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의 끝은 이별이다. 흔히 하는 이야기다. 이는 재계에서도 적용됐다. 구씨-허씨일가가 LG-GS그룹으로 나뉜 것이 대표사례다. 이들은 아름다운 이별로 분류되나 이별 자체를 부정할 순 없었다. 여기 통례를 비웃듯 60년간 동업관계를 이어온, 또 이어가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기업이 있다. 삼천리그룹이다. 그러나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각 일가가 독자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행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그룹 분리’를 점치고 있다.
독자경영·순환출자 해소, ‘그룹 분리설’ 배경
삼천리의 삼탄 지분매각 당시 의구심 고조돼
삼천리그룹은 1995년 10월 고 이장균·유성연 창업회장이 ‘삼천리연탄기업사’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1962년에는 삼척탄좌개발(현 삼탄)을 만들었고, 1966년 7월 삼천리연탄㈜으로 법인 전환했다. 지금 상호로 변경한 때는 1984년이었다.
60년 동업관계
현재는 2세인 이만득 삼천리 회장과 유상덕 삼탄 회장이 선친의 뜻을 이어가는 중이다. 주요계열사인 삼천리와 삼탄을 각각 맡은 것. 그러나 경영상 끈이 절연된 것은 아니다. 이 회장과 유 회장은 각각 삼탄과 삼천리의 등기임원으로서 함께하고 있다. 다만 서로의 독자경영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그룹 주요계열사인 삼천리와 삼탄에 대한 지분만큼은 양가가 동일하다. 양가는 삼천리의 지분 16.18%씩(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총 32.36%)을 나눠가졌다. 이 회장 일가는 이 회장이 8.34%, 이 회장의 조카인 이은백 삼천리 전무 7.84%를, 유 회장 일가는 유 회장이 12.30%, 유 회장의 여동생인 유혜숙씨가 3.9%를 보유 중이다. 삼탄과 삼탄인터내셔널 지분도 양가가 33.4%, 35%씩 보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삼천리는 삼천리이엔지(보유지분 100%), 삼천리이에스(72%), 휴세스(51%), 삼천리엔바이오(80%), 삼천리자산운용(87.5%)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삼천리는 도시가스업에, 삼천리이엔지는 배관 및 냉난방 공사업, 삼천리이에스는 배관 및 냉난방장치 도매업을 각각 영위 중이다. 삼천리와 한국지역난방공사(49%)가 함께 만든 휴세스는 경기서남부지역 사업대상지구 수요자에게 지역냉난방을 공급하는 사업을, 삼천리엔바이오는 상하수도처리관련 공사업 및 환경컨설팅을 하는 회사다.
자원전문기업인 삼탄은 동해임산(보유지분 100%), 찌레본파워홀딩스(100%) 등을 계열사로 가지고 있다. 동해임산은 골프장 운영업을 주요사업으로 영위 중이고, 찌레본파워홀딩스는 인도네시아 발전사업을 위해 국내에 설립한 지주회사다. 이와 함께 삼탄인터내셔널은 투자매매, 주유소 운영을 주요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이별수순 밟나?”
한 주의 오차도 없이 그룹 주력계열사의 지분을 나눠가졌고, 독자경영을 중시하는 분위기이지만 동업관계인 탓일까. ‘분리설’이 끊이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두 가지를 근거로 내세우며 “동업관계가 청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순환출자 연결고리를 끊은 일이 두고두고 잡음을 만들어낸다. 2009년 12월 삼천리는 삼탄의 유상감자에 참여했다. 삼탄 지분 10.2%(26만6429주)를 전량 매각해 1408억원(주당 47만5000원)을 지급받는 형식이었다. 삼천리는 신규사업으로 인한 자금확보 필요성을 강조하며 “차입·증자를 통해서는 현금확보가 어려워 삼탄의 주식을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2010년 1월 삼탄은 시간외매매를 통해 삼천리 지분 6.53%(26만4693주)를 이씨-유씨 일가에 균등하게 팔아넘겼다. 분할매각 후 남은 1주는 장내 처분해 비율을 맞췄다. 이후 삼천리-삼탄-삼탄인터내셔널 상호출자 고리는 끊어졌다.
그러나 삼천리그룹의 이 같은 행보에 업계는 의구심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 삼천리는 삼탄을, 삼탄은 삼천리 지분을 각각 처분했기 때문이다. 특히 삼천리가 삼탄의 지분을 판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삼천리가 삼탄에서 얻은 지분법 이익(3/4분기)이 누적 세전이익의 25.5%를 차지했다는 점과 관련해서다. 삼탄이 그만큼 알짜 자회사였다는 얘기다.
업계는 “삼천리가 신용등급이 좋고 도시가스라는 안정적 사업을 하기 때문에 저리에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고 쓴 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삼천리는 “자금차입을 하면 부채비율이 높아져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준다”고 해명했지만, 삼탄마저 삼천리 지분을 처분하면서 “삼천리와 삼탄이 이별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됐다.
양가의 외도전력도 그룹 분리설에 부채질을 더했다. 삼천리와 삼탄이 나란히 본업과 무관한 사업에 진출한 탓이었다. 삼천리는 외식업, 삼탄은 골프장 운영업에 눈독을 들이며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삼천리는 2008년 SL&C를 통해 외식업에 진출했다. SL&C는 삼천리이엔지가 100% 출자(30억원)해 만든 회사다. 설립이후 거듭 영업손실을 기록, 어려움에 허덕이다 삼천리이엔지로부터 총 150억원의 자금수혈을 받았다. 현재는 삼천리이엔지에 흡수 합병된 상태다.
삼탄은 2007년 동해임산을 통해 골프장 사업에 손을 댔다.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일대가 동해임산의 골프장 예정부지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발로 골프장 건설은 난항을 겪었고, 동해임산은 올해 초 해당부지에 관광휴양·주거형 복합단지를 조성키로 강릉시와 합의했다. 계속된 적자누적으로 지난해 말 동해임산의 미처리결손금은 101억원이었다.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삼천리그룹의 확고한 분리불가 방침이유를 해석하기도 한다. “양가가 단독으로 추진한 사업이 생각보다 성과가 좋지 않아 섣불리 헤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것. “그룹 분리는 없다”고 못 박아온 삼천리그룹에게는 억울한 얘기일 수 있으나, 동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삼천리그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그룹 분리설’을 어떻게 불식시켜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