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만 바뀌면 된다는 사고방식 버려야 할 때
선수들 정신 재무장도 절실해
대한민국의 축구는 백마 탄 왕자님과의 결혼을 꿈꾸는 ‘말기 공주병환자’다.
세계적인 명장만 데려오면 언제라도 월드컵 4강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한다. 대한축구협회가 지난 23일 요하네스 본프레레 대표팀 감독을 자진사임 형식으로 포장해 전격 경질했다. 14개월 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을 퇴출시켰을 때와 똑같은 모양새였다.
지난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난 이후 한국축구는 28개월 동안 2명의 외국인 감독을 경질했다. 하지만 간판만 바꾸고 영업하는 퇴폐업소처럼 근본적인 문제점은 고치지 않았다. 감독을 자르는 선에서 여론과 언론의 비난을 피했을 뿐이다. 본프레레 퇴진을 계기로 한국 축구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진단해 본다.
영웅된 히딩크, 억울한 코엘류, 본프레레는?
대표팀 부진에 경질...그에게 충분한 시간 주었나
대한민국의 축구는 거스 히딩크를 통해 인내심을 배웠고 움베르투 코엘류로 인해 그 인내심을 망각했다면, 요하네스 본프레레를 통해 다시 인내심의 한계를 맛봤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인내심이 명장을 만든다’는 소중한 진리를 체득한 바 있다. 한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극과 극의 반응으로 감독 경질을 반복해왔던 한국 축구가 긴 호흡으로 기다린 끝에 월드컵 4강이라는 믿기 어려운 성과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나무가 크면 클수록 그림자도 큰 법. 어느 순간부터 대한민국 축구의 모든 잣대는 ‘히딩크’가 되어버린지 오래고, 이후 지휘봉을 잡은 코엘류와 본프레레는 항상 그와 비교되며 성적부진 때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난도질 당했다.
■ 감독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되나?!
본프레레가 이끌었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동아시아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중국, 일본, 북한을 상대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최하위의 수모를 당했다. 3경기를 통틀어 51개의 슈팅을 쏟아붓고도 1골만 성공시킨 최악의 골 결정력에다 ‘숙적’일본에 0대 1로 패한 것은 비판 여론의 불길을 순식간에 지펴놓고 말았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라는 의견이 팽배하며 본프레레의 경질론이 대두되었고 이를 다루는 각 언론들과 여론들은 ‘경질해야 한다’는 쪽과 ‘경질은 금물이다’는 쪽으로 나뉘어 연일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지만 결국 본프레레는 자진사임의 형식으로 사령탑 자리를 내놓았다.
2006 독일월드컵 본선에서의 선전을 위해서는 본프레레의 경질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본프레레를 경질한 후 최선의 대안은 모색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때마다 반복되는 감독의 경질 속에서 잊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들
# 왜 죽어도 외국인 감독인가?
이 미스터리는 모방송사 프로에서 한 발 앞서 ‘한 외국 감독의 경질 배경’을 심층적으로 다룬 탓에 맥이 빠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스터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왜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들에 목을 매는지, 그리고 명망가 중심의 외국인 감독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우는지의 배경이 여전히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 감독만을 애타게 찾고 있는 대표팀을 보면서 외국인 감독, 그 의미에 대해 새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축구 전문가는 “잘하니까, 잘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선진축구를 익힌 선진 교육자라고 생각하니까”라면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외국에서 왔기 때문에 원활한 선수 파악이 어렵다는 것과 한국 지도자들에게 훈련을 받던 선수들이 외국 지도자를 만났을 때 선수들의 열정이 이상하게도 떨어진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쿠엘류 감독 사태를 돌이켜 보자. 내막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선수간 경쟁을 못시킨 점과 2002년 월드컵 멤버를 그대로 가져간 것은 분명 쿠엘류의 책임이었다. 공부도 부족했고 K리그 경기도 챙기지 않고 엑스 파일을 공개한다면서 공개한 적도 없었다.
물론 경기 내용들도 나빴다. 대표팀은 계발하는 팀이 아니라 현재 전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포맷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팀이다. 쿠엘류가 영어 대신 불어를 사용했던 것 역시 문제로 지적이 되었다. 쿠엘류, 본프레레의 경질로 인해 결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실들 중 하나는 ‘외국인 감독과 한국인 코치’라는 포맷이 반드시 절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 왜 죽어도 윙플레이일까
토털 사커의 주요 골자는 골키퍼를 제외한 전 선수의 미드필더화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예나 지금이나 이에 위배되는 전술을 고집하고 있다.
측면으로 볼을 빼주고 좌우로 QK르게 벌려 나가서 돌파와 크로스로 마무리되는 한국축구의 전통은 국가대표팀은 물론이고 유소년부터 K리그까지 거의 모든 팀의 공통 분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윙플레이 외에 이렇다 할 다른 전술이 보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축구는 늘 변한다는 사실이다. 토털 사커는 1974년 네델란드 대표팀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로맨틱한 축구 전술이다. 현대 축구의 전술은 개인의 특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11명이 모두 다른 개인의 장점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균형 잡힌 팀을 구성하는냐가 관건이라는 이야기. 물론 그 공(功)은 감독과 코치에게로 돌아간다. 명문팀들의 경기를 보면 대부분 조직력에서 승부가 갈린다. 쉽게 말해 공이 어딘가에 떨어졌을 때, 그 공을 둘러싼 공간 확보까지 염두에 둔 유기적인 플레이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느냐이다. 조직력이 향상되면 공, 패스, 공수 전환의 스피드는 자연히 올라간다.
공 앞에 있는 선수, 공 뒤에 있는 선수를 어떻게 조직하느냐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공을 빼앗길 경우까지 염두에 둠은 물론, 조직력이 좋은 팀은 다양한 공격 루트와 비어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대목에서 선수들의 창의력과 전술 이해력이 요구된다.
물론 그런 선수들을 자극하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몫이다. 한국 선수들의 경우, 일단 매우 빠르다. 그 장점을 살리기 위해 많은 감독들이 윙 플레이에 의존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는 ‘빨리, 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의 정서와도 일치한다.
그렇게 앞뒤가 바뀐것이다. 축구에서는 어디까지나 조직력이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한 축구 전문가는 현대 축구의 성공 포인트를 크게 3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플레이 에어리어를 크게 잡을 것. 공간을 넓고 깊게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빠르게 패스할 것. 빠른 패스로 공간을 만들면 곧 상대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우리 선수들은 어떤가? 공 처리가 늦어 수비수를 아예 달고 다닌다. 그러니 공간을 찾을 여유도 없다. 셋째, 선수의 움직임과 조직 내 선수의 움직임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팀의 경우, 전자는 있지만 후자는 없어 보인다.
있다면 한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에게 유일하게 후자가 있었던 것 같다.
# 왜 대표팀 A매치는 늘 시시할까
한국은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달성했다. 우리도 놀랐고 세계도 놀랐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
한국은 여전히 아시아의 작은 나라일 뿐이다. 게다가 오만과 베트남에 연패하고 10명으로 싸우는 중국과도 비기는 불안정한 전력이다. 결국 언젠가 차두리가 했던 말을 인용할 수밖에 없다. 월드컵 4강은 ‘어제 내린 눈’에 불과하다.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와 그 당시의 빼어난 경기력은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4강에 올랐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축구 팬들은 한국 대표팀의 A매치 일정표를 보고 불만을 갖는다. 왜 항상 ‘안방’ 매치만 갖느냐는 거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원정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성사된다. 그 둘은 초청과 도전이다. 주지하다시피, 강호 유럽팀들이 한국을 초청할 리는 만무하다. 한국은 경기력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대일 뿐만 아니라 월드컵이 아니면 마주칠 기회도 없어 미리 전력을 파악해둘 필요성도 없다.
그런 팀을 돈까지 주고 불러들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리 쪽에서 도전장을 내밀어도 사정은 똑같다. 1년에 몇 차례 되지 않는 A매치 데이를 이왕이면 영양가 있는 상대와 치르고 싶은 게 당연한 심리다. 게다가 한국은 일본처럼 손에 돈을 쥐어주지도 못한다.
월드컵 개최국의 프리미엄과 ‘히딩크’라는 인맥이 사라진 한국 대표팀은 유럽 강호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상대가 아니다. 같은 이유로 유럽 강호들의 한국 방문 또한 성사되기가 힘들다.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정도의 금액을 파이트 머니로 지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이탈리아, 스페인과의 리턴 매치는 월드컵이 아니라면 다시 보기 어렵다.
아시아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유독 한국만 피해다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일본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우리는 진지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라이벌이라는 의식은 한반도를 벗어나면 픽션에 불과하다.
축구 기량으로 따지는 라이벌의 의미는 여기서 배제된다. 일본의 경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단순히 파이트 머니의 규모를 떠나서 일본과 경기를 갖고 관계를 맺는 것은 해당국에게 하나의 자랑거리가 된다. 씁쓸한 일이지만 한국은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자. 유럽 축구계가 중국의 잠재력에 거는 기대는 대단히 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10대 소년 덩팡저우를 영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비록 0-5로 완패하기는 했지만 중국 대표팀은 언젠가 레알 마드리드와 원정 경기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중국도 유럽팀과 A매치 한번 갖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일본이 잉글랜드 원정을 떠나고 우리가 약체팀들을 불러들이는 동안 중국은 이스라엘을 초청한다. A매치는 축구 기량이나 돈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시아와 유럽의 먼 거리도 장해 요소 중의 하나다. 국내 스포츠 마케팅과 관중 동원력의 부재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A매치도 하나의 장사다. 능력있는 중개업자가 개입해 거간 노릇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스포츠 마케팅, 특히 축구 분야는 개척이 상당히 더딘 분야다. 일본의 경우 스폰서십을 적극 활용해 수많은 경기를 유치한다. 일본의 우라와 레즈팀은 나이키와의 스폰서십 관계를 이용해 이탈리아 명문 인터 밀란도 불러들였다.
한국도 그간 나이키 스폰서십을 통해 브라질 대표팀을 불러들였지만 최근에는 어찌 된 일인지 이마저도 뜸하다. 이 지점이 적은 관중수와 낮은 입장료가 영향을 미치는 부분일 것이다. 수익을 낼 수 없는 환경이라면 수준 높은 팀들의 초청도 불가능하다.
누가 등에 짚단을 짊어진 채 불속으로 뛰어들겠는가. 예전에 한 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찰튼 애슬레틱 구단이 한국 방한 경기를 추진한 적이 있다. 그는 자체적으로 스폰서를 구해 국내 프로팀과 교섭을 시도했지만 마땅한 컨택트 포인트를 찾지 못해 한국 방문을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경기력은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과 전반적인 축구 문화가 동반 상승할 때 유럽팀과의 활발한 교류도 기대할 수 있다.
■ 2% 부족한 인내심
한국팀은 공을 잡으면 상대를 제압해 골을 넣으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러다 보니 자연, 턴오버가 많다. 다음 행위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직 골대를 향해 돌진할 뿐이다. 공을 잡은 뒤에 다음 그림을 만드는, 그런 의미의 인내심이 부족하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를 보면 마치 뒤에서 누군가 떠미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테니스 선수들은 랠리를 거듭하면서 상대의 약점을 찾는다. 한국 대표팀은 랠리를 생략하고 당장 스트로크만 날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 즐겨쓰는 표현인, ‘할리우드 패스’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눈앞에 서너 명의 수비가 있다고 치자. 이 때 선수는 서너 명의 수비수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그림 같은 패스를 시도한다. 성공 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축구는 그런 게 아니다. 심플한 패스가 가장 좋다’고 단언한다. 사실 우리 선수들은 심플한 축구의 핵심을 배우기 전에 체력적인 솔루션을 먼저 접한다. 운동장을 돌고 산을 오르는 것? 이건 축구가 아닌 육상의 트레이닝법이다.
그 결과는 자명한 것으로, 단편적인 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표 팀이 체력 면에서 월등히 나은 아시아 팀과 붙으면, 쉽게 경기를 지배한다. 하지만 체력이 동등하거나 열등한 상황이 되면 전혀 해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전술과 정신력의 부재
축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4가지 요소가 있다. 기술, 전술, 체력, 그리고 정신력. 한국 팀의 경우, 기술과 체력 면에서 세계 톱클래스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전술과 정신력 면에서 꽤나 낙후되어 있다. 기술 연마와 체력 강화는 비교적 쉽다.
하지만 전술과 정신력을 기르는 일에는 매우 복합적인 훈련이 요구된다. 관건은 생각하는, 지능이 높은, 스마트한 선수들을 뽑는 것이다. 그런 선수를 키워내는 게 감독과 코치의 역할이고, 강팀을 만드는 베이스이다.
덩치 크고 힘센 선수 위주로 기용한다면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다. 전술적으로 세련되었고 테크니션의 이미지며 깔끔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파워풀하고 공격적인 전사의 이미지이다. 금요일 오후의 서울 시내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외국인이 차를 몰고 나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한일 월드컵 당시의 루이스 피구가 꼭 그랬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한국축구의 문제점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적되고 또한 누가 봐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꿈을 깨야한다. 적어도, 작금까지만 본다 하더라도, 한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맹주’도 아니다. 선장도 좌표도 없이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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