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탈북루트, 위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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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 강제북송 논란

국경을 넘어 라오스까지 떠돌던 탈북 청소년 9명이 북한으로 압송됐다. 탈북을 감행했던 청소년들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중국을 떠돌던 이른바 ‘꽃제비’ 인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여론이 거세다. 문제는 이런 일이 벌어질 동안 외교 당국은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점이다. 탈북청소년 강제북송과 관련된 논란을 취재했다.

▲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 라오스 체류 당시 모습. (사진출처 : KBS 뉴스 캡처)


정부 탈북자 송환 저지 결국 실패
“타성에 젖은 ‘하던대로 외교’ 때문에”
김정은 체제 들어 체포조 활동 폭 넓어

탈북청소년 9명이 배고픔과 자유를 찾아 생명을 담보로 감행한 북한 탈출이 결국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라오스에서 강제 추방된 탈북자 9명이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편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됐다. 탈북자들은 지난달 27일 이들과 동행한 북측 관리들의 감시속에 베이징에 도착했다. 우리 대사관의 시계도 이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공항에 나가 평양행 항공기에 탑승하는 승객들의 신원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등 북송 저지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북측은 우리 대사관 직원들의 감시를 유유히 피해, 탈북자들을 평양행 고려항공편에 탑승시키는 등 우리 측 대응을 따돌렸다.

송환을 담당한 북측 인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측의 감시 활동을 따돌렸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앞서 북한은 라오스에서 강제 추방 명령을 받은 탈북자들을 항공편으로 중국 베이징으로 강제 이송했다. 북한이 추방 명령을 받은 탈북자들을 항공기를 이용해 출발지로 이송한 것은 이례적이고, 따라서 탈북자 중 주요 인사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그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인 추론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탈북 청소년 9명이 지난달 27일 라오스에서 강제 추방된 이후에야 이들의 신원 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9명 중 납북 일본인의 아들이 있을 수 있다’는 첩보 등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이들 9명에 대한 신원 파악에 좀 더 일찍 나섰다면 그런 첩보들의 진위 확인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신병 인도를 라오스 정부에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했을 것이라는 자성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탈북자 송환 실패…관성적 사고 때문

 

정부가 탈북자 송환 저지에 결국 실패한 것은, 탈북자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측의 관성적 사고, 북한의 적극적인 저지 노력 등이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는 탈북자 체포조의 임무는 탈북자들의 한국행 루트를 탐색하고 직접 중국 외 제3국에까지 가서 탈북자들을 붙잡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탈북자들은 이번 라오스의 탈북고아 강제추방 과정에서도 탈북자 체포조가 직접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탈북자 대부분은 중국 외 제3국에서 경찰에게 붙잡히더라도 중국으로 단순 추방되거나 한국 대사관에 넘겨졌으며 이번처럼 북한 공관에 넘겨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는 김정은 체제 들어 탈북자 체포조의 활동 범위가 더 넓어지고 공작 방법도 훨씬 더 공세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라는 게 북한인권 단체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북한인권 단체들은 라오스에 억류됐을 당시 주(駐)라오스 한국대사관이 이들 탈북청소년에 대한 접근과 신원 파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랬다면 북송된 탈북 청소년 중 유일하게 꽃제비(일정한 거주지 없이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떠돌이)가 아닌 백영원(20)에 대해 확인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북한인권 단체 등에 따르면 백영원은 8명의 꽃제비와 달리 북-중 접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 출신이 아니라 동해안의 함경남도 함흥에서 왔고, 올해 2월에야 합류했으며 ‘남한의 가족을 꼭 찾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탈북했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영원은 북한이 이례적으로 속전속결로 이들 9명을 비행기로 북송시킨 미스터리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교부 ‘탈북자 방치 주장’ 반박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전 국회의원)은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은 저마다 탈북하기까지 생사를 넘나든 가슴 아픈 이야기를 갖고 있다”며 “북송됐다고 이들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이들 9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노애지(15·여)는 2년 전 13세 때 중국인에게 납치돼 중국으로 팔려갔다가 노예처럼 부려졌고 성적 학대까지 받았다”며 “이번이 세 번째 탈북이었는데 자유를 눈앞에 두고 다시 사지로 끌려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와 관련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한 기자회견에서 “타성에 젖은 ‘하던대로 외교’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한국대사관의 불성실하고 불철저한 처리 때문에 탈북자들이 피해를 받는 일은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또 “라오스 한국대사관 인력이 북한대사관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특히 정보관은 1명밖에 없어 정보력이 매우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제2의 강제 북송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북한인권 단체와 대사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돼 북한인권 재단이 있었다면 NGO와 공무원 간 소통의 다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번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주라오스 한국대사관 등이 그동안 여러 차례 탈북자를 외면하거나 방치했다는 북한인권단체 주장을 반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2006년 11월 탈북청소년 3명이 라오스 이민국 수용소에 5개월간 수감됐으나 현지 우리 대사관이 언론 보도 후에야 움직였다는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언론에 보도되기 5개월 전부터 한국대사관은 수감 사실을 인지하고 관련국 정부 당국과 지속적으로 접촉해 현지 국제기구에도 지원을 요청했으며 관련국 협조로 이들을 한국에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외교부는 북한인권단체들이 주장한 다른 사례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충분한 조치를 취했으며 국내 이송도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6월 임시국회, 북한인권법 추진

 

새누리당은 라오스로 탈출한 탈북청소년이 강제 북송된 사건을 계기로 6월 임시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을 중점법안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2일 서면브리핑에서 “국회는 조속한 시일 내에 합의를 통해 북한인권법을 제정, 보다 확실하게 인권단체들이 탈북청소년을 비롯한 탈북자를 돕는 일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이어 “그동안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 제정 노력에 번번이 반대해 온 민주당도 적극 협력해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도록 협조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라오스 현지 대사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외교부 본부에서는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왔는가를 소상히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6월초 현재 시점까지 국내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은 556명으로, 올해 전체로는 1200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509명보다 20%정도 감소한 수치로 지난 2001년 1044명으로 연 1000명의 숫자를 넘기며 국내 입국 탈북자는 해마다 증가해 2009년에는 2929명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2011년(2706명)의 절반 정도로 급감했다.

탈북단체들은 북한이 재작년부터 농경지 수로 등에 집중적으로 노역을 동원했고, 작년은 집중호우의 강도가 약했던 데다 산간 지방에 집중돼 농경지 피해가 적었던 것도 탈북감소의 원인으로 예상했다. 또 탈북의 주요 경로였던 함경도 지방의 국경 경계와 적발 시 처벌이 강화된 것도 탈북자들의 월경을 막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탈북자들이 이용하는 제3국 탈북루트도 사라지게 되면 탈북자 수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탈북고아 9명을 강제로 북송시킨 라오스가 앞으로도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만약 라오스와 원활한 협조가 안 될 경우 동남아 탈북루트가 사실상 폐쇄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그동안 탈북자를 강제 북송시키지 않고 인근 국가로의 추방 등의 방법으로 탈북자의 한국 및 제3국행을 사실상 거들어 줬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라오스를 거쳐 제3국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탈북자에 대한 라오스의 정책이 이번 사태처럼 바뀌게 될 경우 동남아의 탈북 루트는 최대의 위기를 맞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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