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공개한 조세피난처 명단 공개가 초유의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6월 3일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4차 명단이 발표됐다. 이날 뉴스타파가 발표한 명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1명 이었다. 전두환 비자금 환수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상황이라, 뉴스타파의 이번 발표로 인해 ‘전두환 비자금’ 실체가 밝혀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두환 비자금 수사 당시, 페이퍼컴퍼니 설립
전두환 비자금 실체 드러날까? 유령회사 주목
10월 추징금 환수 시효…법안 발의· 檢, 급 행보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 1,672억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남인 전재국 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기업)를 운영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全 장남, 왜 유령회사 만들었나?
뉴스타파에 따르면 재국 씨는 지난 2004년 7월28일 ‘블루 아도니스(Blue Adonis Corporation)’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재국 씨 명의로 이 회사의 등기이사와 주주로 등록했다. 재국 씨는 등기이사의 주소로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도서출판 ‘시공사’ 주소를 기재했다.
재국 씨가 만든 블루 아도니스는 자본금 5만달러 짜리 회사로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1달러 짜리 주식 1주만 발행했다. 뉴스타파는 재국 씨가 이 회사를 최소 6년 이상 보유했고 이 회사 이름으로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법인계좌까지 만든 정황도 포착했다.
재국 씨가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려 했던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매금융을 하지 않는 프라이빗 뱅킹(PB)이다.
재국 씨의 페이퍼컴퍼니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처로 의심받는 가장 큰 이유는 페이퍼컴퍼니의 설립 시기와 관련 있다.
재국 씨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2004년 7월은 동생 전재용 씨에 대한 검찰의 조세포탈 수사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 문제가 불거진 때와 일치한다. 당시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이 체납하고 있는 추징금을 받아내기 위한 재산추적 과정에서 부인 이순자씨와 차남 재용씨, 처남 이창석씨 등이 보유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발견했다.
검찰은 재용 씨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167억원을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71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했다며 재용 씨를 구속했다. 재용 씨가 구속 수감된 5개월 후, 장남 재국 씨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이다. 재국 씨가 페이퍼컴퍼니에 연계된 계좌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행회사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면 다급한 정황이 드러난다. 싱가포르 아랍은행 계좌 개설이 늦어지는 데 대해 ‘전재국의 (다른) 은행계좌 돈이 막혔다. 전씨가 몹시 화가 나 있다’는 내용이 이메일에 들어 있다. 재국 씨는 무슨 이유로 다급하게 유령회사를 세웠을까?
전 전 대통령이 차남 재용 씨에게 비자금을 증여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 장남인 재국씨에게도 비자금이 흘러갔을 것으로 꾸준히 의혹이 제기돼왔다.
재국 씨는 뉴스타파 측에서 연락을 받은 뒤 3일엔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 후 페이퍼컴퍼니 의혹과 관련하여 “부친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실이며 탈세나 재산 은닉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재국 씨는 “이 일은 1989년 미국 유학생활을 일시 중지하고 귀국할 당시 가지고 있던 학비, 생활비 등을 관련 은행의 권유에 따라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국내 재산을 외국으로 반출한 사실도 없고 현재 외국에 보유 중인 금융자산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들풀처럼 일고 있는 의혹을 잠재우지 못했다. 이는 재국 씨의 해명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아서다.
재국 씨의 주장대로라면 학비와 생활비를 예치해 둔 은행의 권유에 따라 돈을 싱가포르로 이전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이 된다. 은행이 자사에 예치한 돈을 다른 나라로 옮기도록 권유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 것. 온 가족이 검찰 조사로 정신이 없을 상황에서 단지 은행이 권유한다는 이유로 유령회사까지 만들어 다급히 다른 나라로 돈을 옮겼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전두환 자녀, 수천억대 자산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의혹을 제기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가족이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이 1988년 백담사로 가면서 재산을 헌납하겠다고 밝혔을 때 그의 재산은 연희동 집, 서초동 땅 200여평, 콘도·골프 회원권, 금융자산 23억 등이 전부였다. 전 전 대통령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연희동 주택은 부인 이순자씨에게 서초동 땅은 재국·재용 씨에게 물려줬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수백억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장남 재국 씨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차남 재용 씨, 삼남 재만 씨도 사회생활을 하기 전이었다.
재국 씨는 서초동에 시공사 사옥 등 건물 두 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건물과 땅을 보유하는 등 드러난 재산만 해도 수백억원 대에 이른다. 재국 씨의 딸 수현씨의 이름으로 돼 있는 경기도 연천의 땅은 시가가 약 1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차남 재용 씨도 50억원대의 서초동 땅 지분, 총 90억원에 이르는 이태원 고급빌라 3채, 서소문 일대 건물 등을 갖고 있다. 삼남 재만 씨 역시 한남동의 100억원대 빌딩 소유주다.
재국 씨는 시공사 인수 전, 사회생활을 한 적이 없다. 당시 32살의 재국씨는 ‘1000만원’만 투자해 친구들과 공동투자 형식으로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해 경영자가 됐다.
전 전 대통령의 아들들에 대한 재산형성에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추징시효 임박, 전두환법 처리될까?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자녀들에게로 흘러갔을 경우 추징금 환수 여부에 관심이 높다. 이에 화답하듯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지난달 공무원범죄몰수특례법 개정안(일명 전두환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추징 대상자의 재산이 불법적으로 취득됐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취득한 사람에게 추징이 가능하도록 것을 골자로 한다.
최 의원은 “특히 현행 형법상 단 1원이라도 추징금을 내면 추징시효가 연장되다가 추징당사자가 사망할 경우 유산을 상속받는 이가 없으면 추징이 불가능해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며 법안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최 의원이 낸 법안 외에도 세 건의 ‘전두환법’이 발의돼 있다. 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전·현직 대통령 등이 취득한 불법 재산을 친인척에게서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어놓은 법안이다. 또 지난해 민주당 김동철 의원이 발의한 ‘특정 고위 공직자에 대한 추징 특례법 개정안’,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이 발의한 ‘부패 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도 비슷한 내용으로, 국회 법사위에 상정돼 있다. 6월 임시국회에서 입법부로서 어떤 성과를 내놓을지 더욱 관심이 높다.
검찰의 행보도 빨라졌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지난달 전두환 비자금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의식하며 “특별 수사를 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계좌 추적·자산 추적·필요 시 압수수색 등 입체적· 다각적 방법을 총동원하라”며 “고액 벌과금 미납 집행과 관련해 가시적 성과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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