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목숨 담보로, 유관기관끼리 ‘탁상경영’하며 ‘원전비리’
국민혈세 담보로, 민자발전사에 퍼주고 적자는 ‘국고보전’
조환익 사장 “전력난 우려된다” vs “주범이 누군데” 발끈
한전출신 ‘원자력마피아’
원전 비리 쑥쑥 키워
이번 원전중단 사태를 이끈 주인공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원(이하 한전기술)’이다. 한수원은 원자력 발전소 운영을, 한전기술은 설계와 인증을 맡고 있는 업체다.
한전자회사인 이들은 내부리비를 통해 끈끈한 유착관계를 쌓아왔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전력업계의 특성을 이용해 동맹을 맺어 원자력업계의 ‘마피아’로까지 불린다. 특정 기관들의 임직원들이 자리를 물려받는 폐쇄적인 인사시스템으로 그들만의 조직을 구축해 온 것.
신고리 1,2호기를 만든 석원산업의 권오철 대표와, 고리 2,3,4호기를 만든 현대엔지니어링의 안승규 전 부회장을 2008년, 2011년 각각 한전기술의 사장으로 선임하는 식이다. 또 한전기술이 원전 부품 검증을 의뢰한 새한티이피의 부사장은 한전기술의 기계기술처장 출신이다.
시공사, 인증사, 검증사까지 한통속인 이들 감사의 허술함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원전 부품 위조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총 377개 품목, 1만 396개의 불량 제품이 납품된 것이 확인됐다. 또 지난해 7월에는 고리1호기의 납품 가격이 부풀려진 사실을 묵인하는 대가로 5년간 5억에 달하는 뒷돈을 챙긴 한수원 전 현직 직원 22여명이 무더기로 구속되기도 했다.
당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한수원은 순환인사제도를 손질해 내부비리근절에 나선다고 밝혔지만 결과는 나아진 게 없었다.
이번에도 한수원은 친분이 있는 민간업체에 원전 부품 검증을 맡긴 채 서류 결과만 확인하는 식이였다. 한전기술은 검증사인 새한티이피가 위조한 시험 성적서를 허술하게 검토했고 한수원은 한전기술의 보고대로 넘어가며 구멍 뚫린 검증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전기술 측은 “저희 회사는 서류상 테스트만 하는 곳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탁상경영의 부실함 또한 드러냈다.
실제로 한수원과 한전기술이 원전 건설을 위해 체결하는 ‘종합설계용역 계약’에는 주요 부품에 대한 실사 의무 조항조차 없었다. 한전기술은 부품이 규격대로 설계됐는지를 성적서 등 서류상으로 확인할 뿐 현장 실사를 하지 않는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원전 중단 사태로 인한 손실은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한전에 의하면 100만㎾급인 원전 1기가 정지하면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하루에 전력구입비 42억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수원도 100만㎾ 원전 1기가 하루 정지할 드는 손실을 10억원으로 예상했다. 원전중지 사태로 인한 조 단위의 손실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전력난’ 진짜 주범은 ‘산업용’
원전중지 사태가 다시 한전의 전기요금인상 ‘타령’의 기폭제가 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전은 그동안 잦은 전기요금인상을 추진해오면서 전력거래구도의 개편 보다는 요금인상에만 급급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9510㎾로 일본 8110㎾, 프랑스 7894㎾, 독일 7108㎾을 크게 웃돌았다. 당시 한전은 “일본의 3분의 1,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인 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전력 소비가 급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전 적자의 이유로 싼 전기요금을 꼽으며 지난 1월 전기요금을 평균 4% 인상했다.
하지만 여기에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 중 ‘가정용’ 전력소비량이 차지하는 양은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가정용’ 전력소비량은 1183㎾로 일본(2246㎾), 프랑스(2639㎾), 독일(1700㎾)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아울러 지난 1월 당시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월평균 전력소비량 중 가정용은 54억8587만㎾h로 총 전력소비량의 14.6% 수준이다. 반면 산업용은 202억4560만㎾h로 총 전력소비량의 53.8%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누가 전력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산업용이 가정용의 3.6배의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하는 셈. 따라서 한전은 매년 계속되는 전력난의 주범은 가정용이 아니라 산업용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업계 전문가는 “우리가 전력난에 시달리는 이유는 전체 사용량의 54%에 육박하는 산업용 전력 때문”이라며 “산업용을 아껴야지 주택용을 아낀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산업용 전력요금은 ㎾h당 81.23원으로 가정용(101.69원)보다 낮고 누진세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전기절약의 유인책이 별로 없는 실정”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비싸게 사와 헐값에 팔아
한국전력은 현재 전력의 송,배전만 담당하기 때문에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회사의 전기를 구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현재 전기를 생산하는 곳은 크게 3부문으로 압축된다. 한수원, 한전의 발전자회사5개(한국동서·남동·남부·중부·서부발전), 민자발전사(포스코에너지·GS파워·GSEPS·SK·E&S)다. 한수원은 원자력 발전 방식이라 단가가 가장 싸고 한전의 발전자회사 역시 비교적 싼 가격에 전력을 판매하고 있다. 반면 민자발전의 경우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데다 독점적 시장 지위도 누릴 수 있기에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평가 받는다.
민자발전 사업은 1990년대 중반 급격히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전력사업구조개편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독점적인 민간 투자자를 모집해 발전소 건설을 허용한 뒤 생산전력을 한전이 전량 구매하는 방식이다.
민자발전사는 한전 발전자회사와는 달리 정산조정계수(발전원별로 이윤을 5% 내외로 제한하는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전력판매단가는 한전 발전자회사의 경우 ㎾h당 90.17원이었지만 민간발전사들은 161원으로 약 2배에 달했다.
더욱이 한전은 기업들에게 산업용 전력을 ㎾h당 82원에 판매한다. 따라서 민자 발전사가 한전에게 161원으로 전기를 팔고 반값에 구매하는 진풍경까지 나온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으로 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손실은 결국 국민 혈세로 매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전이 발표한 전력요금 원가 회수율은 90%로 이는 전력 100원어치를 판매할 때마다 10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력소비량이 많아질수록 한전은 더 많은 부채를 떠않을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셈.
한전은 전력난의 원인이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인한 과소비에 있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전력 공급 구조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찾는 자구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