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끝을 보여주는 국정원 정치개입
‘박원순 서울시장 대응 관련 문건’과 ‘반값 등록금에 정부가 책임이 없다’는 문건 등으로 국정원의 정치개입 증거가 광범위하게 드러나자 파장이 크게 번져가고 있다. 이에 ‘국정원의 존재이유가 무엇이냐’며 비난이 들끓고 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전면 수사해 밝히라는 국민들의 요청이 거센 가운데 현 정권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 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항이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입안 실행된 계획’ 주장도
6월 임시국회 쟁점화…박근혜 정부 시험대 예상
“정치공작과 사찰은 헌법의 품격을 모독하는 행위”
최근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대선개입에 대한 여러 정황 등이 속속 들어나며 국정원에 대한 검찰수사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검찰은 국정원의 국내정치·선거개입 의혹, 국정원 직원 내부기밀유출, 경찰 수뇌부 수사 축소·은폐 의혹, 민주당의 국정원 여직원 불법감금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왔었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반값등록금 운동 차단’ 등 정치공작 내용을 담은 국정원 작성 추정 문서까지 공개되면서 수사의 방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박 시장 관련 문건이 국정원 2차장 산하 ‘국익전략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전해지며 국정원이 대북업무를 담당하는 3차장 산하의 ‘심리정보국’ 뿐만 아니라 2차장 산하의 국내파트까지 국내 정치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주고 있다.
민주당은 이들 문서와 관련해 원세훈 전 원장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고소 등 법적조치에 착수했고, 검찰도 현재 진행중인 수사와 같이 이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지난 22일 ‘반값 등록금 차단’,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관련 문건을 작성·보고한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원장 등 국정원 관계자 9명을 추가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고발장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및 선거개입은 위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서부터 국정원장, 제2,3차장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입안되고 실행된 계획의 구체적인 결과”라고 밝혔다. 이번 고발장에는 민병환 전 2차장과 신모 전 국정원 국익전략실장, 반값등록금 문건을 작성한 조모씨와 이를 보고받은 함모씨 등 전·현직 직원이 포함됐다.
민주당은 당초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함께 고발대상에 포함시켰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입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포함시키지 않았고, 다만 고발 이유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묵인 혹인 지시 하에 국정원이 국내정치 개입을 위한 조직을 구축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편, 야권은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국정원 문제를 쟁점화 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의 관련자가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정원의 정치 개입 문제를 전·현직 정권의 공동책임으로 집중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이 어떤 수순을 밟을 것이냐가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시험대로 부상하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도 국정원의 잇따른 국내 정치 개입 의혹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정원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진 각종 의혹을 푸는데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묵살하고 가면 MB정권의 연장선에 있다는 비판에서 박근혜 정부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내부 문서로 확인되면 파장 클 듯
특정부서 넘어 조직적 가능성 제기
공개된 국정원 정치 공작 의혹 문서들의 공통점은 출처가 국내분야를 담당하는 국정원 2차장 산하의 ‘국익전략실’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정보국’의 국내 정치와 선거개입 여부를 조사해 왔다. 하지만 이번 문건이 국정원 내부 문서로 확인되면 원 전 국정원장의 조직적 정치개입지시 의혹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초점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이 일부 특정부서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됐음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전 원장의 지시가 일부 부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정원 조직 전체가 정치와 선거 등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기존의 원 전 원장과 국정원 3차장 그리고 대북심리국으로 진행된 수사라인에 2차장과 국익전략실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이 전체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와 함께 문제는 원 전 원장이 부임한 2009년부터 지난 1월까지 대선에만 정치개입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은 박 시장이 당선된 지 한달여 뒤인 2011년 11월24일 작성된 것이고, ‘반값등록금 운동 차단’ 문건은 반값 등록금 문제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됐던 2011년 6월 1일로 작성 날짜가 기록돼 있어, 상시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데 설득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에서 이런 날짜들은 결국 국정원이 대선 전 뿐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국내 정치적 위기때마다 적극적으로 국내정치에 개입했다는 정황이라는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원 전 원장 취임 이후 전국단위 대형선거가 3차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정원의 조직 및 인적구성 배치를 통한 정치개입은 세 차례의 선거를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며 “특히 박원순 제압문건에 등장한 ‘야세확산의 기반제공’ 등의 문구는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지난 15일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이란 제목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이후 세금급식 확대, 시립대 등록금 대폭 인하 등 좌편향·독선적 시정운영을 통해 민심을 오도하고 국정안정을 저해함은 물론 야세(野勢) 확산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어 면밀한 제어방안 강구가 긴요하다’, ‘(박 시장의)자질·도덕성 문제를 끝까지 추적해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어 지난 19일에는 ‘左派(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이란 제목의 문건도 공개됐다. 이 문건에는 ‘당·정이 협의해 등록금 부담 완화 대책을 마련키로 했음에도 야당과 좌파진영이 등록금=정부책임 구도 부각에 혈안이 돼있다’는 문구가 담겨졌다.
여, 검찰의 철저한 수사 주문
야, 국정원 정치공작에만 올인
여야 정치권은 확산일로에 있는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정원이 정치중립의 의무를 위반해 전반적인 정치개입 활동을 한 것이 의혹의 핵심”이라면서 “국민들은 검찰이 총체적이고 명확한 진실을 그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철저하게 수사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검찰은 국정원이 인터넷사이트에 댓글을 다는 등의 방식으로 대선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물론 수사과정에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행사는 없었는지, 이번에 야당 의원이 제기한 것처럼 또 다른 정치개입은 없었는지 등 모든 의혹에 대해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지난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서울지방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면서 “검찰의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국정원이 자행한 헌정질서파괴 국기문란행위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표명해 국민의 우려를 불식해야 할 것”이라며 “추가 공개된 국정원 정치공작 문건은 이명박정부 당시 국정원이 정치공작에만 올인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며, 수사기관은 철저히 수사하고 그 책임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국정원헌정파괴국기문란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그 지휘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내용 등에 대해 전면적인 확장수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의 문건에서 ‘종북좌파’ 인사로 거론된 정동영 전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자신의 목적을 일탈해서 국정원법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헌법이 명시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는 커녕 국민을 사찰하고 음해하는 일을 했으며,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년 이상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보고를 받았다면 정치사찰의 책임이 국정원장에게 있는 지,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는 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이번 사안은 이명박 정권 5년 차원의 문제이고, 이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정원 문건의 당사자인 박 시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이 문건을 국정원이 작성했다면 1000만 서울시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정치공작이나 사찰은 우리 헌법의 품격을 모독하는 행위이고, 피와 땀, 희생과 헌신으로 마련한 민주주의의 성취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1000만 시민의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당선된 시장을 종북·좌파라고 매도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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