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5일 사의를 표했다. 신 회장은 “농협금융이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보다 유능한 인사가 농협금융 회장직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사의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 회장은 사퇴발표 후 언론을 통해 “농협 지배구조로 봤을 때 농협금융의 경영은 자유롭지 못했다”, “농협금융 회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경영전략·인사·예산 등 모든 부문에서 농협중앙회와 충돌을 겪었다” 등 발언을 쏟아냈다.
사퇴발표 후 열린 임원회의에서도 신 회장은 “농협금융의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와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었다”,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이 막강했다” 등의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협금융 경영전반에 대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입김이 상당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이었다.
농협은 1중앙회 2지주회사 체제로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은행·보험·증권 등)와 경제지주(농산물) 위 군림하는 구조다. 지분구조 상으로도 이들은 수직적 관계에 놓여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의 운신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더 있었다. 금융지주회사법과 농협법의 충돌이 그것이다.
신 회장은 “금융지주회사법에는 대주주의 경영관여를 금지하는데, 농협법에는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의 자회사·손자회사까지도 지도·감독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며 “농협법은 대주주를 왕처럼 만들어 놨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갈공명이 와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금융지주사 회장의 성과평가는 이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농협금융은 ‘농협’이라는 특수한 태생 덕분에 농협법 적용을 함께 받아야했다. 이는 신 회장의 성과평가를 최 회장이 의장인 중앙이사회 내 평가보상위원회에서 담당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농협법이 중앙회장의 막강파워를 지원하는 근거가 된 셈이다.
물론 신 회장이 취임 전 농협 지배구조를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 터. 신 회장 취임당시 금융권 안팎에서는 신 회장의 ‘불도저 리더십’을 주목했다. “신 회장의 거침없는 경영스타일이 최 회장과는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였다. 수출입은행장과 은행연합회장을 역임한 신 회장이 최 회장 밑에서 버틸 수 있겠느냐는 시선도 함께였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도 신 회장이 농협금융 회장직을 수락하자 금융권은 “극복가능하다는 자신감이 그만큼 큰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신 회장의 자신감은 1년을 못 갔다. 초대회장이었던 신충식 농협은행장도 취임 후 3개월 만에 사임한 전례가 있어 “농협중앙회 영향력이 생각보다 상당한 것 같다”는 주장이 힘을 받게 됐다.
그러다보니 농협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전문가들은 “금융지주회사법과 농협법의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법을 개정한다면 모든 금융지주사에 적용되는 금융지주회사법보다 농협법을 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법 개정이 없다면 차기회장에 누가 오든지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회사법과 농협법이 일부 충돌할 수는 있지만 충돌은 크지 않다”며 “통념과 관행에 맞게 중앙회가 농협금융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법 개정보다는 농협중앙회의 자발적인 역할축소를 요구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농협중앙회 영향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이때, 최 회장이 내놓는 해결책은 뭘까. 관심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