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달라는 남편에게 순간적으로 저지른 범행
23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이홍권 · 李弘權) 심리로 열린 항소심 법정.
하반신이 마비된 남편의 자살을 도와 숨지게 한 혐의(촉탁 살인)로 기소된 김모(58 · 여)씨가 울먹이며 피고인석에 섰다. 김씨의 남편 박모(63 · 사망)씨는 30여 년 전 척수염에 걸리는 바람에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 왔다.
이 때문에 김씨는 남편을 대신해 포장마차도 하고, 건물 청소도 하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홀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김씨는 세 자녀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막내아들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다.
남편 박씨는 1995년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농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더는 가족들을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자살이 미수에 그치면서 박씨는 그 후유증까지 겹쳤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괴로워하던 박씨는 올해 3월 말 자신의 집에서 양잿물을 마셨다.
그리고 때마침 귀가한 아내에게 “약을 먹었는데도 죽지 않는다”며 “나 좀 죽게 도와 달라”고 했다. 김씨는 남편의 목에 감겨 있던 붕대를 졸라 숨지게 했다. 김씨는 남편의 사망 직후 인근에 사는 시누이에게 전화해 “산책을 다녀와 보니 남편이 죽어 있었다”며 자살로 위장했다.
그러나 병원 영안실 직원이 염을 하던 중 박 씨 목 주위에 난 상처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이 들통났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청소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남편이 또다시 독극물을 마시고 ‘죽여 달라’고 애원해 순간적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김씨 가족과 친척들은 “김씨가 30여 년간 남편의 대소변을 다 받아내고 저녁이면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동네 주변을 산책하는 등 극진히 병 수발을 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부검 결과 직접적 사인은 피해자가 마신 양잿물이었다”며 “그동안 피고인이 가정을 위해 헌신한 점으로 미뤄 볼 때 남편의 음독을 유도했다는 검찰 측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범행 직후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범행을 은폐하기보다는 자신의 범행을 소극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며 원심대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선처했다. 판결 직후 재판을 지켜보던 김씨의 자녀들은 김씨를 끌어안고 “엄마, 이제 괜찮아요. 울지 마세요”라며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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