 어린이집의 방침을 따르는 것은 최근 학부모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위축된 것도 한몫을 했다.
학부모 블랙리스트란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고발할 경우 그 리스트를 어린이집 원장들이 공유하며 어린이집에 등록할 수 없게 한다는 내용이다.
 
학부모 블랙리스트
 
삼성동에 살고 있는 4세 여자아이를 둔 박 모(37)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고 했다. 박 모씨는 가정통신문에 교육비를 현금으로만 결제하라고 했지만 설마하는 심정으로 카드결제를 하겠다고 따지자 어린이집 원장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며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다른 어린이집에서 박모씨를 받아주지 않았던 것. 알고 보니 어린이집 원장들이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며 다른 어린이집에서도 박모씨의 아이의 등록을 거부했던 것이다.
보육교사의 처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어린이집 비리고발 및 상담센터장 김호연씨는 보육교사들이 내부 고발, 공익제보를 위해서 제보를 하게 되면 이것들이 원장, 시설장들의 연합회쪽에서 블랙리스트를 돌린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 센터장은 부모 부담으로 유기농 음식을 하겠다는 원장의 말에 동의를 했는데 알고 보니 유기농이 아닌 사실을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를 블랙컨슈머라고 오도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내보낸 사건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물론 그 학부모는 다른 어린이집에도 등록을 거부당했다. 이 또한 어린이집 원장이 명단이 다른 어린이집 원장들과 공유된 탓이다.
 
어린이집 의 만용
 
어린이집의 보육실태에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새누리당 소속 의원 13명은 지난 달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발의했다. 개정안이 발의되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등은 법안 철회를 위해 행동지침을 만드는 등 집단행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다. 법안을 공동발의한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을 방문해 항의하는가 하면,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었다.
법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 “지역구에서 우리 힘을 무시하다간 큰코 다친다고 협박했다.
결국 이 법안은 철회됐다. 개정법안을 공동발의한 의원 13명 중 몇 명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집단 항의와 협박에 발의자 명단에서 빠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회법상 공동발의된 법안은 발의자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법안 자체가 철회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어린이집 폭행사건으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학부모의 불만이 고조됐다. 여론은 국민의 대표인 의원이 표앞에 굴복해 공공복리를 외면했다며 비난이 들끓었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 목적에서 내부 비리를 고발한 보육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돌리는 일부 어린이집 원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강력하게 단속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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