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경제민주화 열기가 뜨겁다. 남양유업 사태 등으로 불거진 갑을(甲乙)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경제민주화 법안 논의로 이어진 가운데 여야가 모두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각론의 내용은 상이하다. 새누리당은 창조경제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민주당은 ‘을(乙)을 위한 입법’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경제민주화 관련 여야간의 입장을 살펴봤다.

“역외탈세 사회정의 차원에서 엄단해야 한다”
전두환법…野, 6월국회 통과 VS 與, 유보적
지속가능한 성장 ‘을 지키기’ 드라이브 가속화
여야간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법안의 충돌 예고
역외탈세 문제에 대한 성역없는 조사와 관련자 처벌 등 여론의 질타가 연일 거세지면서 6월 임시국회에서 진상조사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여야의 공방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내 대기업 인사 및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의 역외탈세 의혹이 드러난 점을 언급하며 국회내 ‘역외탈세 및 조세도피에 대한 진상조사 특위’ 설치를 밝혔다. 이는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전날 대표연설에서 정부측에 역외탈세 관련자 명단 입수·공개와 성역없는 조사를 요구한 것에 일진보한 것으로 국회내에 담당기구 설치를 통해 진상조사를 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민주당은 김 대표의 특위 설치 제안과 관련, 이번 국회 내에서 ‘전두환 추징금 환수법’을 반드시 처리, 시효에 관계없이 추징금을 국고에 환수시킴으로써 사회정의를 회복하자는 의지도 담겨 있음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대표발의한 ‘조세범 처벌법 개정안’에는 조세피난처 및 금융비밀주의 국가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 해외투자를 가장한 기업자금의 사적 유용 등 조세포탈을 목적으로 빼돌린 자금의 전부를 국고에 환수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안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국회가 특별기구를 만들어 역외탈세에 대해 직접 조사에 나서는 부분에서는 한걸음 늦추는 분위기다. 특히 전 전 대통령 은닉재산 환수 관련 법안의 처리에 대해선 더욱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국세청, 관세청, 검찰 등의 조사나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다만, 새누리당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제도보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최근 일부 부유층에서 편법적인 상속수단으로 금괴를 선호하는 것과 관련, 최 원내대표가 ‘금 거래소’ 설치를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6월 국회에서 여야 공동의 특위를 설치해 역외탈세 및 조세회피 실태에 대해 자체 조사를 실시하고 정부의 조사상황을 모니터하자는 입장으로 여야간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법안의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민주화는 상생”
“편가르기 경제민주화 반대”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4일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경제민주화를 차질 없이 실천해 나갈 것”이며 “이미 공약한 바 있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 관련 입법도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최 원내대표는 “최근 정치적 목적으로 편가르기에 경제민주화를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며 “편가르기식 경제민주화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최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를 빌미로 우리 사회를 1:99의 대립구도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며 “경제민주화의 목표는 상생이다”고 역설했다. 이어 대기업의 불법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도 엄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조세피난처 페이퍼 컴퍼니 설립과 탈세 관련 행위에 대해 “경제민주화라는 거창한 말을 갖다 붙일 필요도 없이 사회정의 차원에서 엄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인터넷 언론이 네 차례에 걸쳐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람들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며 이에 “전직 대통령 자제를 비롯한 사회 저명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보도돼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원내대표는 “정부는 조속히 명단을 입수해 그 내용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엄중히 의법 처리해야 할 것”을 촉구했다.
이 같은 최 원내대표의 연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일자리중심의 창조경제실천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에 따라 대통령의 대선공약에서 제기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에 대해서는 조속히 처리하면서도 민주당을 겨냥해 과도하게 을(乙)로 포장된 경제민주화 법안 등에 대해서는 편가르기식으로 명확한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과 사회지도층의 역외탈세, 비자금 조성의혹과 관련해서는 사회정의차원에서 엄단키로 했으며 이를 정부당국에 촉구하고 불법, 부당 관행에 대해서도 엄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원내대표는 “해외에 유령 법인을 설립해 불법 비자금으로 자사의 주가를 조작하고,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탈세를 시도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며 “이러한 행위는 경제민주화라는 거창한 말을 갖다 붙일 필요도 없이 사회정의 차원에서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공약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 관련 입법은 속도를 내겠다고 밝힌 만큼 6월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근혜정부의 핵심국정과제인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으로 최 원내대표는 이를 위해 창조경제 컨트롤타워로 ‘대통령 직속 창조경제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정부에 공식 제안키도 했다.
또 정부가 곧 내놓을 창조경제 종합계획에 맞춰 창조금융 활성화, 인수합병제도 개선, 세제지원 강화 등을 밝혔다. 산업의 융·복합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들의 철폐,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도 정비키로 했고, 창의인재 육성을 위해 올 가을 예산심의에서 대학생 창업지원 사업을 역점 과제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한길 “을(乙)을 위한 정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강조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한마디로 ‘을(乙)을 위한 정치’로 축약된다. 이날 연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을을 위한 정치’였다.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양극화 현상을 ‘갑을(甲乙) 문제’라는 관점에서 보고, 이를 해소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해법으로 ‘을 지키기’ 드라이브를 가속화했다. 6월 임시국회를 맞아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을 정면으로 문제삼아 경제민주화 입법의 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 100일을 “불신, 불안, 불통의 100일”이라고 평가한 뒤 대표적 불신 사례로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속도조절론을 꼽으며 “대통령의 실천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6월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 관련법들이 정부여당의 약속대로 처리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박 대통령의 몫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양유업 방지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역점법안들을 강조하며 6월 국회내 처리 의지를 내비치는 등 대통령·여야 지도자· 경제주체들이 참여하는 ‘갑을관계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위’의 구성을 제안키도 했다.
김 대표는 특히 ‘갑을(甲乙)’간 불균형 문제를 ‘저수지에는 물이 가득 차 있는데 그 아래 논밭은 타들어가고 있는 현상’에 비유하며 “이래서는 절대로 추수를 기대할 수 없다”며 “저수지의 물이 고여 있지 않고 제대로 논밭으로 흐르게 하는 것, 그래서 풍년의 추수로 이어지게 만드는 길이 ‘을을 위한 정치’”라고 주장했다.
또한 ‘편가르기식 경제민주화’를 반대한다는 새누리당 최 원내대표의 전날 연설에 대해 “우리사회는 우월적 지위를 강화해온 갑과 이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한 을로 편가르기 돼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갑을관계를 바로잡아야만 편가르기가 아닌 사회통합이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저수지로는 모자라 해외의 버진아일랜드 같은 곳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로 흘러간 부분도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국회 내 ‘역외탈세 및 조세도피 진상조사’특위 설치도 제안했다.
김 대표는 원전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우리 모두가 불안한 원전이라는 이불을 깔고 잔다는 공포감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1만4천개의 부품 전수조사를 국회가 독려하고 감시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정원 사건’과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통상임금 문제 등을 놓고 박 대통령을 압박하면서도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민주당의 자세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국민의 편에서 정부의 국정운영을 감시·견제하고 합리적 대안을 내놓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을을 위한 민주당’으로 재도약, 국민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해 고난의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