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중단 권고안 논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법제화를 권고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의 초안이 공개되면서 연명치료 실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안이 제도화될 경우 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여 ‘웰빙(Well-Being)’을 넘어 ‘웰다잉(Well-Dying)’을 고민하기 위해 기획했다.

“매년 임종기 환자 3만여명 연명치료”
무연고자 연명치료 병원이 결정, 논란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인식높아져
2009년 2월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은 병세가 악화되자 인공호흡기와 같은 기계적 치료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런 죽음의 과정을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2009년 환자 김 모 씨의 가족이 세브란스 병원을 상대로 낸 연명 치료 중단 민사 소송에서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공론을 일으켰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고안
연명치료 중지 판결에 의해 촉발된 연명치료 논란의 성과가 가시화 됐다.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 표시가 없어도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권고안 초안이 그것이다.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의 권고안 초안에 따르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악화하는 환자, 즉 의학적으로 임종기(臨終期) 환자에게 실시하는 심폐소생술, 기계 인공호흡,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말한다. 통증 조절이나 영양 공급, 물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 일반 연명의료는 중지할 수 없도록 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원칙적으로는 환자 자신이 뚜렷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관련 절차에 따라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경우에 허용된다.
특별위원회가 권고하는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 방식은 ‘사전의료의향서(AD)’와 ‘연명의료계획서(POLST)’다. 사전의료의향서는 본인이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해 두는 ‘사전 유언(living will)’형식이다. 미국에서는 50개주 가운데 49개 주에서 사람들이 건강할 때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해두는 리빙 윌(Living Will)이 법제화되어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임종이 임박한 중환자와 협의해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해 작성한다.
명시적 의사 표시가 불가능한 환자는 평상시 가치관과 발언을 토대로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 가족 2인이 이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하면 추정 의사를 인정하는 것으로 권고안이 작성됐다.
특별위원회는 더 나아가 법적인 대리인이나 후견인이 없는 무연고자에 대해서는 병원의 윤리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게끔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치료비 등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인 병원에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어서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병원이 자체 구성한 윤리위원회 심의를 요식 절차로 삼아 소생 가능성을 심사숙고하지 않고 행려병자 등 무연고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가족의 동의’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권고안은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해 의료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웰다잉(Well-Dying)이 사회적 화두
의학의 발달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웰빙(Well-Being) 못지않게 아름답고 품위있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체외순환 등 생명유지장치를 주렁주렁 매달면서 여명을 늘리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생명나눔 국민인식도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2.3%가 연명치료 중지에 찬성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의 자료에 의하면 1년에 18만명 정도의 만성질환자가 말기 상태로 사망하는데, 이 중 15만명 정도가 인공호흡기를 거부한다. 또한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거부한 암 환자 비율은 2007년 85.8%에서 2011년 89.5%로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추세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서울아산병원 환자 대상 조사결과는 더욱 분명하다. 내과계 중환자실 환자 중 생명유지장치 사용을 원한다는 대답은 1%에 불과했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과 달리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는 편안한고 익숙한 가정이 아닌 병원으로 변화됐다. 현대사회의 생로병사(生死)가 병원으로 이동하는 천편일률적인 과정을 연출하고 있다.
2011년 사망자 25만7396명 가운데 17만6324명(68.5%)이 병원에서 숨졌다. 병원 이송 중 숨진 사람도 8076명이다. 집에서 숨진 사람은 5만1079명(19.8%)에 불과하다. 1991년에는 죽음의 장소가 대부분 집(74.8%)이었고 병원(15.3%)은 특별한 경우였다. 병원 사망 비율이 20년 전에 비해 반대가 됐다. 이제 죽음은 의료장비 스위치를 끄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으로 의료기술의 발달과 주거문화의 변화가 지목된다. 발달된 의료기술을 믿으며 환자는 각종의료기구에 싸인 채 생을 마무리한다. 또한 주거 문화가 변하면서 핵가족에 아파트 생활자가 급증했고 장례문화가 기업화됐다. 집에 있다가도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으로 옮긴다.
하지만 죽음에 접어들면서 병원이 아닌 가정에서도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 이런 걸 가능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국가차원의 사업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다. 현재 복지부와 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가 주관기관으로 사업을 수행중이다.
사업이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국내 호스피스 완화의료 정착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우리 국민들의 완화의료 이용 의향은 2004년 57.4%에서 2008년 84.6%로 늘었지만, 완화의료 수혜율은 2010년 기준 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차원의 완화의료 사업이 확대되고,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개선과 공감대 형성이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발전하기 위한 토대라는 의견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