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은 꿇었지만 한계란 없다!!!”
“무릎은 꿇었지만 한계란 없다!!!”
  • 하창현
  • 승인 2005.08.13 1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 세계신기록 보유자 정진완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는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존재한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있어야 한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며 지낸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을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슬픔과 좌절을 딛고 섰을 때 다시 자라나는 굳센 아름다움이란 그 한계가 없어 보인다. 지난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에서 비장애인 선수의 기록보다 앞선 성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정진완 씨의 삶도 그러해 보인다. 비장애인들 보다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그를 만났다. ■ 그가 넘어야 했던 험난했던 산들 정진완, 그는 1987년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하고 꿈많은 대한민국의 젊은이었다. 평소 운동을 즐겼던 그는 사고를 당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운동으로 그는 자신을 추스렸다. “운동이 없었다면 저는 술과 약에 절어 폐인으로 살았을 겁니다. 제게 있어서 스포츠는 제 삶 그 이상이죠”라고 말문을 연 그에게서 왠지 모를 오롯하지만 힘센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고 당시에는 모든 것을 포기했었습니다. 내게 평소에 일어나던 그렇게 수많은 일들도 ‘내가 이 지경이 되어 있는데...’. 모든 것들이 그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고 있는 모습들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죠. 그것이 비록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로 세상을 똑바로 볼 수가 없더라구요”라면서 당시의 절망적이었던 순간 순간들을 회자하던 그는 “중도장애인들이나 절단장애인들은 환각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몹시 괴롭죠. 사실 절단되어서 없어져버린 신체의 일부분인데도 뇌에서 그 기억과 느낌을 통해 가상의 통증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그래서 절단장애인들이나 중도장애인들에게 있어서 환각통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입니다. 물론 장애인으로서의 삶에는 넘어야 할 산은 무수히 많겠지만 이 환각통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라고 말하면서 환각통을 극복하지 못한 장애인들은 술과 약에 절게 된다고 담담히 말했다. “저도 처음에는 환각통이 무척 심했습니다. 그래서 술도 많이 마셨고 약에 많이 의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내 삶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바로 가족들이었죠”라면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 서울올림픽과의 조우, 다시 시작한 운동 “집에 나를 혼자 두고는 아무도 외출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스스로를 향한 자책은 제쳐두더라도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죠”라며 다시 운동을 하게 된 계기를 밝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는 제 삶을 ‘이렇게 놓아두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때마침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시기였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그를 사로잡기에 충분한 조우였다. “그 산물이 바로 운동이었죠. 덕분에 환각통도 쉽게 극복할 수 있었고 술도 자연스럽게 끊을 수 있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야말로 운동은 제 삶, 그 이상인거죠”라며 단호하게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당시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무리일까? 언필칭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장애인의 삶은 누가 무어라 하건 고단한 삶인 것은 분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 사격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비장애인보다 더 나은 성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그에게 기자는 ‘다른 스포츠도 많은데 하필 사격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사격이란 종목이 보기에는 정적이고 힘이 많이 들지 않아 보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바로 비장애인들도 힘들어하는 훈련과정과 대회 진행이다. 호흡 한 번 하나에도 점수차이가 나버릴 수 있기에 반드시 필요한 고도의 집중력, 그를 위한 호흡법, 장애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하체 고정을 위한 웨이트 트레이닝 등...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쉽지 않았으리라. “맞는 말입니다. 사실 사격이라는 스포츠는 고도의 훈련과 기술을 요하는 스포츠라 할 수 있죠. 모든 운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웨이트 트레이닝 조차도 일반 트레이닝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입식사격이나 휠체어에 앉은 좌식 사격이나 하체는 반드시 고정시켜 주어야 상체, 즉 최적의 사격조건을 위한 상체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절단장애인의 조절할 수 없는 하체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죠. 하지만 저는 그런 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저에 대한 성찰과 수양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죠. 정적인 자세 유지를 위한 일종의 수련이랄까? 사실 사고 후 저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심으로 난폭해 질대로 난폭해져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달래고 잠재운 것이 바로 사격입니다. 다행이었죠.”라면서 사격이 자신에게 가져다 준 여러 가지 의미를 털어놓았다. ■ 좌절은 한 번으로 족하다!!! 처음에는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면서 사격에서도 많은 좌절을 겪었다고 말했다. “세계대회에서 입상권에 들기란 일반인들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조차 변변히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세계대회 입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에 많은 무리가 따랐던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다짐했습니다. ‘입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사격자체가 전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세계신기록까지 수립하게 된 것이죠”라면서 쑥스럽게 수상경력도 피력했다. “사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못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장애인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뚝심’이라는 것이죠. 일반인들은 그만큼 기회가 많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시쳇말로 ‘이거 아니면 죽는다’라는 식이죠.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하십시요”라고 강하게 당부하기도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한테 해당하는 말이리라. ■ 전시행정은 더 이상 없어야 인터뷰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게서 장애인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그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오늘의 대한민국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본다면 이 나라는 장애인이 살 만한 토양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것이 기실이다. 그 숱한 ‘이동권 투쟁’마저도 들은 척 만척 하는 곳이 바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아닐까? “이동을 해야 장애인들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반짝하는 일회성, 전시성 행정과 정책에 신물이 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군요. 과연 진정으로 대한민국 450만 장애인들의 입장에 서 보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예로 장애인 체육대회라도 한다고 치면 각계각층에서 참석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주체가 되어야 할 장애체육인들은 그들 참석을 빛내주는 대상이 될 뿐입니다. 장애인 체육대회의 주인공은 당연히 장애인 체육인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참석한 것을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떠벌리기만 하지 장애체육인들은 안중에도 없죠. 전시행정의 실상이자, 이 나라 450만 장애인들을 대하는, 자세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죠”라면서 그는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저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차근차근히 준비를 해 나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인식의 차이만 하더라도 지금은 너무 심하게 괴리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행정적인 지원도 시원찮은 것일 수도 있겠죠. 어떻게 본다면 아무리 장애인정책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인식의 변화가 없으면 그것들은 무용지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 따로, 비장애인 따로라는 식의 사회는 제가 바라는 사회가 아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서서히 행정적인 정책도 나아지고 있지만 비장애인과 장애인간 인식의 공통분모 형성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비장애인들도 반드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식의 교감이란 것은 이러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리라 봅니다”라면서 짧으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비장애인들에게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어 그는 “지켜봐 주십시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때 응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지나친 친절도, 냉정한 무관심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서로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덧붙히기도 했다. 삶을 값지게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여정인가? 하물며 장애인으로서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주옥같이 꾸며 나간다는 것은 형용할 수 없이 찬란한 빛이 나게 마련이다.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환한 모습과 펄펄 끓는듯한 인생을 감지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부디 그에 앞날에 찬란한 빛만이 가득하길 바라며 그런 그를 충분히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토양이 하루 빨리 마련되길 기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