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베스트셀러 조작’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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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사재기 논란과 밴드왜건 효과

최근 출판계가 ‘베스트셀러 조작’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출판사의 사재기 논란과 관련하여 절판을 선언한데 이어 법적대응에 나섰다. 이 사건은 기성 출판계가 자본의 논리를 좇아 책이 가진 인문정신을 위배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출판계에 1차적 책임과 더불어 인기순위로 책을 선택하는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출판계 사재기 논란을 담았다.

 

“인기도서 순위조작, 증권조작 같은 범죄 행위”
유행에 따라 구입하는 심리…‘밴드왜건 효과’
진정한 베스트셀러는 불후의 고전이 되는 것


지난 7일 SBS <현장21>의 보도를 통해 출판사 ‘자음과 모음’의 사재기 정황이 드러나면서 ‘출판사 사재기’ 논란이 촉발됐다. 황석영 작가는 사재기 의혹에 휩싸인 자신의 책 <여울물 소리>를 절판하고 출판사에 출판권 해지를 통보했다. 출판 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황 작가는 어려운 문학 환경과 출판 시장이 사재기와 할인판매의 난장판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며 호소했다. 황 작가를 비롯해 출판인, 법조인들은 출판계 사재기 행태 근절에 나서며 검찰에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수사를 요청했다.

 

 공정위, 사재기 처벌에 난색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사재기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의해 불공정거래 행위로 볼 수 있지만,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어 공정위 고발이 없이는 자체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고 전했다.

검찰이 사재기 행태 수사요청을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으로 돌린 것과 관련 공정위가 난색을 보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도서 사재기를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행위로 보고 규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관련 사안이라 수사가 어렵다는 검찰의 입장과는 배치됐다. 공정위는 도서 사재기의 경우 물건값이 오를 것을 예상해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사두는 매점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매점을 하면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의 규제를 받지만, 출판계의 사재기는 물건값과 무관하게 베스트셀러 조작을 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매점과는 다르다고 공정위 관계자는 전했다. 공정위는 또한 상품내용이나 거래조건을 경쟁사업자의 물건 보다 좋은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을 적용하기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베스트셀러에 인위적으로 오르게 해 고객을 유인했다는 점에서 사재기는 언뜻 이에 해당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선정을 대형서점이 독립적으로 수행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규정을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공정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사재기를 타인을 속여 이익을 챙기는 ‘사기죄’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황 작가는 사재기를 통해서 순위를 조작하는 행위는 증권조작 같은 범죄행위라며 사재기를 엄단을 촉구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는 “주가조작 등으로 주식시장을 교란했을 때에는 자본시장통합법 등으로 엄격하게 처벌해 많은 사람들이 수년의 징역형을 산다”며 “책에 관해서는 현행법상 형사처벌할 만한 규정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재기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재기 행위에 대해 과태료가 부과된다. 1차 위반에 500만원, 2차 위반에 700만원, 3차 위반에 1000만원의 과태료를 매기는 데 그친다.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인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는 사재기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에 대해 “과태료 부과가 돼있는 것을 벌금으로 수준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스트셀러 발표로 밴드왜건효과

 

베스트셀러가 발표되기 시작한 시점은 1987년 10월 출판사 설립 자유화 조치 이후였다.

베스트셀러 순위가 책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잣대로 본격화 된 때는 2000년대 인터넷 서점이 인기를 끌면서다. 인터넷 서점의 확산은 직접 책을 보고 선택하던 풍토에 변화를 몰고 왔다.

인터넷 서점은 각 책의 실시간 판매 부수, 주요 베스트셀러 목록, 추천 도서 목록, 구매자 후기 등의 정보를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를 통해 쏟아냈다. 독자들은 서점을 가지 않고 책을 살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었지만 직접 책을 볼 수 없는 환경 탓에 남들이 쓴 독자후기를 보거나 인기순위에서 정보를 얻어 책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정보의 홍수속에 독자들은 베스트셀러 순위가 더욱 중요한 기능을 한 셈이다. 이른바 ‘밴드왜건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밴드왜건이론’은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 있던 역마차 밴드왜건에서 유래됐다. 밴드왜건은 악대를 선두에 세우고 다니는 운송수단이다. 악대의 음악 소리로 사람을 모은 뒤 “금광이 발견됐다”고 선전하면 무작정 역마차를 따라가던 사람들을 빗대면서 나온 말이 ‘밴드왜건효과’다.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사재기를 하는 쪽이 1차 범인이지만 또 다른 범인인 독자에게도 책임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베스트셀러가 물론 반드시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만 하면 책의 판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철학자 강신주씨는 <자본에 모독당한 책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사재기 사건을 거론하며 “저자와 독자를 이보다 심하게 모독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라며 “자본에 모독당한 출판사가 내건 베스트셀러라는 유혹에 저자나 독자들도 모두 매혹되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출판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매출에만 신경 쓴 나머지 부도덕한 수법을 동원한 이 사건이 출판업계 전반에 자성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진정한 베스트셀러는 불후의 고전이 되는 것이다. 이는 좋은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의 안목을 믿을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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