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불공정한 관행을 뿌리 뽑겠다던 정부의 첫 표적은 CJ그룹이었다. 이재현 회장 등 CJ오너 일가의 역외탈세 혐의는 박근혜 정부가 기치로 내건 지하경제 양성화에 부합하며 정조준 받고 있다. 검찰은 수백억원대 소득세 탈세를 중심으로 수사력을 집중하는 한편, 비자금이나 편법증여 등 다른 의혹 전반에 대해서도 수사키로 방침을 세웠다. 최근 주력계열사의 실적 부진으로 ‘비상경영’까지 선포한 CJ그룹은 검찰의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총체적 난관에 부딪혔다.
檢 “5년을 공들였다”, 뒷돈 추적해 자금 증식 포착
이재형ㆍ이미경 출국금지, 오너일가 정조준 ‘꼼짝마’
수천억대 ‘비자금’ 수면위로…CJ 분위기는 ‘초상집’

검찰은 이재현 CJ그룹 오너 일가가 해외에서 수십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국내로 들여와 운용한 혐의를 포착,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대진 부장검사)는 21일 오전 7시께 CJ그룹 본사와 경영연구소, CJ인재원 등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CJ 본사와 쌍림동 제일제당센터, 장충동 경영연구소, 임직원 자택 등 5∼6곳에 검사와 수사관 보내 회계장부를 비롯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각종 내부문건 등을 확보했다.
검찰이 임직원의 자택을 압수수색에 포함시킨 점은 이 회장 일가를 정점으로 그룹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해 비자금을 관리해 온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회장 일가가 해외에 위장 계열사를 설립해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내다봤다.
이 회장의 비자금은 CJ가 조세 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서 들여온 70억 가량을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포착하며 꼬리가 잡혔다. 금융정보분석원은 CJ그룹이 해외 법인과 위장 거래해 세금 탈루 작업을 거친 자금을 다시 국내로 반입한 정황을 포착, 지난 2010년 검찰에 통보했다.
CJ그룹 비자금 의혹은 이미 수차례 불거졌었다. 지난 5년 동안 검찰은 CJ그룹의 비자금을 내사했지만 만족스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2008년 이재형 회장의 재산 관리인이자 CJ그룹 전직 재무팀장 이모(44)씨가 살인 청부 혐의 등으로 기소되며 CJ그룹의 비자금의 존재가 세간에 드러났다.
이모씨는 이 회장의 차명자금을 관리하며 조직폭력배 출신 사업가 박모(51)씨에게 230억원을 빌려줬다. 이모씨는 빌려준 돈의 회수가 불투명해 진데다 차명자금의 존재가 알려질 것을 우려해 박모씨에 대한 살인 청부를 시도한 혐의(살인예비 등)로 기소됐다.
1심은 이모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입증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작년 4월 무죄를 선고했다. 이 과정 중 2심 재판부가 “이모씨는 자신이 관리한 CJ그룹의 차명 자금이 수천억원에 이른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고 밝히며 비자금 논란이 확산됐다.
CJ는 이모씨가 관리한 차명 자금은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상속재산이라며 그에 따른 세금 1700억원을 서둘러 자진 납부했다. 이어 2008년 말 국세청 세무조사를 통해 관련 의혹을 모두 정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모씨의 사건으로 드러난 비자금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판단하고 CJ에 대한 내사를 이어 왔다.
검찰은 CJ그룹이 이 회장의 차명 자금을 정리하던 시점에, 해외 비밀 계좌나 유령화사 법인 등을 통해 상당 금액을 빼돌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조세 포탈을 위한 유령회사를 해외에 세워 비자금을 조성하고, 제3자의 명의로 차명계좌를 이용해 빼돌리는 방식은 비자금 관리 및 자금세탁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이모씨 사건 당시 경찰은 이모씨가 이 회장에게 발송한 자료를 따로 보관해 둔 USB 메모리를 찾아냈으며 이 안에 ‘비자금 세탁’ 현황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09년에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과 CJ그룹간의 편법 거래 의혹이 제기돼 수사를 진행했었다. 당시 검찰은 이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세 차례 불러 조사하기도 했지만 검찰은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수사는 유야무야 끝났다.
업계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천 회장이 당시 고려대 교우회장을, 이 회장이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점을 지목하며 정부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사건이 일어나면서 수사는 보류되는 듯 했지만 검찰은 CJ 비자금 의혹에 대해 4년 만에 다시 재수사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단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라며 “이 회장 일가가 개인 자산을 차명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조세 포탈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CJ 비자금 용처는?
검찰은 CJ그룹의 비자금 규모와 조성 경위, 용처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대진 부장검사)는 2008년 이후 CJ그룹의 세무조사 자료를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넘겨받아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와 정밀 대조하며 비자금의 조성 경위와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이 2006년 구입한 무기명 채권 500여억원을 현금으로 바꿔 두 자녀에게 증여한 단서를 잡고 편법 증여 가능성에 주목, 수사를 확대했다.
또 CJ그룹이 화성 동탄 물류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외국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인 것처럼 가장해 500억원의 투자금으로 부지 일부를 매입한 뒤 이보다 높은 금액으로 양도하는 방식으로 300여억원의 차익을 거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다. 검찰이 CJ오너 일가가 그룹과 관련된 핵심 내용을 지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CJ경영연구소를 압수수색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된다.
당시 CJ는 땅 매입을 위해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마르스 피에프브이(PFV)’ 펀드를 참여시켰으며, 검찰은 이 펀드에 해외 비자금이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의 비자금 사용의 증거를 포착한 검찰은 CJ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들어갔다.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 남매,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등 CJ 오너 3남매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고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다.
특히 이번 출국금지 명단에는 이 회장의 재산 관리자였던 전 재무팀장 이모씨를 비롯해 전현ㆍ직 회사 간부들이 포함되어 있어 CJ 비자금의 뿌리까지 척결하겠다는 검찰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