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하·왜곡 사태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광주민중항쟁 유혈진압의 주범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내란죄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던 가해자 전 전 대통령은 29만원밖에 없다면서 추징금을 미납하고 있다. ‘마른 오징어에서도 기름을 짤 수 있다’는 국세청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검찰은 능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유독 전 전 대통령에게 관대한 것일까?

재산 일부라도 찾으면 시효 3년연장
전두환 추징금 공소시효 5년 연장법 추진
시민단체 “전두환 경호 중단, 부패재산 환수”
우리 동네 사시는 29만원 할아버지/ 아빠랑 듣는 라디오에서는 맨날 29만원밖에 없다고 하시면서/어떻게 그렇게 큰 집에 사세요?/... (중략)/왜 군인들에게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하셨어요?/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 아세요?/할아버지가 벌 받을까 두려워 그 많은 경찰아저씨들이 지켜주는 것인가요?/...(중략)
이 시는 5·18기념 제8회 청소년대회 수상작 ‘29만 원 할아버지’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유승민군 작품으로 화제가 됐다. 속칭 ‘29만원 할아버지’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시금 이름을 올렸다. 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다시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세금체납자 명단에서다.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호화판 생활
전 전 대통령은 지방세 3017만원을 3년째 내지 않아 서울시로부터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 공개 예정 통보를 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사태와 맞물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1672억원이 환수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혈세로 8억에 해당하는 경호를 받고 있으며 전 국민적 의무인 납세의 의무마저 방기하는 태도에 시민의 분노가 모인 탓이다.
이 체납 지방세 3017만원은 전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내지 않아 연희동 집 별채가 법원에 의해 강제 경매에 부쳐지며 발생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부과된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일부만 내 1672억 원이 미납되어 있는 상태다.
그는 2003년 “예금 29만 원이 전 재산”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듬해 숨겨 뒀던 서울 강남의 땅 51평이 발견돼 압류됐다. 이 건물은 처남 이창석씨에게 당시 16억4800만원에 낙찰됐고, 양도소득세 3억1000여만원과 그 10%인 지방세 3017만원이 발생했다. 양도소득세는 전 전 대통령이 ‘돈이 없다’고 해 ‘무재산 결손처분’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방세는 가산금이 붙어 현재 4000여만원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추징금에 지방세까지 낼 돈이 없다는 가난한 전 전 대통령의 호화로운 삶은 수시로 포착됐다. 골프는 물론이고 지난해 6월에는 육군사관학교에 1000만원 이상의 발전기금을 낸 동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전직 경찰관에 따르면 전투경찰이 선호하는 근무지가 서울 서대문경찰서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이다. 이유는 전 전 대통령 가족이 건네주는 ‘용돈’ 때문이다. 또한 전 전 대통령이 즐겨 찾는다는 모 골프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골프장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전 전 대통령이 묵는 방을 서로 청소하겠다고 나서서 순번을 정하기도 한단다. 이 또한 수 십 만원의 통큰 씀씀이 때문이다. 이 같은 전 전 대통령의 골프·해외 여행 등 호화판 생활은 불법재산을 은닉하고 있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부르고 있다.
미납 추징금 시효 10월 만료
19일 대검찰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부과된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검찰이 받아낸 것은 532억7348만4436만원이다. 추징금 2398억여원 가운데 230억여원을 남기고 모두 납부한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심각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장세동(76)씨도 5공화국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부장 재직 때 저질렀던 ‘수지 김(본명 김옥분)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의 손해배상 구상금 6억3000만원을 내지 않고 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로선 미납 추징금의 추징 시효는 올해 10월 만료된다.
이에 따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등 민주화운동 단체들은 전 전 대통령 사저 부근에서 ‘전씨에게 추징금을 환수하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반해 정치권의 발 빠른 대응은 미진한 상태다.
미납 추징금을 징수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특정고위공직자에 대한 추징 특례법안’은 지난해 6월 발의된 뒤 여태껏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미납 추징금을 가족들에게 숨긴 불법 재산에서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법안의 핵심 골자다.
하지만 6월 임시국회에서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공소시효를 5년 연장하는 법안이 추진된다. 이들 두 대통령의 추징금 공소시효가 오는 10월 11일로 만료돼, 사실상 공소시효 연장이 없으면 부패재산 환수가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내지 않을 경우 노역형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영숙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노동위원장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두환, 노태우의 경우 ‘환형노역’(형기를 환산하여 노역형을 사는 것)에 의해 노역형을 가해야 한다”며 “전두환이 추징금 낼 돈이 없으면 노역, 노동으로 변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입법해야 할 것”이라고 입법청원 운동 필요성을 제기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행 추징금 제도는 강제조항이 없어 시효를 악용하고 있다”며 노역형을 시사한 바 있다. 당시 유 의원은 “시공사 사옥, 장남 명의 등 전두환씨 가족들 명의로 한 2천억 정도 재산이 있다”며 “본인은 재산은 없는데 직계 가족들 소유로 이렇게 많은 재산이 있는 데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되었거나 아니면 실제 전두환 씨의 권력이 밑바탕이 되어서 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유 의원은 “노역형에 처하게 되면 가족들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변제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
누리꾼들의 환수요구도 뜨겁다. 트위터 ID metta****는 “검찰에서 신념을 갖고 전두환의 숨겨진 재산을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못찾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전두환 자녀들의 재산 형성과정을 파보면 너무나 쉬울 일이다. 찾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린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추징금 환수에 빠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오는 10월 시효가 만료되는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언론사의 이색적인 움직임도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 신문사는 전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을 찾아내는 ‘크라우드 소싱’을 제안하며 홈페이지에 ‘잊지 말자 전두환 사전 1.0’을 공개했다. 국민들과 함께 전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을 찾아 올 10월로 만료되는 추징시효를 연장시키자는 것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서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요구가 뜨거운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어떤 대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는 대선 토론회에서 전 전 대통령으로 부터 받았다는 6억원의 반납 약속을 박 대통령이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불법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사회정의 실현의 문제이며, 지금 그 책임과 권한은 전적으로 박근혜 정부와 사법당국의 손에 쥐어져 있다. 국민적 요청을 위한 사법당국의 노력에 전국민적 관심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